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HL
'영혼의 집을 잃고 헤매이는 방랑자들'을 위한 방송이라니, 요즘 내 심정에 딱 알맞은 표현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이것은 바로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 트위터 탐라에서 우연히 추천을 보고 과몰입 특집을 들어봤는데 너무 빵빵 터져서 다른 편을 연속으로 듣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의 리스트를 살펴보는데, '동해생활'의 송지현 작가와 그의 동생이라니? 이다혜 작가라니? 오지은? 최지은? 박상영? 아니 이 엄청난 섭외력 뭐지, 이 사람 뭐지, 싶어서 쫌쫌따리 맷님에 대해 서치를 해보았으나 특별한 뒷배경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개인의 재능, 그리고 하겠다는 의지와 해버리는 실천력뿐. 놀라워라. 쨌든, 덕분에 맷님과 많은 게스트분들은 그야말로 내가 '영혼의 노숙자'인 때마다 벗이 되어주고 있는데, 무엇보다 좋은 것은 무려 250화 넘게 쌓여있다는 것(+주1회 업로드중이라는 것). 혹시나 비축(?)분량이 사라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다소 마이너한 감성일 수 있어서 누군가에게 함부로 영업할 수는 없고,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여자가 어릴 때 책 많이 읽으면 반드시 셋 중 하나는 된다고 한다, 빨갱이, 오타쿠, 페미니스트' 대략 이런 뉘앙스의 드립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들어보시길. (다시 찾아보니 페미니스트가 아니고 레즈비언이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더유니버스를 보고 왔다. 처음 봤을 때 충격적인 이미지와 사운드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그게 무려 5년전이라네. 기대를 지나치게 많이 해서인지 기대를 뛰어넘는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좋았다. 마블로부터 촉발된 멀티버스는 에에올같은 소규모(?) 프로젝트는 물론 어크로스더유니버스같은 애니메이션까지 남발되고 있지만, 김혜리 작가의 말대로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잘 발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무한정 쏟아지는 스파이디들이라니, 거기에 울망울망한 앤드류 가필드의 피터파커를 보여주다니, 소니쉑들 잔인무도하다. 너무나도 다음편을 위한 엔딩과 지나친 눈뽕, 특별히 새롭지는 않은 서사적 장치로서의 존재론적 의문같은 것들로 인해, 보다가 잠들어버린 관객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나 역시도 이 영화를 인생영화로 꼽기는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사랑스럽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마일즈의 엄마가 내가 아껴온 이 마일즈가 다치지 않도록 하라는 것과 어디에든 있을 수 있다, 있어도 된다고 말할 때 그야말로 현실눈물. 게다가 뒤에 미구엘이 '넌 스파이더맨이 되어선 안 돼'라고 비난할 때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게 해주니 과몰입 안 하는 방법 모른다고. 그나저나 이 작품에 참여했던 애니메이터들이 꽤 많이 그만두셨다던데, 왜 모든 일에는 음영이 존재하는 것일까.
최근 읽은 책 중에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게 많다. 첫 번째는 '나를 리뷰하는 법'. 이 책으로 인해 나에게 TBWA 카피라이터 외에 솔깃할 만한 저자 출신(?)이 추가되었다. 바로 대학내일/캐릿 에디터.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으로 너무나 유명해진 정문정 작가는 절판된 첫 책 '별로여도 좋아해줘'부터 흠모해왔고, 꾸준히 에세이로 사랑받는 김신지 작가 또한 캐릿 소속이다. 이쯤이면 나름 신뢰가는 라벨 아닌지. '나를 리뷰하는 법'은, 기록하지 않고 비워두면 그냥 그 시간이 소멸된 것처럼 느껴지는 내게 너무도 와닿고 유용한 책이었다. 교과서처럼 모든 페이지를 다 꼭꼭 씹어삼키고 싶었다. 물론 실제 교과서를 이렇게 읽은 적은 없다.
두 번째는 '에이징 솔로'. 온라인 서점에서 오는 광고 메일을 열심히 들여다보곤 하는데, 그때는 그냥 뻔한, 그저 그런 류의 책인 줄 알았다. 그러나 책읽아웃에 저자가 직접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이건 꼭 무조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읽다보니 과연 공감가는 부분도 많았고 새롭게 알게된 사실도, 그에 파생된 질문들도 쌓여갔다. '정상가족'을 이룬 사람들에게는 무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궁극적으로는 개인으로서의 삶과 타인과의 연대, 사회의 역할 전반을 아우른다고 느껴져서 좋았기 때문에 모두에게 추천.
재밌기는 했는데, 강력하게 추천하려니 어쩐지 머쓱해져서 반발짝 정도 물러서게 하는 책들 몇 권, 다만 읽었음을 공개적으로 기록합니다. 두 여자의 인생편집 기술은 이 시점에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나를 되짚어보게 하고, 막연한 불안을 구체적으로 문자화된 고민으로 변환하게 한다.성덕일기는 약간의 현타와 질투 같은 미묘한 감정으로 인해 읽지 않으려다 집어들었는데 정말 구구절절 나의 뼈를 때려서 마지막 덮을 땐 기분상해 전치 52주 정도 나온듯. 띵시리즈는 만화책 전집 읽듯이 한 번에 읽고 싶어 아껴두고 있었는데, 여름 기념으로 아이스크림을 집어들고야 말았다. 좋았던 것들이 하나씩 시시해져도, 라는 제목의 어구처럼 키득거리다가도, 찐득하게 눌러붙는 감정들이 느껴지는 문장들이 콕콕 박혀있다. 재미있는 소설! 몰입감 개쩌는 소설!! 을 찾아 헤매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읽었는데, 음 미묘했다. 여성작가가 쓴 것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미묘함은 극대화. 재미만 따지자면 명성대로긴 하다.
그러고보니 예스24의 24주년 기념 '생각 지상주의자들의 요람' 전시를 보고 왔다. 굳이... 돈을 받고 보여줄 만한... 전시일까...? 싶기는 했는데, 공간 구성이 재미있고 크레마를 체험해볼 수 있고 쎈느 아메리카노 2천원 쿠폰을 줬으니까 하고 납득했다. 확신은 없지만 전시장 입구에서 던을 본 것 같다. 그것까지 포함한 가격으로 치자.
남은 날에는 오르부아르를 읽을 계획인데 생각보다 벽돌책이라 난감하다. 초반부라 그런걸까. 분명 재밌다고 했잖아! 난 전쟁 얘기 같은 건 취향이 아니라고! 불릿트레인과 빅도어프라이즈를 저울질하다 선택한 찬호께이의 소설은 부디 재미있기를. 재미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영화 미션임파서블인데 지금 나 너무 기대하고 있어서 도리어 두려울 지경이다. 이 모든 것을 겪고도 특별히 떠오른 단어가 없다면, 말일에는 아마도 샤이니와 에스파, 그리고 엑소를 포함하여 최근 SM에서 발매한 풀렝스 앨범에 대해 떠들어제끼지 않을까 싶다.
아차, 빼먹을 뻔. 디지털 폐지줍기라 할까, 다 보고나면 1원따리 주는 광고를 보는데 스토리가 이상하게 감명깊었다. 할머니가 경찰에 잡혀가잖아, 근데 미소가 심상치 않잖아!!! 그 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블로거의 포스팅을 읽는데 수많은 추천 콘텐츠 속 머지맨션 재밌다는 한 줄이 눈에 빡 들어왔다. 이건 운명인가? 대체 뭔지 궁금해서 다운 고고, 한 시간쯤 해보니 음, 물리는군... 아니 근데 지울 수가 없다. 이상하게 짬이 나면 머지맨션을 실행하고 있는 나를 발견. 이것이 게임중독인가. 괜찮아, 엄청 몰입한 건 아냐, 당장 지금이라도 지울 수 있기는 한데, 굳이 지금 지우긴 귀찮으니까... 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하다가 문득 이거 책에서 본 전형적인 중독자의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되겠다 지금 당장 지워야지!!!... 아니 근데 이번 스테이지만 클리어하고 나면 할머니의 사연을 알 수 있을것 같다고... (쭈굴) (여전히 못 지운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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