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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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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사랑하는 도자기 가운데 '달항아리'만큼 대중적인 것이 또 있을까. 순백에 둥근 모양은 그 모습이 무척 푸근하고 편안하다. 어떤 꾸밈도 없어 담백하니 어느 공간에나 잘 스며들고 어우러지기 쉽다. 본래 달항아리는 임진왜란 등 조선 후반 많은 도예가들이 끌려가고 가마가 파괴되면서 제작이 쉬운 형태의 달항아리가 대량으로 만들어졌다. 그 때만해도 달항아리라는 이름도 없었고 그저 '백자 큰 항아리' 정도의 투박한 이름뿐이었다. 그러다 '달항아리'라는 이름만 들어도 낭만이 느껴지는 새로운 이름이 예술가들에 의해 붙여지기 시작한다. 그 시작은 김환기 화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달항아리를 소재로 많은 작품들을 남겼는데 그는 달항아리에 색과 질감에 매료되어 "이러다간 종생 항아리 귀신이 될 것 같소"와 같은 말을 친구에게 고백 할 정도였다. 달, 그 중에서도 둥근 보름달은 정월 대보름, 추석 한가위 등 우리네 절기 가운데 가장 의미있는 명절에 등장하는 달인 만큼 둥그런 달에 대한 오랜 상징과 의미는 이미 우리 삶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도자기를 만드는 방식이 두 개의 그릇을 맞붙인 형태라는 점이다. 그래서 달항아리는 완벽한 원형(구)가 될 수 없다. 서로 다른 두 개의 그릇이 위 아래로 합쳐져 하나가 되고, 하나 된 모습은 완벽한 구형은 아닐지라도 - 보는 각도에 따라 보여지는 모습에 차이가 있어도 - 그러한 모습 덕분에 보는 이들에게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을 주는 것은 아닐까. 달항아리를 생각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두 존재가 하나 될 수 있음을 상상하는 것, 서로 맞닿아 기댈 때만이 하나 될 수 있는 그런 호혜성을 상상하는 것이 아닐까. * 참고 자료 국립중앙박물관 KBS 역사 스페셜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피해자의 얼굴을 생각하다

  추리 , 스릴러 등 장르소설 분야는 그 특성상 범죄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마련이다 . 추리소설 하면 흔히 살인사건과 그 살인자가 누구인지 찾는 오락적인 속성이 부각되지만 , 현대 사회의 장르소설은 범인 찾기의 도구로써 범죄를 이용하며 말초적인 재미만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 다양한 속성의 범죄 , 가령 사형제도라거나 학교폭력 , 소년범 , 권력형 비리 등을 파헤치고 그에 얽힌 인물들을 날카롭게 탐구하며 메시지를 던지는 장르소설도 많아진 것이다 . 그런데 오락물로써의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동시에 주는 창작물 중 성범죄를 주제로 접할 때면 유독 생각이 많아진다 . 소비자로서 창작물이 주는 도파민을 즐기기 이전에 나 역시 얼마든지 현실적인 성범죄에 노출될 수 있는 한 사람의 여성이라는 자각이 앞서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물론 살인 , 사기 등 어떠한 범죄라도 피해자가 될 가능성은 항상 있지만 , 강력범죄 중 가해자와 피해자 성별이 성범죄만큼 압도적으로 명확한 카테고리는 없기에 여성으로써 체감하는 확률이 비교가 되지 않는다 . 또한 이 한쪽 성별에 치우친 가해자 비율은 성폭력 또한 범죄이고 폭력이거늘 ‘ 성 ’ 에 더 초점이 맞춰지고 유독 다른 범죄들에 비해 무고죄와 피해자다움 등에 대해 사회는 엄격한 시선을 보내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 비단 한국 사회뿐 아니라 어떤 사회라도 마찬가지로 성범죄의 피해자 여성은 완전히 무해하고 그 어떤 트집잡힐 만한 품행조차 없어야만 온전하게 피해자로서 인정받는다 . 심지어 미성년자라 할지라도 . 스마트폰을 통해 누구나 익명의 인스턴트식 만남을 쉽게 추구할 수 있기에 초등학생도 손쉽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