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6월을 함께 보낼 책과 영화 위시리스트.zip

  영어, 특히 비즈니스 상황에서 아주 흔하게 쓰이는 말 중에 settle down이 있다. 주어진 태스크나 이슈 등을 해결한다는 의미이다. 2월 초 이직 후 그야말로 엉망진창 우당탕탕이던 초반 3개월을 지나, 그래도 초반보다는 훨씬 업무에 적응했다고 느끼고는 있으나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서조차 입사 첫 달에 저지른 큰 실수를 당시는 몰랐다가 이제서야 발견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처음보다야 조금 낫지만 그래도 여전히 settling down 중이어서 마음의 여유를 완전히 되찾지 못했다. 그래서 6월도 엔터테인먼트 위주의 가벼운 문화생활만 지속할 예정이다. 하지만 어차피 완벽하게 적응 완료하고 빈틈없이 해 내는 나 자신은 평생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에, 지금의 일이든 무엇이든 간에 평생 settle down이 아닐까. 완벽한 시기를 기다리지 말고 그냥 지금의 순간순간에 가장 충실하고 가장 누려 보자고 괜히 다시 다짐해 본다. 


  • 책 <전쟁터의 요리사들> / 후카미도리 노와키

83년생의 후카미도리 노와키라는 여성 작가가 무려 2차 세계대전 중의 취식병을 주인공으로 하여 쓴 일상(?) 미스터리이자 일본에서 나오키상, 서점대상,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등에도 후보로 오른 소설이다. 경기도 전자도서관에서 발견했을 때부터 나중에 읽으려고 아껴 두고 있는 중이다. 덕후라거나 잘 안다고 말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나의 의외의 은밀한 관심사는 전쟁, 특히 19~20세기 현대사의 전쟁이다. 전세계 유일의 휴전 국가여서 그런지 남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징병제가 한국 남성들에게는 역린인지라, 유독 한국에서는 여성이 군대, 전쟁에 대하여 말을 꺼내는 것이 터부시되어 왔다. 만약 한국에서 젊은 여성 작가가 이런 소설을 냈다면 어땠을지 길게 말을 꺼내지 않아도 다들 느낄 것이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내가 좋아하는 미스터리 분야에서 젊은 여성 작가가 쓴 소설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선순위인데 심지어 전쟁터가 배경이라니. 아직 읽기도 전이지만, 내가 관심있는 두 가지가 모두 있는 소설을 쓴 작가에게 약간의 질투심이 섞인 박수를 일단 보낸다.  


  • 책 <류> / 히가시야마 아키라
지금 일본에서 가장 세계적인 작가에 근접하다는 히가시야마 아키라의 153회 나오키상 수상작이다. 20세기 대만과 일본의 역사를 배경으로, 할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진상을 쫓는 미스터리이자 대하소설에 가까운 대작이라고 한다. 내가 상당히 오랫동안 철저히 엔터테인먼트적인 책읽기만 해 와서 그런지 스케일이 상당히 부담되긴 하지만, 나오키상,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일본 서점대상 등을 모두 석권했다고 하니 나름 미스터리 애호가로써 트렌드에 뒤쳐질 수는 없다. 

  • 영화 <인어공주> 

 개봉 훨씬 전부터 온라인 상에서 주연 배우의 외모와 인종으로 인해 뜨거운 감자였던 디즈니 실사화 영화 <인어공주>도 이 달의 위시리스트이다. 유색인종, 그것도 예쁘지 않은 여성이 PC함의 특혜를 누리는게 매우 못마땅한 우리의 한국인 남성 분들은 사실 누구보다도 PC함의 수혜를 받는 계층인 동양인 남성이다. 더더욱 통쾌한 것은 그들이 아무리 분통을 터트려도, 인터넷에서 온갖 혐오와 조롱을 표출해도 그들이 이 현실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만드는 쪽에서, 돈이 있는 쪽에서 PC함을 원하는데. 그리고 누구누구라거나 누구누구 같은, 현실에서도 평범 미만의 외모인 남배우들이 떡하니 훈남, 미남이라며 주연으로 나오는 우리나라야말로 PC함이 좀 과도하지 않은가 돌이켜 볼 일이다.


  • 영화 <범죄도시 3> 

 이쯤 되면 당분간은 범죄도시 프랜차이즈 시리즈가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처럼 자리잡지 않을까. 대작 없이 계속하여 침체기를 겪고 있는 한국영화계에서 그나마 가장 큰 흥행보증수표라 할 수 있는 범죄도시와 마동석이 3탄으로 돌아왔다. 범죄도시 시리즈가 청소년 관람불가였던 1편의 어두운 느와르 색채를 갈수록 지우고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형사 코미디로 무게추를 이동시키면서, 이전보다 훨씬 예측 가능한 내용과 딱 기대만큼의 재미일 것임을 너도 알고 나도 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관객은 기꺼이 지갑을 열고 극장에 가서 2시간을 보낼 것이다. 일터를 벗어난 시간에는 이것저것 따지고 머리 쓰기 싫으니까. 나쁜 놈 때려잡는 힘 센 형사 코미디란 약속된 웃음과 카타르시스를 배신하지 않으니, 항상 뻔하지만 통쾌하고 단순하지만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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