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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츠 인 마이 백: 4월에 보고, 듣고, 즐기고, 느낀 것들


‘차린 건 없지만’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번 뉴스레터에 대한 말이다. 4월에 보고, 듣고, 즐긴 것들을 떠올려 보자니 이렇게나 빈약할 데가. ‘왓츠 인 마이백’ 또는 ‘언박싱’ 영상에서처럼 ‘잇템’을 소개하는 느낌으로 이번 호를 꾸려보겠다는 야심(?)이 있었으나 언제나 그렇듯 보고, 듣고, 즐긴 것들이 빈약한 바, 그냥 아주 조그만 파우치에서 소소한 것들을 꺼내듯 나의 문화생활을 공유하고자 한다.


• 음악: TLC <Waterfalls>

시작은 뉴진스였다. 뉴진스가 그려내는 싱그러움, 청춘, 힙합, 풍요로운 90년대의 감성을 접하자니 이거 다 나 같은 세대를 타깃으로 한 마케팅인 거 알면서도 순식간에 빠져들게 됐다. 그렇게 뉴진스의 음악을 듣자 하니 이내 90년대를 대표하는 걸그룹 TLC가 떠올랐다.(90년대 걸그룹 하면 스파이스걸스와 TLC 아니던가!) 이런 생각을 한 게 나뿐만은 아니었던지 검색창에 뉴진스와 TLC로 검색을 해보니 비슷한 감상이 더러 보여 반가웠다. TLC의 음악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대표곡 waterfalls를 비롯한 몇 곡은 한때 정말 즐겨들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유튜브로 TLC를 찾아보니 불과 1년 전 글래스톤베리 공연 영상이 있는 게 아닌가. 한 세대를 지난, 시대의 아이콘 정도로만 여겼던 그들이 현역으로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니 방구석 리스너로서 또 한번 가슴이 뻐렁쳐 올랐다.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 영업글로 ‘제발 인생에 몇 초만 투자해서 세상에서 제일 예쁜 누구 얼굴 보고 가세요’ 하는 글이 올라오는 것처럼 나 역시 ‘제발 인생에 4분 25초만 투자해서 세상에서 제일 멋진 무대 한번 보고 가시라’고 호들갑을 떨고 싶다. 특히 노래 말미에 리사레프트아이의 랩 부분은 원래도 극락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페스티벌 영상으로 보니 정말 탄성이 나온다. 전세계인들과 함께 축제를 즐기는 듯한 기분도 들 수 있으니 이 글을 읽으신다면 제발 인생에 4분 25초만 투자해서 부디 이 영상 좀 봐주십사...부탁해 봅니다.


TLC <waterfalls> 들으러 가기



• 도서: 폴오스터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또 한번 문학적 허영심을 고백하자면 좋아하는 작가로 폴오스터, 커트보니것, 보르헤스를 말하고 싶던 시절이 있었다. 왠지 아주 지적이면서도 위트 있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가들의 작품을 읽었느냐 하면 할 말이 없다. 다작이라면 다작이라고 할 만큼 출간된 책들이 많은데도 각각 고작 한 두권씩 그것도 겨우 읽은 게 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이제는 내 취향이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하는데 아직도 마음 어딘가에 허영심이 남아 있는지 작년 폴오스터의 산문집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가 나왔을 때 후다닥 전자책으로 담아 놓았다. 그렇게 담아 놓기만 하고 우선 순위에서 밀린지 오래, 담은 지 한참 만에야 열어 지금 한창 읽는 중이다. 예전부터 ‘소설가가 쓴 소설은 재미 가 없어도 소설가가 쓴 에세이는 무조건 재미있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이번 폴오스터의 산문집 역시 그 편견에 부합(?)했다. 재미있다는 말이다.(물론 이렇게 말하자니 폴오스터의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아서 찔리기는 하지만.) 일단 그의 소개가 아니었다면 전혀 알지 못했을 영미문학과 작가들을 알게 되어 문학적 허영심을 채울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좋지만, 폴오스터가 성공한 작가인 만큼 여러 대작가들과 있었던 소소한 일화를 전해듣는 것 또한 아주 재미있다. 더구나 책을 읽다 보면 노작가의 따뜻한 시선 같은 것이 느껴져서 괜히 뭉클해지기도 한다. 전자책으로 짬짬이 읽는 것이 아쉬워 후에 여유가 생긴다면 꼭 종이책으로 커피 한 잔 하면서 다시 한번 읽고 싶은 책.



• 콧바람: 공덕 경의선 숲길

경의선 숲길은 날로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그 허허벌판인 공간을 공원으로 만든다고 했을 때는 ‘공터 그냥 두느니 뭐라도 있는 게 낫지’하는 정도의 마음이었는데 생기고 나니 뭐라도 있는 수준이 아니라 이제는 어느덧 멀리서 찾아 올 만한 공덕동의 대표 명소가 된 느낌이다. 비가 내리고 벚꽃이 다 떨어지기 전에 다행히 미리 다녀 왔다. 경의선 숲길이 다른 곳에 비해 좋은 점은 주욱 이어진 공원 길을 따라 각종 카페, 베이커리, 레스토랑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는 것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분위기 있는 식당 테라스에 앉아 공원 풍경을 즐기기에 이만한 곳도 별로 없을 것이다. 과장하자면 뉴욕의 브라이언트파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언젠가 공덕동에 올 일이 있다면 식당이나 카페 테라스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것도 좋겠다. 특히 카페로는 포멜로빈과 브루니치를 추천!



• 기대되는 것들: <성난 사람들>과 앨리웡의 스탠드업 코미디

시선을 끈 것은 오프닝 그림이었다. 마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을 만한 그림에서 풍기는 포스가 왠지 보통 드라마는 아닐 듯 싶었다. 스티븐 연은 이미 익숙하지만 또 다른 주연 앨리웡은 아주 초면인 줄만 알았더니 영화 ‘우리 사이 어쩌면’에서 한번 봤던 적이 있어 약간은 반가웠다. 동양계 배우가 주연인 A24제작의 넷플릭스 시리즈, 게다가 장르는 (아마도 블랙)코미디, 호기심이 갈 수밖에.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인터넷에서 주섬주섬 드라마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다가 주연인 앨리웡의 스탠드업 코미디 시리즈도 기회 되면 보고 싶어졌다. ‘아시안’,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시원스럽게 뼈 있는 농담을 펼치는 그림이 그려진다.(완전히 내 짐작이므로 아닐 수도 있다.) 이 역시 언젠가 시간이 난다면 여유롭게 소파에 뒹굴거리며 늘어져라 시청하고 싶은 리스트에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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