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로망
어린 시절 본 소설(아마도 팬픽) 속 그런 장면이 있었다. 주인공은 준수한 외모에 직업도 훌륭해서 인기가 많은데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관심갖지 않자, 주변에서 온갖 참견과 시비, 의심을 해대는 바람에, 결국 명품 반지를 사서 끼고 약혼한 척 한다. 앞 뒤 장면과 주인공의 운명같은 건 잘 기억나지 않고, 소녀의 마음엔 그 장면만이 오롯이 남아 로망으로 굳혀지고 말았다. 남부러울 것 없는 조건, 끝없는 관심과 그 속에서 은밀하게 감춰온 비밀, 몇백쯤 지를 수 있는 재력(이게 제일 중요함) 같은 것들.
그리하여 이젠 더 이상 사회에서 굳이 결혼 여부 혹은 남친 유무를 묻거나 소개시켜주겠다거나 하는 버거운 관심 따위 받지 않는 초연한 나이가 됐지만, 한편으론 재력은 0에 수렴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로망은 남아서 아름다운 반지를 검색해보곤 한다. 마음에 담아두었던 '언젠가 내가 약혼한척 하기 위해 사서 하고 다니고 싶은 링 리스트 탑텐' (두둥)
1. 까르띠에 저스트앵끌루
못을 동그랗게 말아놓은 듯한 모양으로 일명 '못 반지'. 70년대 뉴욕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특이한 아이디어의 디자인이라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다. 팔찌도 있고 두세번 감아놓은 것도 있고 다이아가 촘촘히 박혀있는 것도 있는데, 원형이 못 모양이다보니 과할수록 도리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얼마나 다행인지! 공홈 가장 낮은 가격 기준 189만원.
2. 까르띠에 트리니티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세 개의 링이 서로 얽혀있는 듯한 모양이다. 세 개나 있다니 너무 복부인의 왕반지스럽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스몰 사이즈는 모델이 착용한 사진을 보니 제법 라인이 날렵해 세련되어보인다. 한 번에 세가지 느낌을 모두 가질 수 있으니 개이득. 공홈 가장 낮은 가격 기준 204만원. 사실 까르띠에는 러브라인이 젤 유명하지만 나에게 그 라인은 큰 감흥을 주지 않는다. (이또한 얼마나 다행이야!)
3. 불가리 비제로원
하도 인기 많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대체 왜 인기가 많은지는 몰랐다가, 우연히 유투브 브이로그에서 누군가 목걸이를 하고 나온 걸 봤는데 이상하게 영롱해보였다. 그 이후부터는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마성의 매력이 있다. 공홈 설명에 따르면 혁신적이고 과감하고 선도하고 어쩌고 하지만, 사실 개인적인 인상으로는 특이하거나 인상적인 디자인은 아닌데 불가리 로고와 어우러지면서 간지가 업그레이드 되는 것 같다. 공홈 가장 낮은 가격 기준 180만원인데, 그래도 딱 봤을 때 비제로원이다 싶은 걸로 고르자면 252만원.
4. 부쉐론 콰트로
트리니티에 이어 이번엔 콰트로. 그렇다면 이름대로 네 가지가 있냐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2004년 선보였다고 하니 역사가 대단히 오래된 것은 아닌데, 그런 것 치곤 꽤나 클래식하게 인기있는 편인듯. 레드, 화이트 등 다양한 컬러 옵션이 있는데, PVD라는 소재로 구현되는 요 부분이 포인트. 다이아, 골드, PVD가 층층이 쌓인 건 천 만원대이고, 한 줄짜리도 깔끔하니 괜찮지만, 그럼 '콰트로'가 아닌 거 아닌가...? 그렇다고 콰트로다운 콰트로는 뚱뚱해서 데일리로 쓰기엔 좀... 공홈 가장 낮은 가격 기준 296만원.
5. 샤넬 코코크러쉬
데일리로 쓰고 싶다면 역시 샤넬 코코크러쉬. 물론 가격은 안 데일리지만... 매일 매일 착용한다면 하루에 만원어치 정도로 1년간 뽕뽑는 거니까 진정한 데일리일지도 모르겠다. 둥근 표면은 통통한데, 오징어 칼집같은 커팅 디테일이 더해져 귀여운 디자인. 공홈 설명도 귀엽다. '가브리엘 샤넬에게 만남이란 행운과 운명이 교차하는 게임을 의미했습니다. 코코 크러쉬 컬렉션은 운명적인 만남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실 이건 인게이지먼트링이라기보다 그냥 나 혼자 쓸 것 같은 이미지긴 하지만. 공홈 가장 낮은 가격 기준 237만원.
6. 쇼메 비마이러브
몇 년 전 매일 출근길에서 마주쳤던 게 쇼메의 광고판(?)이었다. 파인주얼리 혹은 하이주얼리 쪽은 잘 몰라서, 브랜드 이름을 읽는법 조차 긴가민가 했지만, 비마이러브가 넘 귀여워서 기억에 남았다. 그러니까 비마이러브란 Bee my love로, 벌꿀집 육각형 모양이 연결되어 있는 형태다. 얼핏 밋밋해보일 수도 있는데 실제 웨딩링으로 하는 경우 가운데 또는 사이 사이에 다이아를 넣는 것 같다. 그럼 굉장히 고급져보이는데, 꼭 그럴 필요 없이 기본만 해도 깔끔하고 매끈해보인다. 공홈 가장 낮은 가격 기준 141만원.
7. 쇼파드 아이스큐브
쇼메 비마이러브 하면 연결지어 떠오르는 제품. 브랜드명도 디자인도 어쩐지 비슷하게 느껴진다. 불가리의 세르펜티까지, 일정한 형태가 반복되는 듯한 기하학적 디자인이라고 해야 할까. 공홈 설명에 따르면 얼음조각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우아함을 표현했다고 한다. 비마이러브처럼 다이아를 어디에 얼마나 넣냐에 따라 가격이 많이 달라지는 것 같은데, 공홈 기준 가격을 확인할 수가 없네.
8. 에르메스 아리안
사실 에르메스는 샹달링이 유명한데 이건 가격적 접근성이 좋기 때문인 것 같다. 디자인은 앞서 말한 까르띠에 불가리 등등에 비하면 투박한 느낌도 있다. 에르메스에서도 웨딩밴드로 추천하는 라인은 따로 있다. 그 중 아리안은 클릭아슈나 에버헤라클(?)처럼 노골적으로 H를 내세우지 않고 가늘고 세밀하게 라인을 만들어서 은은하고 청순한 느낌을 준다. 공홈 가장 낮은 가격 기준 181만원.
9. 티파니 T1
웨딩이든 인게이지먼트든 프로포즈든 티파니를 빼놓을 순 없지. 티파니 제품들은 대체로 여성들이 정말 좋아할 만한 심플하면서 엣지 있는 디자인이다. 티파니락이나 투게더도 예쁘지만, 개인적으로는 T1이 오리지널한 부분도 있고 깔끔하게 나오는 각이 눈에 띄는 것 같다. 와이어와 비슷한데, 약간의 비대칭이 주는 맛이 있어서 T1에 한. 공홈 가장 낮은 가격 기준 200만원.
10. 반클리프 아펠 뚜쥬르 시그니처 에또왈 웨딩 밴드
사실 반클리프에선 '요거다'하고 떠오르는 건 없었다. 유명한 걸론 1968년부터 시작되어 이제는 반클리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알함브라 라인이겠지만, 이건 샤넬 코코크러쉬보다도 더더욱 혼자 하고 다닐 법하지 않나 싶고 지나치게 큐트하달까 스포티하달까. (물론 누가 준다면 대환영입니다만) 웨딩밴드로 많이 꼽히는 건 뚜쥬르 같은데, 이건 정말 말그대로 Tous jours 모든 날을 위해 뭐 아무것도 없는 민자 링이어서 백단위의 돈으로 반클리프 가서 이걸...? 싶단 말이지. 그래도 좀 특색있으면서 웨딩밴드스러운 건 에또왈 쪽인 것 같다. 공홈 가장 낮은 가격 기준 26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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