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25의 게시물 표시

10년 후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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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나의 청소년 시절을 떠올리면 언제나 일본 음악과 예능 프로그램들이 함께 떠오른다.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그때, 일본의 문화는 마치 전파를 타고 어쩌다 흘러들어오는 빛처럼 내게 다가왔다. 특히 ZONE이라는 밴드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연말이면 일본의 가수들이 총출동하는 화려한 방송이 있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 수 없으면서도 그저 즐겁게 바라보곤 했다. 화면 속 소녀들이 부르던 노래는 언어의 벽을 넘어 마음에 닿았고, 나는 그 순간을 내 비밀스러운 추억으로 간직하게 되었다. 그 시절의 나는 일본말을 몰랐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순수하게 음악에 빠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애정했던) 쟈니스 주니어들이 나와 시끌벅적 떠들던 예능, TV 화면 속에서 반짝이던 무대, 그리고 노래방에서 뮤직비디오로 접하는 일본 가수들의 모습들. S.E.S가 일본에서 낸 앨범, X Japan의 곡에서 느껴지던 압도적인 에너지. 돌이켜보면 그것들은 단순한 취향을 넘어 나의 사춘기를 함께 통과해준 배경음악이었다. 오늘은 문득 ZONE의 노래가 떠올랐다. 「Secret Base -君がくれたもの-」, 너와 함께한 여름의 끝과 다시 만날 날을 노래하는 곡. 나는 그 노래를 처음 들었던 순간을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 무대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풋풋하면서도 애틋했고, ‘10년 후 다시 만나자’는 가사는 어린 마음에 어쩐지 크게 울렸다. 시간은 흘러 이제 한국 나이로 마흔을 바라본다. 여름이 끝나가는 계절에 이 노래를 다시 들으며 생각한다. 내 인생의 여름도 저물어 가는 것일까, 아니면 늦여름의 따스한 햇살이 아직 남아 있는 걸까. 청춘의 열기와 어리숙함이 뒤섞였던 그 시절, 일본의 음악과 문화는 내게 한때의 계절 같은 것이었다. 「Secret Base -君がくれたもの-」를 다시 꺼내 들으며, 나는 그 여름의 빛과 그림자를 다시 마주한다. 노래 속 ‘최고의 추억’이라는 말처럼, 그것은 나의 사춘기를 환하게 비추던 불꽃놀이 같은 ...

사진첩을 착즙하여 쥐어짠 7-8월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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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생러 를 자처하기는 커녕 차마 갓생을 살고 싶다는 선언 효과조차도 민망하다. 작년 11월부터 올해 2-3월까지는 일이 진짜로 바빴다. 4월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바빴던 겨울 시즌이 지나 좀 쉬어도 된다는 핑계, 5-6월은 집 보러 다니고 부동산 공부하느라 정신없었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었다. 그러나 핑계삼을 건수도 없는 7,8월에 제일 글감이 없고 공유할 만한 문화적, 사회적 경험이 없다는 건 그냥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인 것이다. 이제 괜히 어설프게 갓생을 살겠네 어쩌고 하면서 선거철 정치인들마냥 텅 빈 다짐이나 반성을 늘어놓지 않겠다. 나는 이렇게 지극히 게으르며 강제가 아니면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이고 그것을 숨기지 않고 당당한 나_ ☆ 를 추구미로 삼아야겠다.  아무튼 7월을 건너뛰고 쓰는 뉴스레터인데도 내용이 빈약하여 송구스럽다. 여름 내내 야근 거의 없이 워라밸도 좋았고 8월에는 광복절을 낀 황금연휴까지 있었는데 말이다. 그나마 사진첩을 긁어서 조금이라도 읽을 거리를 착즙해 본다. <요즘 물가 무섭다면, 최소 반나절 시원한 실내에서 공짜로 보내는 방법>  하반기에 입주할 아파트를 위해 가전 가구 등을 검색해 보다가 가구 박람회를 알게 되었다. 물론 코엑스 주류박람회는 작년에도 얼리버드로 예매해서 갔었고 올해도 다녀왔을 정도로 이미 알고 있었고 트위터 등에서 입소문으로 유명세를 탄 불교 박람회나 서울국제도서전시전, 그 외 커피와 베이커리 관련 박람회도 알고는 있었지만 주류박람회를 제외하고는 굳이 돈까지 내고 가기 귀찮아서 특별히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대부분 가구박람회는 정해진 날짜까지 사전등록 시 무료인 경우가 많아서, 한 번 구경삼아 마곡 코엑스의 2025 서울가구쇼에 갔다가 침대와 식탁을 꽤나 만족럽게 구매했다. 어차피 새 집에 가면 꼭 사야 하는 가구들이니 안 사도 되는 충동구매가 아니라는 합리화가 가능해서 더 만족스러웠을지도? 익숙한 대기업 브랜드들은 물론이고 자체 공장을 두고 주문제작하는 중소업체들...

비염인의 향수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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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향수를 잘 알지는 못한다. 예민하게 탑, 미들, 베이스 각각 무슨 향인지 잡아내거나, 브랜드별로 어떤 향수인지 구분하고 알아내지도 못하고, 향 설명을 풍성하게 잘 하지도 못한다. 심지어 약간의 비염도 있다. 다만 그 무엇보다 '좋은 향'에 집착한 지 어언 몇 년, 이런 저런 향 제품들에 알짱거려보면서 현재까지의 기준으로 내 취향인 것들이 생겨났다. 너무 단 것은 부담스럽고 지나치게 우디하고 묵직한 것도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청량한 느낌은 좋아하지만 지나치게 가볍기보다는 독특한 포인트가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렇게 내가 시도해보고 좋.느를 가졌던 것들에 대해 기록해본다. 1. 프레쉬 헤스페리데스 자몽향 이제는 철수해버린 비운의 브랜드 프레쉬의 자몽향 향수. 지속력이 똥망이긴 하지만 뿌리는 순간 그 상큼하고 상쾌한 향이 정말 좋았다. 이 향은 너무 좋은데 너무 잔잔하기도 하고 오래 가지도 않아 많이 뿌려야 하고 근데 또 용량 대비 가격은 부담스러우니, 비슷한 느낌이 난다는 더바디샵의 핑크그레이프후룻도 써봤는데, 언뜻 비슷한가 싶다가도 또 전혀 다른 탑노트나 잔향이었다. 그래서 결국 프레쉬를 찾게 되는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았을 때 정말 좋았던 기억이 난다. 2. 불가리 옴니아 아메시스트 불가리 특유의 독특한 향수병 중 보라색이다. 한때 '크레파스 향'에 한껏 빠졌는데, 이것이 원류였다. 워낙 저렴하게 비슷한 향들이 많이 쏟아지다보니 언뜻 이것도 싼티(...)가 나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역시 코가 그리워하는 엣지 있는 향. 그리하여 잊을 만 하면 뿌리게 되는 향이기도 하다. 3. 클린 웜코튼/소프트런드리 솔직히 말하자면 두 가지 각각이 어떤 향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향알못이라..미안합니다..) 다만 둘 다 혹은 둘 중에 하나는 정말 집착할 정도로 좋아했어서, 올리브영에 가면 시향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향 범벅으로 만들곤 했었다. 그러다가 회사에 정말 안 좋아하던 사람이 이걸 열심히 뿌리고 다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