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하고 찬란했던 경주
2025년 3월 27일부터 30일까지, 가족들과 함께 경주에 다녀왔다. 수학여행, 대학교 시절 친구들과의 여행으로 찾았던 도시지만, 이번엔 처음으로 봄의 경주를 경험했다. 뜨거운 여름날, 선선한 가을의 낭만을 기억하며 늘 다시 가고 싶은 도시였는데, 봄의 경주는 또 다른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예전 어느 경주의 택시 기사님이 낭산은 꼭 가보라고 추천해주셨던 기억이 떠올랐지만, 아쉽게도 이번에도 그곳을 가지는 못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다 보니 마음대로 동선을 짜긴 어려웠지만, 어쩌면 다음 경주 방문의 이유가 남겨졌다는 점에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는 문무대왕릉과 감은사지였다. 바닷가 가까이에 이렇게 장대한 이야기가 깃든 장소가 있었나 싶을 만큼, 대왕암과 그 주변의 풍경은 쓸쓸하고도 처연했다. 신라를 통일한 문무왕이 죽음 이후에도 왜적으로부터 신라를 지키고자 수중의 용이 되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그의 유해가 뿌려졌다는 대왕암.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바다를 바라보니, 그의 죽음 앞의 두려움과 결의가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와 연결된 절터인 감은사지. 그곳은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이 지은 절로, 용이 되어 다시 육지로 올라와 후손들을 지키게 하려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지금은 터만 남은 이곳이지만, 그 안에 담긴 염원과 사연은 오히려 더 깊게 전해졌다. 한때 찬란했던 왕조의 기운이 이렇게 조용하고 덤덤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 인간의 역사가 얼마나 허망하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첨성대도 이번 경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였다. 선덕여왕이 하늘의 이치를 읽어 백성들을 지키고자 만들었다는 이 관측소 앞에 서니, 그녀의 깊은 고심과 의지가 느껴졌다. 왕으로서의 책임감과, 예기치 못한 하늘의 재난 앞에서 느꼈을 두려움이 함께 전해졌다. 9미터 높이의 석조 구조물은 단순한 천문대가 아닌, 하늘을 향한 여왕의 기도처럼 보였다.
비록 이번 여행에서는 직접 갈 수 없었지만, 선덕여왕의 유언—“내가 아무 날에 죽을 것이니 그날이 오면 도리천에 묻어달라”—을 떠올리며 도리천이란 이상세계에 대한 그녀의 열망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도리천은 불교에서 말하는 수미산 꼭대기의 이상향으로, 그녀가 단지 죽음을 넘어서 ‘하늘에 닿고자 했던’ 마음이 담긴 상징 같다.
그리고 천마총을 비롯한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말갖춤 장식들에서는 신라가 단순한 불교국가만이 아닌, 북방 기마 민족의 혼을 품고 있었던 문명의 융합체였음을 느꼈다. 불교적 신비와 더불어, 다른 문화권과의 연결성까지 담고 있는 경주는 정말 특별한 공간이다.
이런 맥락에서 경주의 역사와 정신을 담은 아래의 영상들도 함께 보면 좋을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느낀 깊이와 감정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다음엔 낭산도 꼭 가보고 싶다. 봄의 경주가 이렇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면, 또 다른 계절의 경주도 분명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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