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이렇게 먹었는데 아직도 처음인 게 있다니 너무 좋아

(제목은 이하늬님의 유명한 그 짤입니다) 유투브 [타임슬립호텔] 어떻게 이 채널이 나의 알고리즘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어느날 갑자기 '당신이 교토 명문가의 며느리가 된다면 겪게될 끔찍한 일들'이라는 썸네일이 보였다. 한창 일남에 심취(...)해있던 터라 홀린 듯 클릭해서 보는데 일종의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역사적 사실을 섞어서 서술하는 형식이 신선했고 내용 자체도 재미있었다. 솔직히 PC하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아니 며느리 어쩌고 하는 제목부터 그렇잖아요... 난 내 안의 언피씨함을 인정하기로 했어...) 뭐랄까 그렇다고 대놓고 혐오 발사 이런 느낌은 아니기도 하고 일단 당장 문장을 말하는 그 순간에 다음 문장이 궁금해지는 몰입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거 재밌네?! 싶어 채널에 업로드된 동영상 제목들을 보는데, '조선시대 세자빈 간택에 불려가면 벌어지는 일', '당신은 이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겠습니까? 역사상 최악의 교도소', '리젠시 시대 상속녀로 태어나면 벌어지는 일' 같은 딱 봐도 도파민 터지는(...) 것들 뿐이었다. 필름클럽도 끝났고 그것이 알고 싶다 유투브 채널도 영 흥미가 떨어지던 와중에 나의 여가 시간을 채워줄 새로운 콘텐츠를 찾은 것이다. 대놓고 AI 발사하는 영상이 흠좀... 싶을 때도 있고 나레이션의 목소리에 거부감이 없다면 그것도 거짓말이긴 한데 그래도 어디서 그렇게 재미질 것 같은 주제를 뽑아오는지, 시간도 15~30분 정도여서 머리 말리며, 옷 갈아입으며, 주말에 밍기적 거리며 틀어두기 딱 좋더라. 공간 [답십리 고미술상가] 요즘 젊은이들에게 핫하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혼자 가기엔 약간 겁이 났다. 잘 모르고 갔다가는 어색, 뻘쭘하게 그대로 돌아올 것 같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가봐야지, 했는데 우연히 근처에 갈 일이 있어 들렀다가 그냥 예습 차원에서 가볼까 해서 구경을 갔는데, 와, 정말 '힙'했다. 사실 언뜻 보면 그냥 동대문 시장 같기도 하고 용산이나 테크노마트...

전망대 덕후의 도쿄 전망대 탐방기

왜인지는 모르겠다. 여행을 가면 한 번쯤은 전망대를 가게 된다. 심지어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음에도, 그래서 가끔 창이 뚫린 곳에서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 못하고 기둥이든 어디든 꼭 붙잡고 있음에도 꾸역꾸역 방문하게 된다. 어쩌면 전망대가 가장 여행자스러운 곳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오롯이 고흐 특별전이 제 1의 목적이었던 도쿄 여행에서도 전망대에 갔다. 심지어 3박 4일 일정 중 하루에 하나씩 세 군데에 다녀왔다. 그 후기. 스카이트리 아사쿠사 근처의 전망대. 그러니까 사실 도쿄의 중심부보단 주변부에 가까운 느낌이다. 그래도 2010년대인 최근에 지어져서인지, 350m / 450m로 도쿄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라고 한다. 여행 첫 날, 입국 심사부터 공항을 나와 숙소까지 이동하는 데 생각보다 더 많이 헤매고 지체한 탓에 시간이 늦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비도 꽤 많이 내려서 뭘 할 기운도 없어서 고민을 했는데, 지하철 한 정거장이니까 그냥 가볍게 다녀오자! 해서 갔다. 인터넷으로 예매해야 뭔 예매수수료 같은 게 없다 그러길래, 그 자리에서 급하게 폰으로 예매하려고 하는데 마이리얼트립같은 곳에선 이미 당일 예매창은 사라진 후였다. 요일과 시간대별로 가격대가 다르기도 하고 어차피 비도 오는데 나중에 다시 올까 고민하던 차에 다행히 클룩에선 즉시 발송해주는 건이 있었다. 비록 많이 할인되는 가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야. 7시에 도착했는데 9시 입장권만 남아있어서 그렇게 구매하고 한참동안 스카이트리의 쇼핑몰인 소라마치를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리고 시간 맞춰 입장...! 비가 오는데도 다행히 야경이 안 보일 정도는 아니었고 그래서인지 사람들도 적진 않았다. 나는 350m만 봤는데, 450m까지 가면 야외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높은 곳이라 날씨 좋은 날에는 후지산도 보인다고 하는데 그냥 밋밋한 도쿄의 풍경이 보였다. 뭐랄까, 이때부터 여행 내내 느낀 건데 도쿄는 내가 생각한 글로벌 메가시티(?)스러운 느낌은 좀 덜했다. 건물들도 고만고...

인간의 좋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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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양한 문화 경험을 공유해주는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내 뉴스레터에는 대부분은 추리소설 아니면 동물 얘기만 반복되어서 송구스럽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두 가지 재료를 섞어서 ‘동물이 핵심 소재인 추리소설’이라는 새로운 주제(?)로 간단히 글을 써 보았다. 익숙한 맛 두 가지를 조합하면 그래도 그 맛은 새로울 지도 모르니 말이다. 애초에 모든 추리소설의 원형으로 평가되는 <모르그 가의 살인> 부터가 동물을 반전의 소재로 이용하기도 했었다. 여기서는 모르그 가의 살인은 너무 클래식하니 제외했지만.  코난 도일 <바스커빌 가의 개>  “하지만 그날 밤 개는 짖지 않았는데요.” / “그러니까 그게 문제라구요.”  셜록 홈즈 시리즈 중에서도 손에 꼽게 유명한 장편이다. 어딘가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시골 마을과 무언가를 두려워하며 숨기는 듯한 주민들, 광활한 대저택,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지옥개’에 대한 무서운 전설 등 공포와 추리 요소가 잘 어우러져 있다. 니키 에츠코 <고양이는 알고 있다>  일본에서 여성 최초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여성 추리작가 니키 에츠코의 데뷔작이다. 작가와 이름이 같은 니키 에츠코라는 주인공이 오빠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장편으로, 제목 그대로 사건의 트릭 자체에 고양이가 이용된다.  송시우 <좋은 친구>, <누구의 편도 아닌 타미>  내가 좋아하는 송시우 작가의 단편집 <아이의 뼈> 에 수록되어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고양이는 알고 있다> 처럼, 이 제목 역시 단순한 제목이 아닌 사건의 진상을 암시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개는 야생성을 잃고 인류의 가장 가까운 반려동물로써 살아 온 역사가 매우 길다. 그만큼 개는 단순한 짐승이 아닌 인간의 좋은 친구로 여겨지고 있는데, 결말을 읽으면 <좋은 친구>라는 제목이 얼마나 탁월한지 고개를 끄덕이게 될지도 모른다.   같은 단편집의 ...

진짜인 듯 진짜 아닌 진짜 같은 너(feat.마카오 여행)

  마카오의 첫번째 황금기는 16세기, 유럽 제국주의의 열기를 타고 포르투갈이 마카오에 당도하면서 무역항으로서 중국과 유럽의 중개기지 역할을 했을 때라고 한다. 식민 지배를 받았던 나라의 국민 입장에서 마카오가 포르투갈에 점령당한 후 첫번째 황금기를 맞았다고 말하는 것이 못내 껄끄럽기는 하나 중국과 유럽을 잇는 무역항으로 도시가 내뿜었을 활기까지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광은 계속되지 않았다. 영국이 홍콩을 점령한 이후 마카오는 무역항으로서의 지위를 홍콩에 빼앗긴 채 도박과 매춘 인신매매 따위가 횡행하는 쇠락의 길로 접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마카오가 두번째 황금기를 맞게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한번 도박, 카지노 산업이 육성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지난 달 내가 다녀온 마카오 역시 그런 카지노 산업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큰 테마파크 같은 진짜인 듯 진짜 아닌 진짜 같은 알쏭달쏭한 묘한 느낌을 남기는 곳이었다.   선호하는 여행 스타일을 굳이 꼽는다면 현지에서 현지 사람들의 생활상을 조금이라도 느껴 볼 수 있는 것이겠고 그래서 휴양지보다는 도시를 좋아하지만 마카오는 분명 아주 화려한 도시임에도 아주 빡세게(?) 관광지화를 시켜놓은 덕에 휴양지의 한적한 느낌만 없다뿐이지 테마파크 콘셉트의 휴양지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언어로 명확히 구체화되지 않는 느낌에서도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 생활의 감각, 평범한 일상의 생동 혹은 고단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여행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어느 학교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책을 읽는 모습을 본 시간이었다. 그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풍경들이 마카오에서는 생경하게 느껴졌다. 다만 그게 싫지 않았던 것은 마카오의 화려함이 워낙 거대하고 동시에 환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곳을 떠올리자면 라스베이거스이고 이는 사실 당연한 말이다. 마카오가 두번째 황금기를 맞이한 것이 바로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사와 손을 잡은 이후이기 때문이다. 라스베이거스...

늙크크가 되긴 싫어

  그리하여 남기는 신곡 감상기. CORTIS - REDRED 하이브 컴백 대(환장)파티 중 내 기준 가장 핫한 것 같다. 여러모로. 평균 나이 열일곱 아이들이 직접 곡을 쓰고 가사를 쓰고 안무를 만들고 영상을 만든다. 그러나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자본이다. 여기서 오는 언밸런스의 매력이 있다. '도가니 사리기', '궁뎅이 가리기', '내 친구들 전부 한 트럭에다 담아서 거리고 나가서 빙빙' 같은 거친 결의 가사를 듣다 보면 (늙크크의 심정으론) 이게 뭐지, 장난하나 싶은데, 어쨌든 그렇게 어그로를 끌고 끊임없이 바이럴이 된다. '자유로운 우리를 봐, 자유로워'가 도리어 지나치게 정돈되어 촌스럽게 느껴진달까. 결국 이마저 하이브라는 자본의 연출이라는 생각이 든다. 꼭 종석 미장을 한 거친 벽면처럼. 멤버들이든 회사든 할 줄 몰라서 못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사실 한 발짝 쯤 뒤로 멀어지게 되긴 하는데, 09년생 건호 군이 어깨를 어쩔 줄 모르고 코러스에서 온 힘을 다해 춤을 추고 있는 걸 보면 또 아 10대 남자 아이돌 무대는 이 맛이지 싶어서 또 재밌다. that's red-red ILLIT - It's me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아쉽다. (파쿠리라고 해도) 이 아이들이 보여주던 음악세계, 그러니까 magnetic, 빌려온 고양이, not cute anymore, cherish, lucky girl syndrome 같은 곡들의 결을 남몰래 좋아하던 나로선 그럴 수밖에 없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거 좋지, 다양한 거 시도해보는 거 좋지, 근데 그게 이 시기에 이 방식이어야 했을까? (이런 말 정말 하고 싶지 않지만 꼭 더 이상 레퍼런스가 없어지니 이렇게 된 것 같잖아) 그 와중에 who's your bias, I'm your bias 구절이 귀에 쏙쏙 박히고, 결코 예쁘다고 할 수 없는 미친 처키인형 같은 안무는 수없이 쏟아지는 챌린지 화면에 익숙해져 그 누...

어린이날 선물로 푸들 말티즈 비숑 포메라니안 사고 싶은데 좋은 펫샵/브리더 추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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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제목에 답하자면 그런 거 없다.  이번 나의 글이 서로의 ‘문화 경험’에 무임승차한다는 취지에 맞는 글인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 우리 뉴스레터의 목적에 어울리지 않는 글이라면 미리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작년부터 나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이기 때문에 경험 그리고 기억의 공유라는 차원에서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린 시절, 대형마트에 가면 햄스터, 거북이, 새 등 소동물을 파는 코너가 꼭 있었다. 강아지를 너무나도 키우고 싶었지만 그때만 해도 아파트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일은 너무나 드문 시절이었기에 엄마 아빠는 강아지, 고양이 등의 큰 반려동물 대신 햄스터나 잉꼬 등의 소동물까지만 허용해 주곤 했다. 물론 데려와도 뒷바라지는 결국 엄마 몫이었기에 지금은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더 크지만. 아무튼 그렇게 집에서 키우는 동물 = 어딘가에서 사 오는 것이 당연한 시절이 한때 존재했다. 너무나 쉽게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사올 수 있었고 강아지나 고양이도 그저 가게 진열장 안에 있는 존재, 부모님의 허락만 떨어지면 진열장에서 꺼내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이었다. 내가 연초에 썼던 글 중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영화가 헐리우드 가족영화 <베토벤>이었다는 부분이 있는데, 시대적 배경 탓에 베토벤 역시 펫샵(pet store)에 진열되어 있다가 안 팔려서 싼 값에 베토벤네 가족이 데려가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2026년, 시대가 바뀌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500만명이라는 시대. 반려동물 특히 인간과 가장 가까이 교감할 수 있는 반려견 시장은 저출생, 핵가족 트렌드와 맞물려 10년~2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팽창했다. 반려견을 키우지 않는 친구들을 위해 요즘 펫 시장에 대한 이해를 돕자면, 펫보험, 반려동물 장례업체, 가격이 비쌀수록 커리큘럼(!)이 좋다는 강아지 유치원, 반려견 동반 단체 패키지를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 등등…   그러나 한국의 반려동물 문화는...

먼저 온 미래와 경험의 멸종(과 머니볼)

  출근하자마자 모니터 한 켠에 제미나이를 띄워놓는 것이 어느새 루틴이 되었다. 출근길에 아아 한 잔을 사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그럴 법한 자연스러운 그림이듯 한 쪽 모니터에 제미나이를 먼저 띄워 두고 업무에 이용하는 것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하기야 신문물에 항상 뒤늦게 적응하는 나마저도 이런데 다른 사람들은 말해 무엇하리. 그래서인지 요즘은 AI가 진짜 똑똑하다더라, 변호사도 회계사도 망한다더라(안 망한거 잘 압니다;;저보다 훨씬 잘나가시는 분들임^^)하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오지만 사실 그런 찬양과 과장된 우려의 이면에는 그럼에도 아직 나의 자리는 대체되지 않았다는 안도감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먼 미래를 가정하지 않고, 기술이 더 발전할 필요도 없이)당장 내일이라도 어떤 뛰어남의 영역을 두고 인공지능과 인간이 겨뤄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주장할 수 있을까.   이 무서운 상황을 먼저 맞닥뜨린 곳이 바로 바둑계이다. 그 유명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바둑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한다. 과거엔 바둑의 세계란 너무 심오하여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한들 기계는 감히 바둑에 범접할 수 없다는 인식이었다면, 이제는 인간은 감히 알파고의 수를 읽어낼 수 없으므로 오히려 알파고를 스승 삼아 바둑을 배워야 한다는 인식으로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이다. 장강명의 책 ‘먼저 온 미래’라는 제목은 바로 여기에서 왔다.   그럼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뛰어남의 영역을 두고 인공지능과 겨뤄야 한다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무엇일까. 솔직히 간단한 업무 영역, 단순 계산이나 회계 같은 것은 물론이고 자료 해석, 보고서 작성과 같은 지적인 활동까지도 충분히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쯤 되면 이거야말로 오로지 인간만의 활동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만한 게 바로 순수한 창작의 영역, 즉 예술이 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인공지능이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