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25의 게시물 표시

산, 비움, 다짐 그리고 다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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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비움, 다짐 그리고 다시 시작 2024년 1월 23일, 나는 "산, 비움, 다짐"이라는 제목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글을 썼다. 관악산을 올랐던 날이었다. 왜 비움을 다짐했을까. 어깨가 무겁게 시작된 해였나 보다. 마음 한구석이 답답하고, 내려놓아야 할 것이 많다고 느꼈던 걸까.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비움을 다짐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1년이 흘러, 2025년의 시작을 돌아본다. 1월 25일, 나는 북한산을 올랐다. 다행이다, 아직도 산을 타고 있으니. 사실 1년 만에 오른 산이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몸이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가볍다는 느낌이 들어서 기뻤다. 무엇보다도, 북한산이라는 산 자체가 내게 주는 의미가 남달랐다. 내가 처음 본격적으로 등산을 시작했던 곳, 그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 나름 반가웠다. 이번 산행에서 가장 놀라웠던 순간은 정상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어? 벌써 다 올라왔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과거의 나는 산을 오를 때마다 ‘어떻게 올라가지?’라는 생각을 먼저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높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 몸이, 내 감각이 변했다는 걸 깨달았다. 익숙해지고, 무던해지고, 편안해진 것이다. 그러나 익숙함은 때때로 정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무던해지고 편안해지면, 다시 그것을 깨는 작업이 필요하다. 산을 오르면서 그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아, 지금 내가 새로운 경사에서 힘겨움을 느껴야 할 때구나. 지금 내 위치에 안주해서는 안 되는데, 익숙함에 젖어 있었구나. 2025년은 나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것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해가 될 것 같다. 대학원 생활도 벌써 3년이 지났다. 이제는 패턴을 찾고, 일상의 리듬을 만들어냈지만, 그게 좋은 느낌은 아니다. 긴장감이 필요하고, 부족함을 느껴야 하고, 더 배우고 싶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 써 내려가야 하는 압박감이 다시 필요하다. 적당한 압...

현실이 되어버린 전설의 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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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년 전 쯤부터 돌아다니던 짤이 있다. 소위 직장인들이여 2025년까지만 버티자! 라는 짤로 2025년 추석은 황금연휴가 온다는 짤이다. 에이 2025년 얘기를 벌써 하고 있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2025년이 시작되고 만 것이다. 2024년이 재정, 체력, 건강, 업무적 능력을 마이너스에서 제로로 회복한 한 해였다면, 진짜 정말 진심 올해는 다르다는 마음으로 2025년은 YUJI에서 그치지 않고, 플러스를 향해 걸어나가는 (달려나가는 것 까지는 조금 힘들 것 같아 우선 걸어보기로 한다)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삶 각 분야의 계획을 나누어 본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는 말을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히 경험한 2024년 이었다. 단적인 예로 홈택스에서 연말정산 간소화 자료를 조회해 보니, 의료비로 500만원 이상을 사용하였는데, 눈으로 직접적인 금액을 보고 나니 심각성이 더 가깝게 와 닿았다. 상반기 시즌이 끝나고 6월 발목 부상부터 시작되었던 병원 투어는 그 이후 모든 연차를 병원에 사용할 수 밖에 없게 만들고 심지어 출퇴근 전후로도 병원에 가느라 여러가지로 지치게 만들었다. 이제 다치고 아픈 곳은 어느 정도 회복했으니 기초 체력부터 다시 만들어 가고자 한다.  살고 있는 오피스텔 지하의 헬스장은 입주민 들의 경우 저렴한 가격에 운동을 할 수 있는데 벌써 이 곳에 산지 9년째 되었지만 헬스장을 등록한 것은 서너번 이고, 심지어 등록해 놓고도 출석한 것도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리고 사실 1월은 야근이 많다는 핑계로 헬스장을 등록하지 않고 한 달이나 지나갔다. 2월 부터는 더 이상 꼼수 부릴 수 없다. 2월 1일에 헬스장을 등록하고, 단 30분이라도 매일매일 헬스장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새로운 운동도 배워보고 싶다. 바로 필라테스와 수영이다. 첫 번째는 혼자하는 운동보다는 동료와 함께하는 운동을 좋아하기 때문에 집 근처에서 쉽게 시도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아보게 되었고, 두 번째는 몸에 크게 무리가 가지 ...

양장점과 네일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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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신주도 한때는 근대의 상징이었다. 지금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역으로 향하는 내리막에는 어지러운 전신주가 사방으로 펼쳐져 있다. 참 예스러운 풍경이네 생각하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이 어지러운 전신주야말로 근대의 상징이자 도시의 문명을 자랑하는 거리의 떳떳한 오브제였을 거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요즘에는 미관상의 이유로 새롭게 개발되는 대형 아파트 단지나 신도시에서는 모두 전선을 땅에 묻는다지만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는 그것이 도회적 감상을 자아내는 도구였다는 것이 몹시 흥미롭다. 향료를 뿌린 듯 곱─다란 노을 위에 전신주 하나하나 기울어지고 먼─ 고가선 위에 밤이 켜진다.   구름은 보랏빛 색지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 목장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부을면 꺼질 듯이 외로운 들길. 김광균 「데생」*   생각해보면 이런 것들이 늘 흥미로웠다. 시대가 변해가고 있음을 나타내 주는 이미 사라진, 사라지고 있는, 그리고 곧 사라질 모든 것들과 그 흔적들이. 문헌학자 김시덕은 <갈등도시>라는 책에서 이런 흔적을 ‘도시화석’이라 일컫는다. 이제껏 한 단어로 명료하게 설명하지 못했다뿐 이런 도시화석에 대한 호기심은 문헌학자가 아닌 내게도 있었다.    언젠가는 유람선을 탔는데 의자에 ‘내쇼날 푸라스틱’이라고 적혀있었다. 당시에는 대중적인 외래어 표기법을 따서 만든 평범했을 플라스틱 제조회사 이름이지만 이제 와서는 ‘내쇼날’도 ‘푸라스틱’도 귀여울 만큼 복고틱해서 사진을 여럿 찍었던 기억이 난다.(현재는 NPC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런 복고틱한 문자는 주위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식당에 가면 보이는 일회용 ‘케챺’과 오래된 다세대 주택가 동네의 ‘콤퓨타 세탁’이 있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외래어를 나타낼 때 받침은 ㄱ, ㄴ, ㄹ, ㅁ, ㅂ, ㅅ, ㅇ 단 7개의 자음만 허용하기 때문에 ‘케챺’의 경우 바른 외래어 표기법은 ‘케첩’이 되겠지만, 아마 이러한 외래어 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