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불가능
궁금하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어떻게 느끼고 감당하는지. 너구리 봉지를 뜯었을 때 다시마가 두 장 들어있다든지 예상치 못했던 친구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와 선물을 받는 서프라이즈는 당연히 기쁠 것이다. 반면 의지했던 동료의 뜬금없는 부서 이동이라든지, 일부러 찾아갔더니 휴무일이 아닌데도 카페가 문을 열지 않았다든지 하는 준비되지 않은 불운은 누구라도 싫을 것이다. 다만,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긍정적 에너지와 부정적 에너지의 무게가 어느쪽으로 기울어질지는 개개인의 성향이 클 것이다.
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책없이 긍정적인 기대를 폭발시키던 성향이었다. 그래, '었'다. 몇 번의 인간적 뒤통수와 거친 사회생활 nn년차를 거치고보니 대체로 시니컬해졌다. 일단 비관하고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모든 에너지를 탈탈 털어 고민하고 걱정했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스트레스의 가중과 동의어가 됐다.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예상치 못한 것들은 행운이라기보다 불운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여전히, 경품 이벤트에 응모한다든가 편의점에서 서프라이즈 마이키링을 사면서 내가 좋아하는 시나모롤의 키링이 단번에 나오길 기대한다 어리석게도.
그래도 가끔은 성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전 또 한 번의 '가챠-뽑기-'에 (드디어) 성공했다. 책 이야기다. 전혀 기대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던 책이 마음과 정신(!)에 큰 자국을 남겼다.
재밌다는 평을 잔뜩 듣고 잡은 책이 정말 재미있는 경우는 많다. 무난하고 뻔하다. 분명 재밌다고들 했는데 나한테는 별로인 책도 종종 있다. 아쉽지만 놀랍지는 않다. 그런데 어떤 사전정보나 기대나 평 없이 책을 고르게 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너무 많은 책이 쏟아지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좋다는 책을 읽기에도 모자란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고른 책이 정녕 좋을 확률도 그리 크진 않다. (몇 번인가 그렇게 빌렸던 책 중 사 할은 완독하지 못하고 반납했고 오 할은 읽긴 다 읽었지만 별 감흥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별 감흥 없이 책 제목들을 쭉 살펴보다가 골라왔다. 작은 기대이자 희망이라면, 저자가 카피라이터라는 점과 출판사가 제철소라는 점이었다. 그런데 일단 첫 페이지를 펼치자 그 다음은 그야말로 순삭이었다. 정신없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그것이 어떤 책이냐면, (두둥!) 바로 '가능한 불가능'이다.
제목이 너무 재미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그랬다. 책 표지를 보면 더 심드렁해진다. 하얀 배경에 빨간 글자, 파란 이미지들의 조합이다. 그런데 그 밑에 문구 하나가 이상하게 눈에 박혔다. '1년에 딱 하나라면'. 뻔한 자기계발 책인가. 카피라이터 책이랬으니 마케팅 사례 책인가. 간단하게 답하자면 에세이이다. 이에 또 흥미가 식었을 친구들에게 영업해보기 위해 이 사람들을 끌어와보려고 한다. 김하나와 김민철, 홍인혜(루나파크) 그리고 박웅현. 개인적으로 믿고 보는 에세이스트들인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광고회사 TBWA의 카피라이터였다는 것. 그리고 '가능한 불가능'의 저자 신은혜도 역시 TBWA 출신의 카피라이터(였)다. 확실히 글맛, 말맛을 지어내는 직업이라 그런지, 긴 글도 잘 읽힌다. 다음 문장이 궁금해진다.
다만, 앞선 저자들의 책과 이 책이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이 있다. 또렷한 하나의 기획으로 응집력있게 구성된다는 점이다. '가능한 불가능'은 저자가 친구와 함께 인생에서 절대 못 할 거라고 생각해온 것,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온 것을 1년에 하나만이라도 해보기로 한 데서 시작한다. 자칭 '할 수 있어 프로젝트'를 통해 저자가 9년간 도전하고 성장한 이야기다.
'올해도 한 거 없이 지나갔네' 매해 반복되는 감상이고, '올해는 달라져야지 진짜로' 매해 반복되는 다짐이다. 스스로 질려서 이제는 다짐은 아예 대충 날려버리기까지 한다. 영어공부도 좀 하고 자격증도 따고 운동도 하고 어쩌고... 좌판을 여러 개 벌려두면 뭐 하나라도 팔리겠지 싶은데 막상 마감을 해보면 그 어떤 것도 소득이 없다. 그리고 또 손쉽게 나이(만) 먹고, 후회하고 스스로를 탓하는 반복. 그런데 진짜 딱 하나만 해본다고 하니까 솔깃했다. 선택과 집중. 대신 진짜 못할 것 같은 목표를 하나 찾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이 지점에 하나 더 놓인다. 저자에게 공감가는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단 첫 번째 도전부터 그랬다. '운전'이라니. 면허가 있긴 하지만 말 그대로 장롱면허다. 10년 넘게 운전대를 잡아본 적이 없다. 지금에 와서는 악셀과 브레이크 페달도 헷갈릴 수준이니, 그냥 운전을 못한다고 보는 게 맞다. 가끔씩 아쉽긴 했는데 큰 불편 없이 살다보니 주변에서 강권을 해도 잘 듣지 않았다. 그런데 저자의 도전을 보며 괜히 나까지 어깨가 들썩였다. 그것이 무려, 돈 내기를 걸고도 일이다 약속이다 하며 흘려보내다 11월에 시작해 12월에 성취한 결과라는 점에서, 더더욱 현실감이 느껴져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한 번 더 흥미에 에스컬레이터가 태워진다. 사실 첫 도전 챕터에서는 면허를 따고, 내기를 했던 친구도 도전에 성공해 자축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실질적으로 운전을 '써먹는' 부분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그런데 도전의 성공은 그 1년으로 끝나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몇 년 뒤에는 영어 공부를 목표로 한다. 그 후에는 하와이에서 학교를 다니게 된다. 그리고 '하와이에서 운전을 한다'를 목표로 한다. 그러니까 성취는 그 다음 목표의 밑거름이 되어, 연속적으로 또 다른 성취를 낳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닭이 달걀 낳는다는 당연한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동안 그 성취의 감각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의 다음 장, 그 다음 장, 서른 살의 불가능에서 첫 걸음을 내딛고 서른여덟 살의 최종 가능으로 만들어가는 과정마다 이상할 정도로 벅차올랐나 보다.
수영을 배우는 부분에서는 완전 초보자로서의 어색함,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그럼에도 해보겠다는 의지같은 감정들이 아주 촘촘하게 느껴졌다. 그것이 마음 그자체로 전해졌기에 읽으면서 저자를 응원하게 됐고 어쩌면 나 역시 무언가를 시작할 때 용기를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초라해도 뻘쭘해도 괜찮으니까. 나 말고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테니까. 방송통신대학을 다닐 때는 뒤늦은 학구열에 (한 10분정도) 불타올랐다. 결국 자퇴엔딩을 맞았기에(!) 학구열도 함께 자퇴해버렸지만(...)
그러다 후반부, 글을 쓰고 직접 출판기획서를 작성해 출판사들에게 원고를 투고하고 거절당하면서도 다시 문을 두드린 끝에 책을 출간하게 된 부분에서는 뻔한 코믹드라마의 해피엔딩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책을 덮으면서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대단히 새로운 내용은 아닐 수 있다. 극적이거나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납작하게 요약하자면, 번아웃 직전의 직장인이 이것 저것 해본 이야기다. 어쩌면 부지런히 자기계발하고 퍼스널브랜딩에 힘쓰는 전 직장의 후배 A가 더 화려한 경험담을 갖고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이 책이 나에게 주는 긍정적인 기운이 이토록 큰 것은 왜일까. 아마도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해보고 싶다'고 느끼게 하는 공감의 교차점들이 무수히 반복되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시시한 에세이라 넘기기에는 '퇴사 후 해외살이', '책 출판'같은 진부한, 그러나 쾌감이 느껴지는 포인트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니 감히 나는 이 책을 당신에게 추천한다. 벌써 올해도 1/3이 지나갔는데 이룬 게 없어서 서러운 당신에게, 매일 반복되는 쳇바퀴같은 일상이 질리는데 무언가 할 의욕도 용기도 선뜻 나지 않는 당신에게, 밤마다 내일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과 차라리 눈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교차하는 당신에게, 다녀오면 헛헛한 마음이 드는 약속이 끝나고 막 집에 돌아온 당신에게, 컴퓨터 모니터 우측 하단 시계가 6을 가리키기만을 간절히 또 간절히 기다리는 당신에게, 그럼에도 여전히 스스로가 안쓰러울 정도로 사랑스러워서 더 잘해주고 싶은 당신에게 말이다.
몇 가지 인상깊었던 문단을 소개하며 추천 (아니 제발 읽어봐달라는 간청) 을 마무리한다.
불가능하다는 걸 아는 것과 경험하는 건 차원이 달랐다. 지금까진 할 수 없어서 안 했다면 이제는 해봐도 할 수 없는 거였다. 훨씬 서글프고 비참했다. (...) 내가 그럼 그렇지, 까짓것 S에게 25만원 주지 뭐, 라고 자위하며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면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되려 착잡했다. 지금까지는 운전이 내 인생의 가장 큰 두려움이었는데, 그보다 '나는 해도 안 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종지부를 찍는 괴로움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걸 깨달은 순간, 겨자씨만 한 용기를 붙들고 학원으로 가서 운전 연수를 추가 신청하고 재시험을 등록했다.
누워 있을 때는 꼼짝하기 싫었는데 막상 밖으로 나오자 기분이 말도 안 되게 좋았다. '가기 싫어하는 나를 이겨냈다.' 이게 뭐라고, 기뻤다. 조금 전까지 피곤하다고 징징댔던 걸 까맣게 잊어버리고 걸어가는 내내 나오길 잘했다, 정말 잘했다 생각했다.
영어 공부를 해서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무턱대고 주눅 드는 마음이 사라졌다는 것. 모르면 모르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나 자신을 창피해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되어 좋다.
무언가를 처음 배우는 초보자의 마음은 '아이디어'와 다르지 않다. 초보자의 마음이란 "예민한 것이어서, 누군가가 하품을 하거나 비난하면 죽어버린다. 빈정거려도 칼에 찔린 듯 죽고, 눈살을 조금만 찌푸려도 그만 죽어버린다." 그런 상황을 의연하게 넘길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시간과 함께 차곡차곡 만들어진다.
입시 미술을 준비하던 당시, 미술학원 학생들끼리 사용하는 은어가 있었다. "쟤, 벼락 맞았대"라는 말이었는데, (...) 석고 소묘는 실력이 차근차근 늘지 않는다. 다달이 부은 적금을 한 번에 타듯이 어느 날 갑자기 확 는다. 어제까지 구도를 엉망으로 잡던 옆자리 친구가 갑자기 구도를 너무 잘 잡는다. 그 기이하고 놀라운 순간을 벼락 맞았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단번에 깨닫는 경지에 이르기까지에는 반드시 점진적인 수행단계가 따른다는 돈오점수와 비슷한 원리다.
이대로 소진되고 싶지 않다, 나 자신을 방치하고 싶지 않다, 지난날보다 괜찮아지고 싶다, 몰라서 저지르는 결례를 줄이고 싶다, 나의 가능성을 믿어주고 싶다, 성숙해지고 싶다, 한 치 앞만 보며 전전긍긍하고 싶지 않다, 생각을 넓히고 싶다, 멀리 보는 시야를 갖고 싶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 그런 마음들이 배움을 갈망하게 만든다.
두려운 도전 앞에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던 시간들이 있다. 난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다, 아무리 다짐해봐도 그건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신, 별 거 아니더라도, 아주 작은 것이라도, 직접 해보며 할 수 있다는 '경험'을 얻는 게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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