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9일 화요일 20시 25분

 



-마지막 쿠키까지 야무지게 보고 집으로 향하는 길. 마음이 이스트 넣은 빵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크로플처럼 납작하게 꾸욱 눌렸다. 이 싱숭생숭 울렁거리는 마음을 가눌 길 없어 일단 생각나는대로 메모했던 기록들. (스포 매우 많음!!!)



-아 시작부터 creep이라니, 유치할 정도로 뻔한 반칙이자 뇌절같아서 솔직히 코웃음이 나왔다. ...A FEW MOMENTS LATER...  뇌절이라도 이 정도면 인정입니다. 가오갤3 OST PLAYLIST를 유투브에서 검색하는데 CREEP에서 이상하게 눈물이...  전반적으로 과하게 음악이 강조되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때로는 화면보다 음악이 우선되는 듯하고, 여기에서마저 이렇게 크게 음악이 들어간다고? 뮤직비디오인가? 싶을 정도인데, 가오갤 시리즈가 음악이 주요 모티프이자 표현방식이기 때문에 납득된다. 워낙 좋은 음악들을 잘 골라내기도 했고. 단순히 화면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걸 넘어서 음악을 통해 화면을 재구성하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음. 3편까지로 나름의 독특한 색을 구축, 완성한듯.


-마지막의 COME AND GET YOUR LOVE는 말해 뭐해. 가오갤1 오프닝에서 성길이가 홀로 춤을 추던 그 음악이, 가오갤3에서는 엔딩에 등장해 수많은 다른 생명체들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과 함께한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수미상관. 이는 어쩌면 엔터테인먼트 측면에서 이 시리즈를 포장해내는 감독의 메시지인 것 같기도 하다. 나 혼자 시작했는데, 이제 당신도 보고 있잖아. 우리 함께하고 있잖아.


-함께하고 있다는 메시지는 그 해석에서도 느껴진다. 항상 'I am Groot'라고만 하던 그루트가 마지막에 'I love you guys'라고 한 건 우리(관객)도 이제 가오갤의 가족이 되었기 때문에 (로켓이나 다른 가오갤 멤버들처럼)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라는 것. 이 해석을 보고 눈물이 나오는 거 당연한 거잖아.


-생각해보면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에 잘 어울리는 시리즈 같기도 하다. 마블이라는 이름값 말고는 내용도 설정도 배우 면면조차도 딱히 눈에 띄지 않고 큰 기대가 없었던 이 시리즈는 이름만큼 거창해졌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we should love the way we are. 여기까지 보고 나니 가오갤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같다. 누군가는 weird하다고 말하겠지만, 넌 있는 그대로 소중하다는 것. 엉망진창 우당탕탕 제멋대로인 생명체들이 모여서 가족을 이루고 친구가 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억지로 바꾸지 않아도 서로 받아들여줄 수 있음을 우리는 이해하고 공감한다. 한편, 메인 빌런인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p13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되어야 할 모습이 되라'고 말하는데, 이처럼 빌런의 목소리를 통해 이것이 틀렸음을 역설하기도 한다. 타노스의 등장 이후로 마블 시리즈에서는 빌런을 갓컴플렉스로 설명하고 해석하는데, 똑같은 갓컴플렉스여도 어떤 대사를 하느냐 어떤 부분에 집착하느냐에 따라 해당 영화의 특수성을 드러내는 느낌.


-어쩌면 요즘 세상에 무수히 반복되다 못해 이제는 밈이 된 'LOVE YOURSELF' 그 자체인데, 유독 가오갤3에서는 묘하게 블랙유머랄까 사르카즘같은 것이 느껴진달까. 그래서 가오갤3 언론 시사에서 잔인하다, 어둡다는 평이 나왔을지도. 뇌리에 유독 박혔던 장면이, 맨티스가 드랙스에 대해 우리 중 유일하게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안다고도 했던 것. 맨티스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걸 딛고 나아간다. 이 영화의 엔딩이 아름다운 가장 큰 이유. 등장인물들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에. (엔드게임이 그러지 못해서 두고두고 욕을 먹는 것일지도)


-그렇다면 진짜 '나', '스스로'는 대체 뭐지? 가모라는 죽은 게 아니야. 기억을 잃은 거지. 그게 죽은 거지. 에서 1차 깊생. 가모라가 '난 니가 좋아했던 그 여자가 아니'라고 화낼 때 2차 깊생. 우리가 누군가를 인지할 때 그것은 외적인 요소만으로 가능한가. 행동으로 설명되는 걸까? 아니면 그저 기억만이 정체성인 걸까. 목이 터져라 멀티버스를 외치고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멀티버스를 들었는데, 이제와서야 멀티버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다른 차원의 나는 내가 아니구나. 다른 기억, 다른 경험이 다른 선택, 다른 행동을 하게 하는 구나. 그렇다면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내가 아니라면, 나를 다른 사람과 구분짓게 하는 지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말 좋았겠다. 말로 다 못하지. 이 장면에서 또 하염없이 눈물이 차오른다. 아주 짧은 문장이지만, 오묘한 시제에 알쏭달쏭한 문법을 통해 우리는 의미를 씹고 뜯고 여지를 상상하고 의미를 재생산해낸다. 사랑은 그러니까 자아가 배제되고서는 성립되지 않는 개념같다.


-정체성에 대해 말하자면, 로켓을 빼놓을 수 없지. 1,2를 본 지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보니 3편에서 로켓의 서사가 조금씩 풀릴 때마다 애써 놀라지 않는 척을 했다. 이미 얘기했는데 내가 기억 못하는 것이겠지 하고. 여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기억에 남았던 부분이 있었다. 바로 로켓이 아기라쿤들 풀어주는 장면인데, 왜 이렇게 오래도록 그 글자들을 비춰주나 싶었다. 그런데 뒤늦게 찾아본 해석이 좋아서 이대로 생각하려고. 그러니까, 로켓은 스스로가 어떤 종인지 몰랐고 그래서 이전 작에서는 자신더러 라쿤이라고 할 때마다 화를 냈던 건데, 바로 그 장면에서 자신과 닮은 그 생명체들을 보고 라쿤이라고 적혀있는 것까지 보게 되면서 스스로 라쿤인 걸 알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그 이후 라쿤이라는 정체성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전투에 나설 때는 스스로를 라쿤 로켓 (로켓 라쿤이었던가)이라고 칭하게 되기까지 한 것. P13로서는 흉하다는 말만 들었고, 친구들에게선 도망쳤을 뿐이었다. 그러나 라일라에게서 같이 가도 좋아,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야, 해야 할 일이 있다, 주인공은 너였다는 말을 듣고서는 상황이건 정체성이건 피하지 않고 마주하기로 했고 끝내 가디언즈의 캡틴이 된다. 그래, 어쩌면 이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은 로켓.


-직면이라고 한다면, 역시 원조 주인공(ㅋㅋ) 성길이를 빼놓을 수 없지. 이건 함정이라고 모두가 말하는데, 꿋꿋이 '대결(face off)'이라고 말하는 성길이가 좋았다. 이건 어쩌면 로켓이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과 연결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모두들 도망치거나 외면하지 않고 직면하고 부닥치고 깨지더라도 조각이 된 스스로마저 끌어안고 보듬어주는 것.


-이어져서, 영화에서 등장하는 생체실험은 두 가지 이슈를 끌어안는다. 1차적인 직관으로서 동물보호 이슈. 마지막 탈출하는 장면에서 누구를 데려가고 데려가지 않을지에 대해 '고등생물'이라고 언급되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서 다시 한 번 깊생. 원래는 인간은 다 못되쳐먹었고 털달린 동물만이 우주를 구원한다 고 하려다가... 애초에 인간은 이 세계관에서 성길이뿐이네?! 다만 로켓과 코스모가 너무 위대하고. 또 아담워록의 털친구도 너무 귀여워서 그만 그렇게. 아, 그리고 라일라도, 플로어도, 티프스도...


-두번째 이슈는 좀 더 은유적인 차원에서, 그러니까 앞서 말한 정체성과 관련된 이야기. 테세우스의 배 같은 것이랄까.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당신이라는 것. 그래서 버키가 떠올랐다. 로켓 서사에서의 생체 실험이 생각보다 놀라운데 또 생각만큼 놀랍지는 않았던 이유가 버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버키는 기억조차도 모조리 분쇄되었는데. 그럼에도 스티브는 버키를 사랑한다. (그게 사랑 아니면 뭐겠어)


-우리는 그대로도 아름답다,의 메시지는 뭐랄까 생태계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노아의 방주 모티프에서 새삼 느껴짐. 후반부에 어린 줍줍이들과 온갖 동물 실험체들이 노웨어에 안착하는 순간은 투박할 정도의 비유로 노아의 방주를 나타낸듯하다. 궁극적으로 세상의 구축은 어떤 경계나 구분이나 선별 없이 그 모두가 있어야만 가능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한편으론 노아의 방주를 한 번 틀어보인 것일지도. 노아는 신의 뜻을 받들어 몇 몇 생명체의 암수 쌍을 '선별하여' 배에 태웠다. 그러나 가오갤에서는 그렇지 않았지.


-투박한 비유는 그 후에 아담워록이 피터를 구출하면서 천지창조를 연출해내는 것도 해당된다. 끝이면서 동시에 시작인 것은? 시리즈의 시작인 피터와, 그 모든 것이 완결된 이후 어쩌면 가오갤 내의 페이즈2 (우리는 영영 못 볼 지도 모르는) 의 새로운 멤버가 손끝으로 닿아 만나는 것.


-정말 의식의 흐름인데, 아담워록을 언급한 이상 윌 폴터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나에게는 배리 케오건과 양대 산맥쯤으로 특이한 외모에 그만큼 독특한 분위기로 기억에 남는 배우인데, 과연 이번에도 킹받고(이게 1순위) 귀엽고 그렇다. '대책없는 애샛기'역할에 그 이상으로 잘 어울리는 비주얼도 드물 것 같다. 사실 따지고보면 3편 모든 문제의 시작은 얘 때문인데요. 어쩌다보니 또 한 팀이 되었네요?! 하긴 아담 워록도 결국 엄마 잃은 갓기에 불과할 뿐이다.


-아담 워록 뿐만 아니다. 가오갤에서 '한 팀'을 이루는 모두가 각자의 가족 결핍을 지니고 있다. 그걸 인정하고 포용하기에 또 다른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관객들이 그루트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 것처럼. 때문에 가오갤에서 느껴지는 이 미묘한 미국적 가족중심주의에 대해 고민해보게 된다. 그러니까 가족이 매우 중요하다, 가족을 중심으로 자아를 완성해가고 역경을 헤쳐나가고 사랑을 느낀다, 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주면서, 근데 '가족'이 뭐가 중요해? 이런 것도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를 되묻게 한다. 이전 시리즈에서 욘두와 에고가 대비되는 것에서 두드러진다. 혈연이나 의식적인 '가족'의 선을 긋는것보다, 가족이 함의한 울타리를 아주 넓혀 모두가 그 안에 들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오갤의 최종 목적일지도.


-그러고보니 욘두가 등장하는 잠깐도 매우 좋았다. 전 시리즈와 캐릭터와 그것들을 사랑했던 관객들을 모두 존중하는, 결국 그걸 창작한 스스로를 높이는 '제법'의 기법. 등장의 이유와 목적이 명확했고 그것은 캐릭터 스스로를 더 완전하게 하면서 동시에 다른 캐릭터를 보조하며 서사를 보충한다. 기능적으로 매우 우수.


-그러나 제임스 건을 올려치고 싶지는 않다. 그의 개인적인 과오나 문제 때문에.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가오갤 시리즈는 그가 구축한 세계라는 것에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다. 다만 잔인성이나 기분나쁜 농담, 반대로 스타일리시함 같은 것들에서 그의 개인적인 평가와 지나치게 결부시키고 싶지는 않다. 어렵네. 사실 앞서 말한대로 이 영화는 투박하다 싶을 정도로 비유, 상징, 암시같은 것들이 직접적으로 제시된다고 느꼈는데, 언급했던 라일라, 티프스, 플로어의 생체실험에서도 그랬고 카운터어스에서의 장면들도 그랬다.


-처음 가오갤 멤버들이 나타났을 때 낯선 이방인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드랙스 때문이긴 하지만) 돌을 던지는 것을 통해서는 타자화와 배제에 대해 포인트를 찍어주는 것 같았다. 성길이가 "완벽한 세상이라면 마약을 사고파는 행위나 폭력같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에서는 개인이나 소수에서 컨트롤되는 '인공적인' 세상은 정답이 아니고 그렇게 해서 완벽해질 수도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는데,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생각의 층위들이 뒤엉키고 겹쳐진다. 자연스러운 게 최고인가? 그렇지만 어느 정도의 자연스러움=자유 의지는 (도리어 통제된 사회에서도 발현되는 범죄 현상들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인간의 태초악때문에 좋게 될 수가 없는 거 아닌가. 다소 비관적인 현실주의자의 관점을 택해야 하나. 어쩔 수 없지. 그냥 다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나를 헷갈리게 하는 것 하나 더, 바로 드랙스. 주요 등장인물치곤 나에게 굉장히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유빻노잼 극혐스러우면서도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가장 또렷하게 제임스 건식의 유머 정점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역시, 우주선과 로켓 지키라니까 말 안 듣고 시민 밀치고 오토바이 뺏어서 길을 나서는거 진짜 빡치게 했거든. 맨티스 부탁 듣고 피터한테 호수 얘기 할 때도 가모라 피부가 어쩌고 왜 저딴 말을 하는 거야 미친거 아니야 싶었거든. 근데 또 쇼파에서 드러눕고 네뷸라랑 피터한테 혼나는 거나, 잔뜩 욕먹고 나서 맨티스가 다 잊으라고 한 뒤 허허 웃는 거 보면서는 그냥 웃기기도 짠하기도 했다. 결국 네뷸라가 당신은 파괴자가 아니고 아버지로 태어난 거라고 했을 때 눈물이 많이 났다. 이게 무슨 느개비란 말이오!!


-까지 생각해보았는데, 역시 돌고 돌아 LOVE YOURSELF같기도. 그런 모자란, 때로는 서로를 화나게 하는, 그런 사람들도 모두 우리의 가족이고 그렇기에 함께 하면서 서로 화도 내지만 결국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기 위해 애를 쓴다는 거겠지. 다시 한 번 더. 우리 정말 좋았겠다. 말로 다 못하지.


-이러한 마무리를 위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스타로드의 활약은 전편보다는 덜한 것 같긴 하다. 안전은퇴의 밑그림... 이라기엔 스타로드는 다시 돌아온다고 하긴 했다만ㅋㅋ 앤트맨에게서 기대했던 게 이런 감정이었던 것 같은데, 이도저도 아닌 범작과 쎄함만 남겨버렸고... 소소한 호평들을 볼 때마다 그래 덕후들이 원하는 건 이 정도인 건데 싶으면서, 캡아2윈솔뽕에 취하지만 않았더라도 하는 안타까움. 괜히 다크하고 심오한 분위기, 작품성 따위에 집착해서는 루소즈는 결국 그릇 이상의 플젝에서 부관참시 당하기나 하고 쩝.


-어휴 말 많다. 생각 꼬리 물기는 이제 그만하고, 가장 좋았던 장면을 소개하며 마무리하련다. 역시 마지막은 웃어줘야지. 가모라가 난 니가 좋아했던 그 여자가 아니라고 화내면서 차라리 네뷸라랑 더 어울리네 라는 식으로 말했을 때, 네뷸라가 'ㅎ; 갑자기?;' 이런 반응이라 어떻게든 헤테로 럽라 껴팔인가 싶어서 두눈 질끈 감으려던 순간, 매우 씩씩한 복식 발성으로 네뷸라가 'knock it off' 해서 너무 좋았음. 아 이 찰진 연기 너무 좋아. 그런 길 잃은 강아지 눈으로 보지 말랬던가. 보자마자 현웃 터졌는데 곱씹을수록 더 웃기고 쫄깃해서 계속 찾아보고 돌려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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