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복순>, 소녀는 나중에 커서 킬러이자 애 엄마가 되었어요
소녀는 자라서 킬러가 되고, 킬러가 된 소녀가 낳은 소녀는 또 킬러가 되고. 넷플릭스에서 최근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영화 <길복순>을 요약하자면 이런 영화다. 어쨌건 살인도 직업은 직업이니까 킬러 워킹맘도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다는 그런 이야기. 보통 킬러 영화라고 하면 기대되는 화려하고 대단한 액션과 속도감 대신, 여성 ‘킬러’영화가 아닌 ‘여성’ 킬러에 좀 더 무게추를 둔 소프트한 느와르물로 이해하면 쉽다.
우선 겉으로는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들 중 손에 꼽게 압도적이다. 한국 영화계에서 손꼽는 S급 주연들인 전도연 설경구 투톱에 조연은 떠오르는 기대주 구교환, 김시아, 이솜 그리고 <불한당>과 <킹메이커>등을 감독한 변성현 감독까지, OTT가 아니라 영화관에 걸려도 손색없을 정도의 네임밸류를 자랑한다. 그러나 ‘여성’ 킬러 영화니까 기존의 느와르, 킬러물과 다르게 보여야 한다는 노이로제 때문인지 혹은 원래 방향성을 액션보다는 아기자기한 맛에 두었는지는 몰라도, 전체적인 스토리만 봐서는 한 편의 영화라기에는 다소 부족하고 긴장감 없는 서사가 굉장히 아쉽다. 똑 같은 직업 세계를 다루더라도 여자, 애엄마면 이상하게 구질구질한 생활감이 꼭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 초반에 복순(전도연)이 재일교포 야쿠자를 죽이면서 “이마트에서 3만원 주고 산 칼”이라고 말한다거나 딸(김시아)과 밥 반찬을 가지고 티격태격한다거나 하는 장면을 보면 킬러든 뭐든 간에 여자 캐릭터는 ‘직업인이기 이전에 여자’를 강조하는 캐릭터여만 프로페셔널한 직업인 캐릭터로써의 가치를 갖는 것인가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복순도 그리고 우리 모두도 직업인이기 이전에 여자이기도 하지만 여자이기 이전에 직업인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러나 선 굵은 서사는 없는 대신 중간중간 클리셰를 파괴하는 듯한 부분들이 아쉬움을 채워 준다. 일단 영화 중간에 퇴장하기에는 너무 유명한 구교환과 이솜, 그리고 게다가 넷플릭스 <소년재판> 시리즈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범인인 남중생 역을 맡아 주목받은 배우 이연까지 싹 다 허무하게 죽음을 맞아 일찍 사라진다. 우스갯소리로 <명탐정 코난> 시리즈에서 유명한 성우가 등장하는 회차는 그 성우가 맡은 캐릭터가 범인이라던데, <길복순>은 유명한 배우들이 일찍 극에서 사라지는 것 자체가 반전인 셈이다. 또한 일드 <심야식당>마냥 초반에 킬러들이 일(?)을 마치고 옹기종기 모여 지친 하루를 함께 마무리하는 작은 동네 술집이 나오는데, 주인공들이 모여서 담소를 나누는 아지트 같은 식당이라는 설정이 꽤나 흔하고 솔직히 오글거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허름하지만 정겨워 보였던 아지트는 극 중반, 순식간에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만 살아남는 아수라장으로 돌변하며, 불의의 사고로 어쩔 수 없이 은퇴한 킬러이자 그저 인심 좋은 할아버지 인줄 알았던 사장도 김복순을 죽이려 들다가 역으로 자신이 죽음을 맞이한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는 구멍 하나 없이 훌륭하며, 특히 예전에 <미쓰백>에서 납치당한 아이 역이었던 김시아가 어느새 커서 복순의 딸이자 레즈비언이라는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사춘기 딸로 출연한 점이 인상적이. 개성적인 마스크도 그렇고 앞으로의 다양한 연기가 기대되는 배우이다.
<길복순>에 대한 평점과 리뷰는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남몰래 이 영화를 좋아하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들이 분명 있을지라도, 살인하는 여자 원톱 캐릭터,
그리고 어쨌거나 엔딩은 나중에 킬러가 된 소녀가 자신을 죽이려 했던 남성 킬러를 죽이는 엔딩이지 않은가. 분명 한국의 주류 감성에서는 꽤나 벗어나 있음에도 이렇게도 화려한 라인업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괜히 벅차다. 흔하디 흔한 CJ식 감성 대형 영화 대신에 집에서 이런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것 또한 OTT 시대의 특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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