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의 미학

  원래는 그저 평범한 물건이었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던 남성용 소변기는 ‘샘’이라는 이름을 붙인 채 작품으로 전시되자 순식간에 예술품으로 변모했다. 현대 미술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마르셀 뒤샹의 ‘샘’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변기를 전시한다는 사실, 일상의 기성품이 곧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이 도발적이고 새로운 시선은 곧 미술계를 흔들어 놓았다고 한다. 과연 어디까지를 예술로 볼 수 있을 것인지. 철학이라는 꼬리표만 붙으면 변기도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최근에는 미술관에 전시된 바나나를 먹고 그 껍질을 다시 붙여 놓아 화제가 된 일도 있었으니, 변기도 예술이 될 수 있는지 그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인 듯하다. 

  내 의견을 말하자면 분명 기발하고 재미있는 것이 ‘샘’과 같은 현대 미술의 미학이지만 솔직히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아닌가 싶은 마음도 있었다. 어린 아이의 뒤죽박죽인 낙서도 그럴 듯한 철학 하나만 덧붙여서 예술이 된다면 그야말로 너무 얄팍한 거 아닌가 하는. 그런데 최근 일상과 뚝 끊긴 몇몇 공간에서 재미있고 신비롭고 감각이 충만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문득 매일 보는 평범한 모든 것들이 적절한 조건만 주어진다면 충분히 예술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 적절한 조건이라는 건 쉽게 말해 일상과의 단절이지 않을까, 그래서 단절의 미학이라고 구태여 제목까지 붙여 보았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사실 그 경험이라는 게 별 것은 아니고 궁 야간개장, 미술관 전시, 데블스 플랜(!) 시청에 불과하다면 함정처럼 느껴지려나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최근에 가장 몰입했던 경험이었고 이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 놓는 것이 내게는 꽤 의미가 있기에 매일 보던 소변기가 어떻게 샘처럼 느껴졌는지 적어보려고 한다.

  궁 야간개장에 대해 특별히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궁을 가보는 일은 어쨌거나 색다른 경험이긴 하겠지만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니까. 적당히 기분 전환만 하고 올 요량이었는데 생각보다 본격적으로 콘셉트를 잡은 덕에 기대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관람을 할 수 있었다.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창경궁 모두 야간 개장을 진행 중이고 창경궁은 ‘물빛연화’라는 기획으로 미디어아트를 선보이는데 마침 방문했던 곳이 창경궁인지라 저녁에 궁궐을 거닌다는 즐거움에 더해 마치 미술관에 온 듯한 신비함마저 느낄 수 있었다. 미술관과 신비함, 미술이나 예술에 대해 조예는 없지만 생활에서 완전히 유리된 것만 같은 미술관 만의 분위기를 좋아하는데 정말이지 작정하고 기획해 놓은 야외 전시장 같았다고 할까. 내가 방문했을 시기에는 물빛연화의 하이라이트인 춘당지 불빛쇼(;;;교양없는 표현 죄송합니다;;)는 볼 수 없었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오래된 궁을 너무 화려하게 꾸며놓았다는 조악한 느낌 없이 우아한 감상으로 거닐 수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반딧불이의 날갯짓처럼 새어 나오는 불빛과 너른 정원의 풀벌레 소리를 거스르지 않는 조용한 뉴에이지 음악, 일상에서 완전히 단절된 듯한 낯선 감각이 주는 아름다움, 두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떠올려도 좋은 경험이다.

  미술관 이야기가 나왔으니 진짜 미술관을 갔던 이야기도 해보자. 생각해 보니 국립현대미술관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쑥쓰러움과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정말 딱히 예술과 미술에는 조예가 없기 때문에 국현미를 가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다지 놀라울 일은 아닌 것 같으면서도 내심 교양인을 흠모한 세월이 근 십오년이거늘 어찌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나 싶다. 어쨌든 이번에는 론 뮤익의 전시를 보러 갔다. 미용실에서 주는 패션잡지의 문화란을 보다가 이건 꼭 가면 좋겠다, 싶어 기억해 두고 있었다. 아마 누구나 그렇게 느낄 것이다. (하다못해 2차원인 잡지로 보더라도)보자마자 눈길을 확 끄는 작품이니까. 일단 전시회장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너무나 진짜 같은 중년 남성의 커다란 얼굴이다. 거대한 크기에서 오는 위화감을 제외하면 잔주름, 콧털, 수염, 누워있어 일그러진 한쪽 얼굴면까지, 가까이 다가가면 내뿜는 콧김마저 닿을 것처럼 사실적이지만 이내 그 뒤는 뻥 뚫려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토록 정교하게 만들어 놓고 일부러 이건 가짜라는 걸 주지시키듯 얼굴 뒤 뻥 뚫린 허공을 마주했을 때의 당혹스러움, 이것도 일종의 단절의 미학 아닐는지. 사실적인 묘사가 주는 현실감과는 반대로 과장되게 크거나 작은 조각의 크기가 주는 비현실적인 감상의 공존, 이것이 론 뮤익 작품의 특징이라면 그 괴리 사이에서 자연히 발생하는 인간 본연의 불안과 고독을 해석하는 일은 감상자의 몫일 것이다. 그리고 구체화된 작품을 통해 인류의 보편적인 감정을 다루는 것이 예술의 효용 중 하나라면 최소한 그런 의미에서 만큼은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전시라고 할 수 있겠다. 

  궁을 보러가는 것이나 미술관엘 가는 것은 분명 자질구레한 일상과의 단절을 의미하지만 누가 가두고 감금하는 것이 아닌 이상 잠시 쉬어가는 휴식 정도에 불과하다면 진짜 찐으로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공간에 연락할 수단마저 뺏고 사람들을 가두어 두는 공간이 있었으니, 내 이야기는 아니고 바로 데블스 플랜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동안은 흥미를 끊고 지냈지만 본디 지니어스 류의 프로그램을 좋아했었으므로 부정적이나마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되었던 데블스 플랜이 궁금했다. 결과는 보자마자 바로 과몰입 직행, 보고 나서도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기 일쑤였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빠져들게 했나 생각해 보면 뭐니뭐니해도 결국 ‘나라면 저기서 어떻게 했을까’하는 얄팍한 자기애적 상상력이 아닌가 싶은데(과몰입러는 어쩔수가 없다구욧) 그럼에도 갇힌 공간 안에서 사투를 벌이는 출연진들을 보며 교훈을 얻기도 감명을 받기도 했어서 오래 곱씹고 지냈던 것 같다. 어차피 그뭔씹 화제성이라(ㅠㅠ) 자세히 말해도 다 모를 것 같아서 전후사정은 굳이 말하지 않고 그저 유독 욕을 많이 먹었던 출연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처음엔 나 역시 그들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고 심지어 화까지 났었지만 프로그램을 끝까지 보고 리뷰 영상까지 n회차 돌려보고 나니 심경이 조금 변했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싶어지는 거다. 평범한 일상에서의 나를 가정하는 건 틀렸다. 일상과 완전히 단절된 세트장 속에서 제한된 사람들과 하루 종일 게임만 하다 보면 충분히 나답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출연진들의 어떤 비호감적인 순간들을 정색하고 비난할 수가 없어진다. 동시에 이 모든 것이 다 완전히 기획된 세트장 안에서의 일종의 사회실험 같은 거였다고 생각하니 역설적으로 과몰입도 좀 해소되었다. 극단적인 비유이지만 아포칼립스물 세계관에서 누가 누굴 죽였다고 열을 낼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일상이란 참 뻔하고 지겨운데 그렇다고 또 만만하지는 않아서 여러모로 사는 게 힘든 거 아닌가 싶다. 그래서 잠시 이 모든 걸 멀리 할 단절의 시간이 필요할진대 그런 시간을 갖는 것 역시 쉽지 않은 것이 문제다. 큰 걸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주 재미있는 책에 빠져드는 즐거움 정도의 단절로도 충분한데 요즘에는 또 왜이리 재미있는 책을 찾기가 어려운지. 평범한 소변기가 현대 미술의 상징으로 둔갑할 만한, 단절의 아름다움이 필요하다 지금의 내게는.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곁다리 라이프의 정수

양장점과 네일숍

빈 시간을 채워줄 한국 장르소설을 찾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