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한달새 영화 세 편 본 이야기


씨네필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 유명한 추락의 해부도 존 오브 인터레스트도 더 폴도 심지어 서브스턴스도 안/못 본 사람으로서, 늘 영화 앞에 서면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좋아하는 걸론 안 되나? 미묘한 부채감이 오래도록 아쉬움으로 남아 앞으로는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타이밍을 놓치지 말고 꼭 봐야지 다짐했다.


그리하여 '아노라'를 보았다. 김혜리의 필름클럽 팟캐스트에 소개되었을 때 인상깊어서 봐야지 싶었는데 어영부영하는 사이 역시나 상영관들이 금세 흩날려버려 아쉽던 차. 무려 아카데미를 휩쓸며 두 번째 기회가 주어져서 망설이지 않고 달려갔다.


이 영화를 단순히 요약하자면,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의 실상...정도일 것 같다. 스트리퍼로 일하는 아노라는 클럽에 찾아온 재벌 2세 이반과 만나고 어쩌다보니 결혼까지 하게 된다. 이를 이반의 부모님이 알게 되면서, 서로의 방식과 방향대로 수습하고자 이리저리 날뛰는 이야기다. 


나에게 '아노라'는 장점과 단점이 매우 뚜렷한 영화다. 장점은 웃기다는 것, 단점은 불편하다는 것이다. 


고작 만 하루, 이반 부모님의 부하(?)들과 아노라는 목적은 다르지만 목표는 하나인 채로 좌충우돌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쉴새없이 웃음이 터진다. 슬랩스틱과 사르카즘 사이에서 폭소와 어이없음의 웃음을 종횡무진하다보면, 김혜리 기자가 말한대로 '이렇게 재밌어도 되나' 싶은 지점이 온다. 그리고 반전이 없어 도리어 반전일 것 같은 후반부, 말 그대로 상황이 모두 '해소'되고 나면 막연한 허탈함과 적막함이 덮쳐오며 뚝 끊기듯이 엔딩 크레딧이 등장한다.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영화관에 불이 들어온 순간 이게 맞는 건지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워서 유투브에서 해석 영상을 여러 개 찾아보기도 했다.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다만 이 영화를 단순 B급 코미디가 아니게 만든 것이 엔딩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 미묘한 지점이 늘 나를 영화 앞에서 작아지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고.


내가 느낀 불편함의 원천은 성에서 기인한다. 그동안 청불 영화를 안 본 것 같진 않은데, 입장 전에 신분증 검사하는 건 너무 오랜만에 겪어봐서 낯설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신분증 검사가 왜 필요했는지 절실하게 느꼈다. 뭔 야동마냥 여러 명의 여성들이 주요 부위를 드러내고 유사 성행위를 하는 장면을 진득하게 보여주는데 와중에 배경음악은 제법 까리해서 기분이 더 묘했다.


이처럼 노출과 노골적인 묘사만으로도 유교걸인 내게(!) 거부감을 주기도 했지만, 더 불편했던 지점은 주인공의 직업 설정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극 전반의 갈등 구조나 권력 관계가 드러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논란이 될 수 밖에 없는 설정이다. 그렇다면 주제의식이나 메시지에서 당위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아노라는 성노동자여야만 했는가? 사실 성노동자가 아니면 이야기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필연성이 설득하는 방향이, 궁극적으로 그를 통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나에게는 와닿지 않았다. 법정에서 또박또박 말하던 아노라와 피곤하게 퇴근하던 아노라의 맨얼굴에 비치던 여명 같은 것들을 떠올리면, 직업이라는 한 겹의 오해를 치워냈을 때 만나는 평범한 인간 여성에 대해 그리고자 하였는가 싶다가도, 이고르와의 지나친 텐션이나 이반의 부모들 앞에서 끝내 바스러지듯 물러서는 걸 보면 성 노동자의 비극성을 일종의 '노란장판' 감성에 찍어낸다고까지 느껴졌다.


션베이커 감독은 늘 사회 바깥에 존재하는 직업군에 대해 관심을 갖고 영화를 만들어왔다고는 하는데, 그것이 일종의 시혜적 시선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세계 바깥의 세계를 다루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의미있다고 생각하고 적극 지지한다. 그러나 그 세계 내에서 부당하게 고통받고 있는 누군가, 성노동 산업으로 인해 파급될 어긋난 인권 의식 등을 생각하면, 그러한 시도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결국 영영 이해하지 못한 채 영화계와 한 발짝 멀어지나 싶던 찰나, 콘클라베를 보게 되었다.


후기에 따르면 추기경 할아버지들의 mean girls (퀸카로 살아남는 법) 이라길래 우스꽝스러운 기대를 품었는데, 생각보다 우아하고 생각보다 더 저열하였으며 그 모든 것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사실 이번에 보게 된 세 영화 중 극 자체의 재미로만 따졌을 때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영화는 교황 서거 후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콘클라베 과정을 담고있다. 그리고 당연히(?) 영화는 정치적이다. 이념과 가치관이 대립되고 누군가의 추문이 드러나며 그것을 밝히기 위한 수단을 두고 싸운다. 사실 이것이 '종교'라는 일종의 유리관 내부의 이야기이고, 나는 그것을 외부에서 바라보고 있으며 그 영향이 나에게는 그다지 미치지 않는 '가상'이라는 점에서 웃음이 나왔지만, 때가 때인지라 자꾸만 현재 상황에 대입해보게 되어 가슴 한켠이 답답해지곤 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젠체하지 않는다. 애초에 극의 원작인 로버트 해리스의 소설 콘클라베부터가 공항소설로 가볍게 페이지터너로 읽기 좋다는 점에서 태생적 한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그 포인트가 좋다. 억지로 거룩한 척을 하거나 교조적 교훈을 내보이진 않지만, 끝내 카톨릭 바이럴 영화였던가 싶을 정도로 아름답게 중요한 메시지를 펼쳐보인다. 무엇보다 극 내내 여상하게 불편함을 툭툭 건드리다가 꽤나 간편하게 모든 문제를 해소해버리고 마는 용두용미까지. 사실 너무 안일한 구조 아닌가 싶었는데, 돌이켜 되새김질해보니 영화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모든 장면 그 사이에 설명하고 있었다. 당신이 불편한 게 맞다고, 불편하게 느껴야만 하는 것이라고.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전형적이다 싶을만큼 각 캐릭터에는 특성이 명확하다. 세속과는 유리되어 일종의 특권을 부여받은 그들이 더 높은 단계로의 욕망을 드러내며 약점이 노출되는 과정이 서사의 전개이고, 관객들은 개개인에 대한 인간적 공감보다는 계급 전복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극과 인물에 몰입한다.


사소한 디테일부터 장엄하고 황홀한 미장센까지 정말 덕후를 환장하게 만드는 작품이 아닐 수 없어서, 이에 대해 누구라도 붙잡고 떠들고 싶은 마음뿐이다. 제발 콘클라베 봐주세요, 네?


마지막으로는 안 볼 수가 없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17을 보았다. 당연히 천년만년 걸려있을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기하급수적으로 관수가 줄어드는 걸 보고 허겁지겁 보게 되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쉽고 유쾌한 편이다. 미키는 지구에서 친구와 하던 사업이 망해 도망치듯 지구 밖의 행성 개척단의 '익스펜더블'에 지원하게 된다. 위험한 일을 하고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익스펜더블로서 열일곱번째 죽게 된 순간 살아나면서, 열여덟번째와 공존하는 '멀티플' 상황이 펼쳐진다.


물론 각색이 되었지만, 원작의 설정이나 이야기 줄기부터 봉감독의 전작인 설국열차나 옥자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 놀랍다. 이것이 봉의 오리지널 스토리가 아니라니 싶은 마음이랄까. 당연히 작품 전반에서 던져왔던 메시지는 이번 작품 역시 일관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계급문제와 인간의 존엄성, 그리고 자연 특히 동물과의 대립과 조화 같은 것들. 그리하여 대단히 새롭지 않게 느껴진다는 점이 단점이라면 단점일 것이다.


많이들 언급하고 있는 부분 같은데, 봉준호 감독의 작품 세계를 영어 작품과 한국어 작품으로 나눌 수 있고 관객들의 취향 또한 갈릴 수 있는 것 같다. 대체로 영어 작품이 독특한 상징이나 비일상적 배경을 통해 보다 엣지있고 선명하게 표현된다면, 한국어 작품들은 은근한 멋 같은 게 있는듯 하다. 가장 두드러지게 느끼는 것은, 영어 작품에서 과장되게 표현되는 대립항, 안타고니스트 - 사실 이렇게 거창하게 말 붙이기 민망할 정도로 그냥 '빌런', '악당' 그자체의 우스꽝스러운 캐릭터 표현이다. 틸다 스윈튼, 제이크 질렌할, 그리고 미키17의 마크 러팔로까지... 연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배우들의 연기 차력쇼랄까. 이에 대해 봉감독 본인은 SF처럼 배경 설정이 달라지면 '고삐가 풀린다'고 하던데, 그 표현이 너무나 와닿는 캐릭터의 비주얼과 액션을 보다 보면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캐릭터가 납작해지면서 전체적인 극 자체도 입체성이 떨어지고 평평하게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메시지까지 제법 명확하면 어쩐지 '이걸... 꼭 영화로... 봐야 할까요...?' 같은 의문만 남게 된다. 미키17 역시 쉽고 명확하다는 점에서 대중영화의 미덕을 갖추고 있지만, 과연 대중이 기대한 바가 그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대중 중 하나인 나로서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져서 아쉬웠다. 다른 대부분의 대중 역시 마찬가지인지 흥행 실적이 그다지 좋지는 않다는 기사를 방금 확인했다.


기대가 너무 커서인지 봉감독의 신작을 볼 때마다 미묘하게 아쉬움이 남는 것 같다. 보고 나서 개운하게 좋았다 싶은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오스카 수상작인 기생충 마저도 그랬다. 그러나 처음엔 잘 모르겠다가도 씹다보면 단 맛이 나는 백미처럼, 이상하게 곱씹다보면 좋았던 디테일들이 떠오르니 그 역시 봉준호의 힘이겠다 싶다. 여전히 다음편을 기대하게 한다는 점에서 대단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마샬과 일파는 찐사랑이었을까. 유독 '그 부부'가 떠올랐던 건 나만이 아니었겠지. 정말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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