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일, 로제 그리고 나 렛츠고 (feat. 아파트)
2024년 초반에 한국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주제로 뉴스레터를 썼었다. 가상의 디스토피아 상황, 콘크리트로 만든 가짜 유토피아에서 나름의
질서와 규칙을 가지고 그곳이 유토피아라 믿고 싶었던 사람들. 내가 꿈꾸는 서울/수도권의 신축 아파트 또한 콘크리트 유토피아 같은 것일까…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가지지 못한다고 너무 후려치는 것이리라. 어쨌건 한국의 좁은 땅덩어리에 비해 수도권 특히 서울
집중 현상이 심한 우리나라의 특성 상, 질 좋은 일자리가 몰린 서울과 수도권 일부는 어디를 가나 높고
거대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들이 가득가득하다. 특히 잘 사는 동네에 우뚝 솟아 있는 고급 아파트 단지들은
대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일까, 집 안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말초적인 호기심을 자극할
만큼 외부와 아파트 내부가 마치 성벽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만 같다. 그런데 더 슬픈 건 그런 성벽 같은
아파트들에 비해 인간미 넘치게도(?) 낡고 오래되고 외부인을 차단할 성벽도 없는 내 본가 구축 아파트조차
내 월급과 대출한도로는 평생 살 수 없다.
네이버에 '서울 구축 아파트'를 검색해서 랜덤으로 가져온 이미지이며 특정 아파트와는 상관없음 |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추상적인 생각일 뿐이었던 내 집 마련이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가능하다면 최대한 오래 캥거루족을 하고 싶었지만, 내년 5월경에 재건축으로 인하여 본가 아파트에서 강제로 이주를 해야 하기 때문. 부모님이 재건축이 끝날 때까지 머물 곳은 지금 회사에서 너무나도 멀기에, 꼭 매매가 아니라 전세, 월세이더라도 어쨌든 강남권 출퇴근을 할 수 있는 집을 찾아 강제로 독립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 살면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소비이자 거의 평생에 걸쳐 갚아야 할 대출이라는 무게가 있는 만큼, 내 집 매매를 계기로 내가 지금 처한 위치와 우리 사회에 대해 더더욱 냉정하게 배우고 있다.
요즘은 인터넷에 공짜 정보가 너무 넘치는 정보 과잉 시대이기에
굳이 책으로 부동산의 기초를 배울 필요는 없지만 인터넷으로 찾아보면서 계속 딴짓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우선은 아래와 같은 책 한 권으로 기초적인
내용을 배웠다. 전용면적과 공급면적, LTV / DSR / DTI, 일반형과
확장형, 분양권과 입주권, 용적률, RR(로얄동 로얄층) 등등, 인터넷에도
다 있는 내용이긴 하지만 차분히 앉아서 머리에 넣는 것이 마음가짐부터 다르리라. 이렇게 아주 기초적인
내용은 책으로 먼저 배운 후 유명한 부동산 커뮤니티, 게시판 등을 탐색하고 예산 범위 내의 집 매물을
실제로 보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물론 어찌어찌 매물을 결정한다 해도 이후 매매계약서나 잔금 일정 등의
더 복잡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역시나 제일 중요한 건 대체 어떤 집으로 결정하느냐의 문제이다. 게다가 정권교체 시기와 겹쳐서 더더욱 어렵다.
서울 안에서 잠실, 반포
같은 동네와 노도강이 집값 차이가 나는 건 요즘 초등학생도 안다. 그러나 부동산이 이제 내 얘기로 다가오면서
똑 같은 아파트 안에서도 당연히 단지별로 가격 차이가 나고 같은 단지에서도 동, 층수, 방향에 따라 수천만원이 왔다갔다하는 이유를 체감하게 되었다. 왜
같은 아파트인데 단지별로 이렇게 차이가 나지? 왜 같은 단지인데도 차이가 나지? 혹은 광명뉴타운이나 구성남 시가지나 비슷한 급지인데 동일한 평수의 신축 브랜드 아파트 시세가 왜 광명이 더
싸지? 이렇듯 방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슥슥 매물을 볼 때는 그저 숫자로만 보이던 집값들은, 발품을 팔아 그 동네를 돌아보고 매물을 직접 보는 순간 단순한 2차원
숫자가 아닌 실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욕망, 수요와 공급, 미래와
과거가 모여 만들어지고 있구나 비로소 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부동산은 필연적으로 한국 사회의 모든 정치와 정책과
정서가 함께 상호작용하며 꿈틀거리는 하나의 생명체이다. 현실적으로 인구 수 대비 국토 크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 특히 서울은 거주 형태가 거진 아파트이므로 아파트가 평균적인 한국인의 인생을 대변한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윤수일의 <아파트>가 처음 발표된 연도가 1982년이다. 최근 야구장에 갔다가 울려퍼지는 <아파트>를 따라부르며 멍하니 ‘그 시절에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갈 수 있는 좋은 아파트에 살 정도면 얼마나 부자일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시절에는 너무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썩다리 취급받는 서울의 구축 아파트들도 80~90년대에는 중산층의 상징이었으리라. 그래도 우리 부모님 세대는
외벌이로 조금만 저축하면 충분히 살 수 있었다던데, 어쩌면 <아파트>에
나오는 ‘너의 아파트’는 지금만큼 접근하기 힘든 가격대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태어나 보니 이미 (지금은
구축인) 서울 20~30평대 아파트에 살고 있던 우리 세대가
커서 서울의 자신의 집을 마련할 때가 되니 부모님 세대보다 난이도가 너무나 급상승했다. 최근 기사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13억대 (주택이 10억대) 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윤수일의 아파트보다 먼저 생각나는
로제 & 브루노 마스의 <아파트>가 2024년작이다. 부모님
세대가 부르던 아파트와 우리 세대가 부르는 아파트는 이렇듯 사뭇 달라졌다. 우리의 자녀 세대가 부모가
되어 부르는 아파트는 또 어떻게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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