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25의 게시물 표시

작은 어항 속을 들여다보며

이미지
  *다이소에서 이것저것 사 본 어항 악세서리 처음 물고기를 키우게 된 것은 자발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아이가 물고기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친정 엄마 집에서 구피 몇 마리를 데려오게 되었다. 구피는 생각보다 잘 먹고 잘 움직였다. 매일 먹이를 주면 어김없이 위로 떠올라 밥을 받아먹는 모습이 기특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항 청소를 하던 중 큰 사고가 벌어졌다. 물 온도나 환경 변화 때문이었는지, 데려온 구피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몇 마리만 가까스로 살아남았고, 이 비극은 온전히 내 부주의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작지만 분명한 생명이 눈앞에서 죽어간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후 문득, 물고기들은 어떻게 잠을 자는지 궁금해졌다. 물고기는 눈꺼풀이 없기 때문에 감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아주 늦은 밤, 불을 끄고 어항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조용히, 마치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듯 정지해 있었다. 물속에서 그렇게 자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이 낯설고도 신기했다. 반면 아침이 되면, 사람이 어항 근처로 다가가기만 해도 잽싸게 몰려와 먹이를 달라고 아우성치는 모습을 보면, 참 생명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어항 속 구피 한 마리의 배가 유난히 불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 데려올 때부터 조금 불러 있었는데, 그제야 새끼를 밴 상태였음을 알게 되었다. 구피는 일반적인 물고기처럼 알을 낳는 것이 아니라, 몸속에서 알이 부화된 후 살아 있는 새끼를 낳는 ‘난태생’ 방식을 따른다. 실제로 며칠 후, 그 어미는 작은 새끼 구피들을 여럿 낳았고, 순식간에 어항은 작고 투명한 생명들로 가득 찼다. 구피의 번식력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서 그 과정을 목격하니 감탄스러웠다. 그러나 그 이후 상황은 순탄하지 않았다. 출산을 마친 어미 구피가 다른 젊은 개체들에게 집요하게 쫓기고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다. 일부 사람들은 출산 직후 어미에게 남아 있는 냄새나 움직임 등이 다른 구피들을 자극하여 공격적인 반응을...

윤수일, 로제 그리고 나 렛츠고 (feat. 아파트)

이미지
    2024 년 초반에 한국영화 < 콘크리트 유토피아 > 를 주제로 뉴스레터를 썼었다 . 가상의 디스토피아 상황 , 콘크리트로 만든 가짜 유토피아에서 나름의 질서와 규칙을 가지고 그곳이 유토피아라 믿고 싶었던 사람들 . 내가 꿈꾸는 서울 / 수도권의 신축 아파트 또한 콘크리트 유토피아 같은 것일까 … 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가지지 못한다고 너무 후려치는 것이리라 . 어쨌건 한국의 좁은 땅덩어리에 비해 수도권 특히 서울 집중 현상이 심한 우리나라의 특성 상 , 질 좋은 일자리가 몰린 서울과 수도권 일부는 어디를 가나 높고 거대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들이 가득가득하다 . 특히 잘 사는 동네에 우뚝 솟아 있는 고급 아파트 단지들은 대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일까 , 집 안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말초적인 호기심을 자극할 만큼 외부와 아파트 내부가 마치 성벽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만 같다 . 그런데 더 슬픈 건 그런 성벽 같은 아파트들에 비해 인간미 넘치게도 (?) 낡고 오래되고 외부인을 차단할 성벽도 없는 내 본가 구축 아파트조차 내 월급과 대출한도로는 평생 살 수 없다 . 네이버에 '서울 구축 아파트'를 검색해서 랜덤으로 가져온 이미지이며 특정 아파트와는 상관없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추상적인 생각일 뿐이었던 내 집 마련이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 가능하다면 최대한 오래 캥거루족을 하고 싶었지만 , 내년 5 월경에 재건축으로 인하여 본가 아파트에서 강제로 이주를 해야 하기 때문 . 부모님이 재건축이 끝날 때까지 머물 곳은 지금 회사에서 너무나도 멀기에 , 꼭 매매가 아니라 전세 , 월세이더라도 어쨌든 강남권 출퇴근을 할 수 있는 집을 찾아 강제로 독립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 살면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소비이자 거의 평생에 걸쳐 갚아야 할 대출이라는 무게가 있는 만큼 , 내 집 매매를 계기로 내가 지금 처한 위치와 우리 사회에 대해 더더욱 냉정하게 배우고 있다 . 요즘은...

힙스터도 오타쿠도 인텔리도 될 수 없지만

이미지
  힙스터가 되기엔 감각을 타고나지 못한 것 같다. 오타쿠가 되기엔 과몰입이나 열정이 한끗 부족하다고 느낀다. 인텔리가 되기엔 지식적 역량이나 공부를 향한 노오력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그 모든 방향으로의 욕망은 상시 존재해서 늘 맛보기 스푼을 품고 여기저기 간을 보러 다닌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쩝쩝거리며 나타나는' 강아지 짤과 같달까. 그리하여 이번달의 삼갈래 맛보기 스푼에 대한 감상을 고합니다. 론 뮤익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지난 4월부터 진행중인, 작가 론 뮤익의 개인전에 다녀왔다. 론 뮤익은 예전 리움 전시에서 처음 이름을 알게 되었는데, 너무나 진짜같아 도리어 가짜같은 그 리얼리티가 유독 인상적이어서 흥미를 갖고 있었다. 사실 예술사적 의의나 작품 개별에 담긴 함의같은 것은 잘 모른다. 그러나 작품 관람 자체만으로 흥미로운 경험인 건 제법 보편적인 느낌인지 인기가 어마어마해서, 평일에 겨우 방문할 수 있었다.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론 뮤익의 작품 수는 10여 점으로 그렇게 많지는 않다. 작가가 직접, 손수 작업을 하는데다 아주 정밀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과작할 수밖에 없는 걸 고려한다면, 작가 전생애의 작품세계에서는 꽤 높은 비중일 것이다. 과연 하나 하나 들여다볼 때마다 콧털이나 팔꿈치의 주름같은 것들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 보자면 어딘가 익살스러운 면도 있다. 예를 들어 속옷 차림의 중년 아저씨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닭과 대치하는 작품 '치킨 맨'을 보면 그렇다.  반면, 움푹 들어간 공간에서 줄을 서야만 볼 수 있는 '어둠 속에서'는 기괴함과 음산함이 느껴진다. 한참 줄을 선 뒤에 볼 수 있는 것 치곤 애걔 싶기도 하다는 점에서 로마의 진실의 입같기도 하고 놀이동산의 공포 체험같기도 하다. 심연의 무언가를 마주하는 느낌에서 니체의 명언을 떠오르게도 하고, 윤두서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은 압도감이 들기도 하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것들까지 보다 보면 절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