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인 듯 진짜 아닌 진짜 같은 너(feat.마카오 여행)

  마카오의 첫번째 황금기는 16세기, 유럽 제국주의의 열기를 타고 포르투갈이 마카오에 당도하면서 무역항으로서 중국과 유럽의 중개기지 역할을 했을 때라고 한다. 식민 지배를 받았던 나라의 국민 입장에서 마카오가 포르투갈에 점령당한 후 첫번째 황금기를 맞았다고 말하는 것이 못내 껄끄럽기는 하나 중국과 유럽을 잇는 무역항으로 도시가 내뿜었을 활기까지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광은 계속되지 않았다. 영국이 홍콩을 점령한 이후 마카오는 무역항으로서의 지위를 홍콩에 빼앗긴 채 도박과 매춘 인신매매 따위가 횡행하는 쇠락의 길로 접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마카오가 두번째 황금기를 맞게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한번 도박, 카지노 산업이 육성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지난 달 내가 다녀온 마카오 역시 그런 카지노 산업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큰 테마파크 같은 진짜인 듯 진짜 아닌 진짜 같은 알쏭달쏭한 묘한 느낌을 남기는 곳이었다.   선호하는 여행 스타일을 굳이 꼽는다면 현지에서 현지 사람들의 생활상을 조금이라도 느껴 볼 수 있는 것이겠고 그래서 휴양지보다는 도시를 좋아하지만 마카오는 분명 아주 화려한 도시임에도 아주 빡세게(?) 관광지화를 시켜놓은 덕에 휴양지의 한적한 느낌만 없다뿐이지 테마파크 콘셉트의 휴양지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언어로 명확히 구체화되지 않는 느낌에서도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 생활의 감각, 평범한 일상의 생동 혹은 고단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여행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어느 학교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책을 읽는 모습을 본 시간이었다. 그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풍경들이 마카오에서는 생경하게 느껴졌다. 다만 그게 싫지 않았던 것은 마카오의 화려함이 워낙 거대하고 동시에 환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곳을 떠올리자면 라스베이거스이고 이는 사실 당연한 말이다. 마카오가 두번째 황금기를 맞이한 것이 바로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사와 손을 잡은 이후이기 때문이다. 라스베이거스...

늙크크가 되긴 싫어

  그리하여 남기는 신곡 감상기. CORTIS - REDRED 하이브 컴백 대(환장)파티 중 내 기준 가장 핫한 것 같다. 여러모로. 평균 나이 열일곱 아이들이 직접 곡을 쓰고 가사를 쓰고 안무를 만들고 영상을 만든다. 그러나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자본이다. 여기서 오는 언밸런스의 매력이 있다. '도가니 사리기', '궁뎅이 가리기', '내 친구들 전부 한 트럭에다 담아서 거리고 나가서 빙빙' 같은 거친 결의 가사를 듣다 보면 (늙크크의 심정으론) 이게 뭐지, 장난하나 싶은데, 어쨌든 그렇게 어그로를 끌고 끊임없이 바이럴이 된다. '자유로운 우리를 봐, 자유로워'가 도리어 지나치게 정돈되어 촌스럽게 느껴진달까. 결국 이마저 하이브라는 자본의 연출이라는 생각이 든다. 꼭 종석 미장을 한 거친 벽면처럼. 멤버들이든 회사든 할 줄 몰라서 못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사실 한 발짝 쯤 뒤로 멀어지게 되긴 하는데, 09년생 건호 군이 어깨를 어쩔 줄 모르고 코러스에서 온 힘을 다해 춤을 추고 있는 걸 보면 또 아 10대 남자 아이돌 무대는 이 맛이지 싶어서 또 재밌다. that's red-red ILLIT - It's me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아쉽다. (파쿠리라고 해도) 이 아이들이 보여주던 음악세계, 그러니까 magnetic, 빌려온 고양이, not cute anymore, cherish, lucky girl syndrome 같은 곡들의 결을 남몰래 좋아하던 나로선 그럴 수밖에 없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거 좋지, 다양한 거 시도해보는 거 좋지, 근데 그게 이 시기에 이 방식이어야 했을까? (이런 말 정말 하고 싶지 않지만 꼭 더 이상 레퍼런스가 없어지니 이렇게 된 것 같잖아) 그 와중에 who's your bias, I'm your bias 구절이 귀에 쏙쏙 박히고, 결코 예쁘다고 할 수 없는 미친 처키인형 같은 안무는 수없이 쏟아지는 챌린지 화면에 익숙해져 그 누...

어린이날 선물로 푸들 말티즈 비숑 포메라니안 사고 싶은데 좋은 펫샵/브리더 추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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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제목에 답하자면 그런 거 없다.  이번 나의 글이 서로의 ‘문화 경험’에 무임승차한다는 취지에 맞는 글인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 우리 뉴스레터의 목적에 어울리지 않는 글이라면 미리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작년부터 나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이기 때문에 경험 그리고 기억의 공유라는 차원에서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린 시절, 대형마트에 가면 햄스터, 거북이, 새 등 소동물을 파는 코너가 꼭 있었다. 강아지를 너무나도 키우고 싶었지만 그때만 해도 아파트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일은 너무나 드문 시절이었기에 엄마 아빠는 강아지, 고양이 등의 큰 반려동물 대신 햄스터나 잉꼬 등의 소동물까지만 허용해 주곤 했다. 물론 데려와도 뒷바라지는 결국 엄마 몫이었기에 지금은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더 크지만. 아무튼 그렇게 집에서 키우는 동물 = 어딘가에서 사 오는 것이 당연한 시절이 한때 존재했다. 너무나 쉽게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사올 수 있었고 강아지나 고양이도 그저 가게 진열장 안에 있는 존재, 부모님의 허락만 떨어지면 진열장에서 꺼내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이었다. 내가 연초에 썼던 글 중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영화가 헐리우드 가족영화 <베토벤>이었다는 부분이 있는데, 시대적 배경 탓에 베토벤 역시 펫샵(pet store)에 진열되어 있다가 안 팔려서 싼 값에 베토벤네 가족이 데려가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2026년, 시대가 바뀌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500만명이라는 시대. 반려동물 특히 인간과 가장 가까이 교감할 수 있는 반려견 시장은 저출생, 핵가족 트렌드와 맞물려 10년~2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팽창했다. 반려견을 키우지 않는 친구들을 위해 요즘 펫 시장에 대한 이해를 돕자면, 펫보험, 반려동물 장례업체, 가격이 비쌀수록 커리큘럼(!)이 좋다는 강아지 유치원, 반려견 동반 단체 패키지를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 등등…   그러나 한국의 반려동물 문화는...

먼저 온 미래와 경험의 멸종(과 머니볼)

  출근하자마자 모니터 한 켠에 제미나이를 띄워놓는 것이 어느새 루틴이 되었다. 출근길에 아아 한 잔을 사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그럴 법한 자연스러운 그림이듯 한 쪽 모니터에 제미나이를 먼저 띄워 두고 업무에 이용하는 것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하기야 신문물에 항상 뒤늦게 적응하는 나마저도 이런데 다른 사람들은 말해 무엇하리. 그래서인지 요즘은 AI가 진짜 똑똑하다더라, 변호사도 회계사도 망한다더라(안 망한거 잘 압니다;;저보다 훨씬 잘나가시는 분들임^^)하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오지만 사실 그런 찬양과 과장된 우려의 이면에는 그럼에도 아직 나의 자리는 대체되지 않았다는 안도감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먼 미래를 가정하지 않고, 기술이 더 발전할 필요도 없이)당장 내일이라도 어떤 뛰어남의 영역을 두고 인공지능과 인간이 겨뤄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주장할 수 있을까.   이 무서운 상황을 먼저 맞닥뜨린 곳이 바로 바둑계이다. 그 유명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바둑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한다. 과거엔 바둑의 세계란 너무 심오하여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한들 기계는 감히 바둑에 범접할 수 없다는 인식이었다면, 이제는 인간은 감히 알파고의 수를 읽어낼 수 없으므로 오히려 알파고를 스승 삼아 바둑을 배워야 한다는 인식으로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이다. 장강명의 책 ‘먼저 온 미래’라는 제목은 바로 여기에서 왔다.   그럼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뛰어남의 영역을 두고 인공지능과 겨뤄야 한다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무엇일까. 솔직히 간단한 업무 영역, 단순 계산이나 회계 같은 것은 물론이고 자료 해석, 보고서 작성과 같은 지적인 활동까지도 충분히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쯤 되면 이거야말로 오로지 인간만의 활동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만한 게 바로 순수한 창작의 영역, 즉 예술이 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인공지능이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

Into the new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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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새롭게 사귄 지인이 있는데, 요즘 '원래 자신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것'들을 해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성인이 된 이후로 운동화를 신어본 적이 없는데 나이키에 빠졌고, 옷장에 무채색 옷만 죄 걸려있는데 알록달록한 옷을 하나씩 사본다고. 우리가 그래서 친해질 수 있었구나 싶었다. 나 역시 그러려고 노력중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안정된다는 건 가능성이 하나씩 차단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만치 살아왔으니 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아는 기분이 들고 그것은 꽤 괜찮다. 뭘 하면 기분이 고양되는지, 뭘 보면 슬퍼지는지, 뭘 먹어야 만족스러운지, 어떤 생각이 날 좀먹는지 같은 것들을 알고 있기에 스스로를 적당히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재미가 없어서 어마어마했던 가능성의 나무들이 가진 뿌리나 가지들을 모두 쳐내고 작은 분재 하나 남은 쓸쓸한 기분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중년의 우울(...)을 타파하기 위해 새롭게 시도해본 것들에 대한 이야기. <위스키바> 술을 잘 마시지 못하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안 했는데, 서론에서 언급한 지인이 요즘 자주 간다고 해서 호기심이 생겨 따라갔다. 한남동 골목에 위치한 작은 곳인데, 사람들이 제법 많아서 꽤 오래 기다려야 했다. 모든 직원이 멀쑥한 양복을 차려입고 안내해주는데 그 의도된 연출이 나에게는 살짝 민망하기도 했지만, 체계와 절차가 새롭고 신기했다. 커버차지라고 입장료나 자릿세 같은 개념의 돈을 내야 하고, 물이나 과자나 초콜릿같은 간식 한 두개가 나온다. '늘 시키던 것으로' 같은 주문을 하면 간지나겠지만, 난 누가봐도 처음인 사람처럼 주변을 신기하게 두리번 거리고 있었고, 심지어 술도 못하므로 얌전하게 추천을 받았다. 술 맛이 많이 나지 않는 달달한 칵테일을 추천해주셨는데, 아이스크림과 콜라, 약간의 술이 섞여 있어서 정말 맛있었다. 함께 간 지인이 맛보곤 이건 술이 아니라고 할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은 기존에 마셨는데 좋았던 것이나 선호하는 향이...

문구여행자의 방앗간 소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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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앞에 있던 문구점에 매일매일 드나들며 백 원, 이백원 짜리 지우개와 연필을 구경하던 어린이는 자라서 훌륭한 문구여행자가 되었어요. 

오랜만에 돌아온 최근 읽은 추리소설 모음.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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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5 *<TIGER> / 구시키 리우   연쇄살인마의 심리를 다룬 <사형에 이르는 병>으로 처음 접했던 구시키 리우의 또 다른 장편이다. 은퇴한 전직 형사인 할아버지가 현직 시절 직접 취조했던 사형수가 혹시 누명을 쓴 것은 아닌지 의심을 품고 손자와  함께 진실을 추적한다. 아동성폭행 및 살인이라는 끔찍하고 자극적인 소재를 겉핧기 식으로 소재로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중범죄자와 심리와 광기를 꽤 깊게 파헤치고 있다. 또한 손자와 손자의 친구가 트위터에 만화를 연재하는 방식으로 과거의 잊혀진 범죄에 대한 관심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다는 설정은 다소 억지스럽지만  독특하다. 다만, <사형에 이르는 병>도 그렇고 <TIGER>도 그렇고 거의 범죄자의 내면을 추적하는 범죄 다큐에 가깝고 스릴러, 미스터리로써의 맛은 좀 떨어진다는 것이 내 감상이다.  *<최애의 살인> / 엔도 가타루   90년대생 작가들이 몰려온다. 이번에는 무려 ‘지하 아이돌’의 살인을 다룬 하드보일드 소설이다. 언젠가 반짝반짝 빛날 아이돌의 꿈을 품고 있지만 현실은 그저 20~30명의 팬 앞에서 라이브를 하는 것이 전부인 지하 여자 아이돌 그룹. 달랑 셋뿐인 멤버 사이에서도 그룹의 미래, 센터, 컨셉 등을 두고 대립하기도 하며, 소속사 사장의 지시로 돈 많은 남자들의 술자리 시중까지 들어야 하는 신세이다. 그 와중에 알고 보니 센터로 푸쉬를 받는 멤버는 한참 연상인 소속사 사장과 사귀고 있었고, 그녀는 말싸움 도중 격분하여 사장을 살해하고 만다. 센터 멤버가 경찰에 자수하거나 나중에 체포되기라도 하면 비록 지하 아이돌일지언정 아이돌로써의 미래는 완전히 파탄나게 된다. 이에 멤버들은 똘똘 뭉쳐 시체를 숨기고 살인을 묻어버리려 하는데…   하드보일드라고 하기에는 살인의 실행과 숨기는 과정, 쫓는 자와 쫓기는 자 등에서 오는 긴박감은 덜하다. 오히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