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잘 읽히지 않는 책 이야기

언제부터인가 휴식시간은 꽤 소중한 것이어서 책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가 많이 망설여진다. 이 한정된 소중한 시간을 한톨도 낭비하고 싶지 않은 마음, 혹은 최대한 가성비 있게 보내고 싶은 마음은 비단 내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지라 어쩌면 무임승차를 구독하는 이들 역시 같은 마음으로 보다 현명한 선택을 위해 추천글을 읽는지도 모르겠다. 무임승차 뉴스레터로 말하자면 이른바 서로의 ‘문화자산에 무임승차’하자는 취지아니던가. 따라서 취향에는 맞지 않을지언정 적어도 ‘속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을 만한 책들을 소개하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최근에 읽고 있는 책들이 이상하게 엄청 별로인 것도 아닌데 영 읽는 속도가 지지부진해 이번호에는 어쩐지 잘 읽히지 않는 책 이야기를 간단히 해보겠다.(실은 잘 안 읽혀서 돌려가며 읽고 있는데 여전히 다 못 읽었다.) 지난 호 다른 친구의 글처럼 ‘굳이 비추천 감상을 공유하며 굳이 안 읽어도 되는’ 책들에 대한 이야기랄까.


라우라 비스뵈크 <내 안의 차별주의자>

‘보통사람의 욕망에 숨어든 차별적 시선’이 부제이다. 누가 지었는지 제목 한번, 부제 한번 아주 매력적으로 뽑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조금의 편견도 없이 누구에게나 어떤 대상에게나 공평하고 타당하게 대한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누구나 마음 속에는 어느 정도의 편견, 우월감, 그로 인한 차별적 시선이 내재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내 안에 있는 차별적 시선을 낱낱이 목도하고 반성하여 조금쯤은 지적인 우월감(결국 우월감으로 귀결되지만..)을 누리고 싶어 선택했으나 아쉬운 점은 이 책이 너무 일반론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챕터 ‘일’은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쉽게 풀어 쓴 것 같은 내용인데, 자아실현과 자기착취가 맞닿아 있다는 지적은 예전이라면 ‘유레카’를 외치듯 감탄했을 분석이지만 이제와서는 그래서 ‘뭐 어쩌라고’하는 심드렁한 감상만 남게 된다.(물론 그 지적이 타당하다고 생각은 한다.) 사회에서 주창하는 자기실현이 곧 자기착취니까 이제 그만 자기계발을 멈춰야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실현 따위 집어치우고 순전히 나를 돌보고 소위 힐링해야 한다는 것인지.. 과거엔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 같은 책을 읽으며 분노하고 저항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게 과연 해결책인지 이제는 정말 잘 모르겠다. 이미 현대사회가 이렇게 흘러 왔는데 단순히 사회에서 말하는 자기실현을 부정한다고 내 삶이 행복할 수 있는지 회의감 같은 게 든다. 첫 번째 챕터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다른 챕터 ‘성(gender)’, ‘이주(immigration), ‘빈부격차(poverty and wealth)’ 등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보고 논의했을 법한 일반론적인 분석과 지적이라 뭔가 ‘폐부를 찌르는 듯’한 자극은 없는 점이 아쉽다. 그렇지만 다양한 영역에 대해 비교적 잘 정리해 놓았기에 사실 비추천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미안하고 그저 잘 읽히지 않는 책이라고 해 두겠다. 물론 아직 못 읽은 남은 챕터도 다 읽을 생각이다!


히가시야마 아키라 <류>

이 책 역시 줄거리를 읽고 이건 ‘내 취향이 아닐리 없다’며 설레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고 실제로 초반까지는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며 이번 달 추천 책은 ‘너로 정했다!’라고 생각했으나... 주인공의 성장담이 너무 길고 장황하여 도저히 속도가 나지 않는 책이다. 일단 내 마음을 사로잡은 줄거리를 대략 요약하자면 이렇다. 국공내전의 패배로 장제스가 대만으로 망명한 혼란스러운 시기, 한때 공산당을 학살한 적이 있던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자신의 가게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할아버지의 시체를 처음 발견한 주인공은 좀처럼 그 미스터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진실을 좇기 위해 애를 쓰는데... 즉 추리물이자 시대소설이라는 것. 격동의 근현대사와 그에 휘말린 개인의 삶은 항상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인지라 기대를 아주 많이 했다. 하지만 추리물이라기엔 주인공의 성장담에 집중하여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내용이 거의 없고 시대물이라기에도 주인공의 성장담이 그다지 재미가 없다. 읽다가 지루해서 스포를 각오하고 후기를 찾아봤는데 과연 그 반전과 결말을 위해서 주인공이 대리시험을 치고 군관학교를 가고 이런 소소한 내용이 굳이 다 나왔어야 하나 싶다. 게다가 할아버지가 믿던 미신인 도깨비불까지야 그렇다 쳐도 차 사고를 당하면서 웬 여자 귀신이 나오지를 않나,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주인공의 성장스토리를 유쾌하면서도 익살스러운 풍경으로 그려내고 싶었던 취지는 이해하겠으나 추리물도 시대물도 아닌 어정쩡한 소설이 되어버린 듯하다. 어찌되었든 현지인(대만)과 외성인(중국대륙) 사이의 분위기라든지 당시 잠시 머무를 줄만 알고 대만으로 이주했던 이들의 생활 같은 것들을 생생하게 느낄 수는 있기에 이 책 역시 비추천이라고 하는 대신 잘 읽히지 않는 책으로. 내 안의 차별주의자와 마찬가지로 남은 부분도 다 읽을 생각이다!


미나토 가나에 <모성>

모성을 끝으로 더이상 미나토 가나에의 책은 읽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 믿을 만한 사람이 추천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고백>의 파격적인 스토리 전개에 매료당했고 이후 그의 책 <야행관람차>, <N을 위하여>, <속죄>까지는 비록 조금 음침하기는 하지만 인간의 추악하고 저열한 속내를 날카롭게 펼쳐내는 재주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 읽은 그의 책들은 그저 음침하기만 할 뿐 아무 재미도 감동도 깨달음도 없었다. <모성> 역시 그렇다. 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길래 영화 <케빈을 위하여>같이 모성이란 실재하는 것인지, 모성이란 단순히 신화는 아닐지 깊이 있는 질문을 안겨 주는 책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엄마가 딸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해서 곧 모성에 대한 의미 있는 의문 제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엄마가 딸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이유가 자기의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라니, 즉 본인의 엄마를 너무 사랑해 엄마가 원하는 대로 결혼을 하고 딸을 낳은 여자의 이야기인데 자기 의지라고는 하나도 없는 주인공을 보는 심정이 답답하기 그지 없다. 나는 소설 속에서라면 그 어떤 부당한 감정이나 부도덕함도 전부 용인하는 편이나 그건 납득 가능하도록 작품을 썼을 때의 이야기이다. 미나토 가나에의 <모성>은 나를 납득시키는 데에 실패했다. 이 책은 솔직히 잘 읽히긴 한다. 하지만 딱히 추천하고 싶지는 않고 위의 두 책과 다르게 남은 부분을 다 읽을지 말지도 고민 중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나 남이 연애하는 거 좋아하네

소녀의 로망

곁다리 라이프의 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