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미래와 경험의 멸종(과 머니볼)

  출근하자마자 모니터 한 켠에 제미나이를 띄워놓는 것이 어느새 루틴이 되었다. 출근길에 아아 한 잔을 사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그럴 법한 자연스러운 그림이듯 한 쪽 모니터에 제미나이를 먼저 띄워 두고 업무에 이용하는 것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하기야 신문물에 항상 뒤늦게 적응하는 나마저도 이런데 다른 사람들은 말해 무엇하리. 그래서인지 요즘은 AI가 진짜 똑똑하다더라, 변호사도 회계사도 망한다더라(안 망한거 잘 압니다;;저보다 훨씬 잘나가시는 분들임^^)하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오지만 사실 그런 찬양과 과장된 우려의 이면에는 그럼에도 아직 나의 자리는 대체되지 않았다는 안도감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먼 미래를 가정하지 않고, 기술이 더 발전할 필요도 없이)당장 내일이라도 어떤 뛰어남의 영역을 두고 인공지능과 인간이 겨뤄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주장할 수 있을까.   이 무서운 상황을 먼저 맞닥뜨린 곳이 바로 바둑계이다. 그 유명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바둑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한다. 과거엔 바둑의 세계란 너무 심오하여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한들 기계는 감히 바둑에 범접할 수 없다는 인식이었다면, 이제는 인간은 감히 알파고의 수를 읽어낼 수 없으므로 오히려 알파고를 스승 삼아 바둑을 배워야 한다는 인식으로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이다. 장강명의 책 ‘먼저 온 미래’라는 제목은 바로 여기에서 왔다.   그럼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뛰어남의 영역을 두고 인공지능과 겨뤄야 한다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무엇일까. 솔직히 간단한 업무 영역, 단순 계산이나 회계 같은 것은 물론이고 자료 해석, 보고서 작성과 같은 지적인 활동까지도 충분히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쯤 되면 이거야말로 오로지 인간만의 활동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만한 게 바로 순수한 창작의 영역, 즉 예술이 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인공지능이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

Into the new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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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새롭게 사귄 지인이 있는데, 요즘 '원래 자신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것'들을 해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성인이 된 이후로 운동화를 신어본 적이 없는데 나이키에 빠졌고, 옷장에 무채색 옷만 죄 걸려있는데 알록달록한 옷을 하나씩 사본다고. 우리가 그래서 친해질 수 있었구나 싶었다. 나 역시 그러려고 노력중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안정된다는 건 가능성이 하나씩 차단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만치 살아왔으니 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아는 기분이 들고 그것은 꽤 괜찮다. 뭘 하면 기분이 고양되는지, 뭘 보면 슬퍼지는지, 뭘 먹어야 만족스러운지, 어떤 생각이 날 좀먹는지 같은 것들을 알고 있기에 스스로를 적당히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재미가 없어서 어마어마했던 가능성의 나무들이 가진 뿌리나 가지들을 모두 쳐내고 작은 분재 하나 남은 쓸쓸한 기분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중년의 우울(...)을 타파하기 위해 새롭게 시도해본 것들에 대한 이야기. <위스키바> 술을 잘 마시지 못하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안 했는데, 서론에서 언급한 지인이 요즘 자주 간다고 해서 호기심이 생겨 따라갔다. 한남동 골목에 위치한 작은 곳인데, 사람들이 제법 많아서 꽤 오래 기다려야 했다. 모든 직원이 멀쑥한 양복을 차려입고 안내해주는데 그 의도된 연출이 나에게는 살짝 민망하기도 했지만, 체계와 절차가 새롭고 신기했다. 커버차지라고 입장료나 자릿세 같은 개념의 돈을 내야 하고, 물이나 과자나 초콜릿같은 간식 한 두개가 나온다. '늘 시키던 것으로' 같은 주문을 하면 간지나겠지만, 난 누가봐도 처음인 사람처럼 주변을 신기하게 두리번 거리고 있었고, 심지어 술도 못하므로 얌전하게 추천을 받았다. 술 맛이 많이 나지 않는 달달한 칵테일을 추천해주셨는데, 아이스크림과 콜라, 약간의 술이 섞여 있어서 정말 맛있었다. 함께 간 지인이 맛보곤 이건 술이 아니라고 할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은 기존에 마셨는데 좋았던 것이나 선호하는 향이...

문구여행자의 방앗간 소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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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앞에 있던 문구점에 매일매일 드나들며 백 원, 이백원 짜리 지우개와 연필을 구경하던 어린이는 자라서 훌륭한 문구여행자가 되었어요. 

오랜만에 돌아온 최근 읽은 추리소설 모음.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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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5 *<TIGER> / 구시키 리우   연쇄살인마의 심리를 다룬 <사형에 이르는 병>으로 처음 접했던 구시키 리우의 또 다른 장편이다. 은퇴한 전직 형사인 할아버지가 현직 시절 직접 취조했던 사형수가 혹시 누명을 쓴 것은 아닌지 의심을 품고 손자와  함께 진실을 추적한다. 아동성폭행 및 살인이라는 끔찍하고 자극적인 소재를 겉핧기 식으로 소재로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중범죄자와 심리와 광기를 꽤 깊게 파헤치고 있다. 또한 손자와 손자의 친구가 트위터에 만화를 연재하는 방식으로 과거의 잊혀진 범죄에 대한 관심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다는 설정은 다소 억지스럽지만  독특하다. 다만, <사형에 이르는 병>도 그렇고 <TIGER>도 그렇고 거의 범죄자의 내면을 추적하는 범죄 다큐에 가깝고 스릴러, 미스터리로써의 맛은 좀 떨어진다는 것이 내 감상이다.  *<최애의 살인> / 엔도 가타루   90년대생 작가들이 몰려온다. 이번에는 무려 ‘지하 아이돌’의 살인을 다룬 하드보일드 소설이다. 언젠가 반짝반짝 빛날 아이돌의 꿈을 품고 있지만 현실은 그저 20~30명의 팬 앞에서 라이브를 하는 것이 전부인 지하 여자 아이돌 그룹. 달랑 셋뿐인 멤버 사이에서도 그룹의 미래, 센터, 컨셉 등을 두고 대립하기도 하며, 소속사 사장의 지시로 돈 많은 남자들의 술자리 시중까지 들어야 하는 신세이다. 그 와중에 알고 보니 센터로 푸쉬를 받는 멤버는 한참 연상인 소속사 사장과 사귀고 있었고, 그녀는 말싸움 도중 격분하여 사장을 살해하고 만다. 센터 멤버가 경찰에 자수하거나 나중에 체포되기라도 하면 비록 지하 아이돌일지언정 아이돌로써의 미래는 완전히 파탄나게 된다. 이에 멤버들은 똘똘 뭉쳐 시체를 숨기고 살인을 묻어버리려 하는데…   하드보일드라고 하기에는 살인의 실행과 숨기는 과정, 쫓는 자와 쫓기는 자 등에서 오는 긴박감은 덜하다. 오히려...

원형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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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살이 되어 정말 세상 끝난 것 같은 기분이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40살이 훨씬 가까워지고 만으로 간신히 30대 후반을 유지(?)하는 나이가 되었다. 평균 수명의 거의 절반 가까이 살아낸 셈이다.  ‘내 인생’으로 시작하는 지루한 술주정을 늘어놓으며 그동안 살아온 삶을 반추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40살이 가까워 오는 지금, 내가 가진 확고한 취향이나 관심사의 ‘원형’이 어디서 왔는지 문득 생각해 보았다. 이것이 무임승차 뉴스레터에 맞는 글짓기인지는 모르겠지만  30살에도, 40살에도 그리고 아마도 50살에도 그대로일 내 인생의 요소 중 몇 가지의 원형을 되짚어 보고 싶다. 강아지: 미국 영화 <베토벤>, <머나먼 여정>   나의 강아지, 동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원형은 아마도 <베토벤>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80-90년대에 비슷비슷하게 양산되었던 헐리우드식 가족 영화 중 하나이지만 그때만 해도 비디오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던 대형견과 미국 중산층 가정에 대한 환상을 키워준 작품이다. 알프스 산맥 등 험한 환경에서 조난객을 구조하는 이미지로 유명한 대형견 세인트 버나드 독을 주인공 ‘베토벤’으로 하여 1탄은 꽤 성공하였으며 속편도 여러 편 나왔었다. 그러나 헐리우드에 수없이 많은 개, 가족 주제의 영화 중 <베토벤>이 유독 성공했다거나 작품성이 높은 편은 아니고 1탄이 제작비 대비 성공한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1편만큼은 뜨지 못한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사람 간의 호감도 그렇듯이, 꼭 객관적으로 대단한 작품이 아니어도 이상하게 나와 주파수가 맞는 그런 작품이 있다. 또한 나에게 있어서는 옛날에 비디오와 만화책 등을 유료로 대여해 주던 비디오 가게가 있던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새끼 시절, 베토벤은 동네 펫샵에서 팔리지 않고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강아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펫샵...

잘 하는 건 아닌데 포기하진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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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시작의 결심, 아직 못한 것들 정리해보고 더 늦기 전에 시도하기. 1_기록하기  2026년은 그 동안 해오던 기록을 더욱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래서 11월부터 각종 문구브랜드의 다이어리들을 온라인으로 오프라인으로 살펴보며 야금야금 노트들을 준비했다. - 아르디움 빅 플랜 먼슬리 - 하루 한 칸 일상 기록  - 아날로그키퍼 5년 다이어리 - 매일 다른 주제로 5년 기록 - 민음사 인생일력 - 하루 세 개 감사 일기  - 아날로그키퍼 먼슬리 다이어리  - 아날로그키퍼 서브젝트북  아래 두 개의 다이어리는 2월이 한 주 밖에 남지 않은 지금도 용도를 정하지 못했다. 일단 쓰기 시작한 다이어리들은 날짜를 빼먹지 않고 쓰려고 노력하였으나, 제대로 가동하고 있는 다이어리는 하루 한 칸 먼슬리 뿐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이어가보고자 한다.  온라인에서 알게된 기록멘토라고 할 수 있는 리니님의 기록에 관한 일일 강의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기록함으로써 새롭게 알게되는 나의 모습을 살펴보며 기록에 재미와 관성을 붙여가는 과정에 대해 생생한 경험담을 듣고 나니 더욱 기록하기에 대한 열정이 생겨났다.  리니님의 책 [기록이라는 세계] 도 조금씩 이지만 꾸준히 읽고 있다. 기록이 주는 의미와 재미를 깨닫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기록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안내가 되어 있어 기록 생활에 꾸준함을 더해 주는 좋은 친구 같은 책이다.  2_영화보기  영화를 보는 것도 큰 마음을 먹고 봐야 하는 나에게 2026년은 꽤 기대작이 많은 해이다.  - 왕과 사는 남자  - 휴민트  - 프로젝트 헤일메리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 토이스토리 5 - 호프  - 스파이더맨 : 브랜드 뉴 데이  이미 개봉한 위의 두 영화는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영화관에서 내려가기 전에 꼭 보...

우리가게 정상 영업합니다 ~간장게장마카롱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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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달라지겠다고 다짐하였으나, 달라지지 않은 채로 2026년의 14%를 소진하고 말았다. 늘 이번달은 못했으니 다음달에는 멋지게 기획해서 써봐야지 하는데, 다음달이 이번달이 되면 마찬가지다. 역시나 이번에도 마감에 맞춰 티끌 모아 티끌 전략으로 이것 저것 잡다한 경험들을 사금 채취하듯 모아 모아 보고합니다. 1. 책 [실패를 통과하는 일] 나에게 책은 그야말로 취미이고 재미이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리곤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책이 안 읽히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읽어야 할 책은 너무 많은데 (물론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은 것 같아 조급해진달까. 요 몇 달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한 것이 열 권이 넘어가던 차, 서점에서 마주칠 때마다 궁금해서 읽어야지 메모해두었던 책을 운좋게 스마트도서관에서 대여할 수 있었다.  솔직히 궁금하긴 했어도 큰 기대는 없었다. 이름을 들어본 사업/서비스/브랜드의 대표 혹은 파운더의 책은 꾸준히 나오고 있고 즐겨 읽는 편이긴 하지만, 대체로 하는 말이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프롤로그를 읽을 때만 해도 심드렁했는데 본문에 들어선 순간 마음이 설렜다. 그야말로 '투박하게 토해낸 진심'같은 느낌이랄까.  이 책은 퍼블리 창업자 박소령님의 창업부터 스타트업 투자를 받아내고 경영자로서 운영하다가 자체적인 마침표를 찍기까지의 회고이자 피드백이다. 완벽한 성공의 시점에서 내려다보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제목처럼 매 순간을 '실패를 통과'하듯 치열하게 고민하고 움직이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와닿았다.  먼저 그 당시의 상황과 심정같은 것들이 번호로 매겨져 나열되다보니 속도감있게 몰입이 가능했다. 이어지는 부분은 당시 그런 선택을 했던 이유, 돌아보니 느낀 후회나 다시 돌아간다면 해볼 만한 대안들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있어서 나까지 한숨 고르는 느낌이 든다. 분명 매끄럽게 정제된 것도 아니고, 텍스트의 정보량이 제법 되는 편인데도, 이상하게 술술 읽히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