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피해자의 얼굴을 생각하다

 추리, 스릴러 장르소설 분야는 특성상 범죄와 뗄레야 없는 관계이기 마련이다. 추리소설 하면 흔히 살인사건과 살인자가 누구인지 찾는 오락적인 속성이 부각되지만, 현대 사회의 장르소설은 범인 찾기의 도구로써 범죄를 이용하며 말초적인 재미만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다양한 속성의 범죄, 가령 사형제도라거나 학교폭력, 소년범, 권력형 비리 등을 파헤치고 그에 얽힌 인물들을 날카롭게 탐구하며 메시지를 던지는 장르소설도 많아진 것이다. 그런데 오락물로써의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동시에 주는 창작물 성범죄를 주제로 접할 때면 유독 생각이 많아진다. 소비자로서 창작물이 주는 도파민을 즐기기 이전에 역시 얼마든지 현실적인 성범죄에 노출될 있는 사람의 여성이라는 자각이 앞서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살인, 사기 어떠한 범죄라도 피해자가 가능성은 항상 있지만, 강력범죄 가해자와 피해자 성별이 성범죄만큼 압도적으로 명확한 카테고리는 없기에 여성으로써 체감하는 확률이 비교가 되지 않는다. 또한 한쪽 성별에 치우친 가해자 비율은 성폭력 또한 범죄이고 폭력이거늘 초점이 맞춰지고 유독 다른 범죄들에 비해 무고죄와 피해자다움 등에 대해 사회는 엄격한 시선을 보내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비단 한국 사회뿐 아니라 어떤 사회라도 마찬가지로 성범죄의 피해자 여성은 완전히 무해하고 어떤 트집잡힐 만한 품행조차 없어야만 온전하게 피해자로서 인정받는다. 심지어 미성년자라 할지라도. 스마트폰을 통해 누구나 익명의 인스턴트식 만남을 쉽게 추구할 있기에 초등학생도 손쉽게 본인이 원하면낯선 남자를 만날 있는 시대. 이런 시대에 사는 우리는 가해자를 스스로 사랑한다고 믿는 성범죄 피해자 소녀들을 어떤 얼굴로 대해야 할까. 대만의 89년생 작가 우샤이러가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읽으며, 최근 자주 접하는 SNS 이용한 미성년자 성범죄 뉴스들이 떠올랐다. SNS에서 미성년자, 심지어 초등학생들에게 접근하여 성매매를 시키거나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성인 남성들. 분명 본인의 의지로 SNS 하고 남성들의 꼬드김에 응했을 소녀들.

 우샤이러는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통해 가해자를 거부하지 않는, 심지어 사랑하기도 하는 피해자 소녀들을 통해 무결한 성범죄 피해자 아닌 명의 불완전한 인간에 불과한 여성들을 그린다. 어린 딸의 학원강사와 재혼하여 평범하게 살고 있던 변호사 판옌량. 그러나 어느 갑자기 부인 우신핑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판옌량은 우신핑을 찾기 위해 그녀의 가족과 고향을 찾아다니고, 그녀의 주변 인물들을 접하며 자신이 몰랐던 우신핑의 모습들, 그리고 그녀가 그에게 숨겨왔던 비밀들과 마주한다

 우신핑을 둘러싼 이야기가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막힘없이 진행되고 마지막까지 스릴러적인 장치를 놓치지 않지만, 동시에 문장 사이사이에서 간혹 날카로운 칼이 날아와 박힌다. 차라리 그냥 스릴러였다면, 평범하게 마음껏 동정해도 되는 피해자만 나왔다면 재미에만 집중할 있었을 텐데,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때로는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불편한 칼들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성적인 접촉을 원하는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하기에는 너무나 어린 10 소녀들이 가족, 선생님 등의 권위자들에게 성범죄를 당하면서도 가해자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소녀들을 피해자가 아니라고 단정할 있을까? 피해자들끼리 서로 상처와 비밀을 털어놓는다면 서로에 대한 구원이 있을까? 그들의 연대는 항상 아름답고 이상적일까?

  권말에 실린 작품 해설, 그리고 작품 속 문장들을 통해 고통스러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대신한다.

 (작품 해설 중)밤에 아버지가 저를 찾아오지 않으면 저는 슬퍼했을 거예요.” 때문에 우샤오러는 피해자의 얼굴이란 어떤 모양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소녀가 애정 혹은 첫사랑이라고 이름 붙은 낙원 안에 있다. 우샤오러가 회의한 것은 피해자가 기쁨을 느꼈다면, 사실이 그의 고통을 상쇄하느냐였다.

 우샤오러는 소설에서 사냥하는 것과 사냥당하는 것의 복잡한 관계를 이렇게 묘사했다. “10살인 아이가 누군가에 의해 높은 의자에 올라갔어요. 그리고 자기를 의자에 올려놓은 사람만이 내려줄 수도 있다고 믿는 거죠. (…) 피해자는 어리석지 않으며, 달콤한 사탕을 먹었기 때문에 계속 길을 걸어갔을 수도 있어요.”

(본문 중) 말할 없는 비밀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징벌인지 아는가. 나의 징벌에 끝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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