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유튜브의 시대, 유튜브에서 건진 양질의 다큐멘터리 감상 나눔
방에 있을 때나 회사에서 혼자 야근할 때(내가 워낙 일머리가 없고 느려서 어쩔 수 없이 자진해서 야근을 가끔 한다) 영어로 된 유튜브 영상을 틀어 놓는 습관이 있는데, 일하면서 지루하지 않기도 하고 계속 영어 리스닝을 할 수 있어서이다. 그것도 무료로! 내가 가장 선호하는 영상 종류는 바로 영어 다큐멘터리인데, 드라마나 영화는 줄거리를 쫓아가지 못하면 리스닝이고 뭐고 흥미가 안 생긴다는 단점이 있고 뉴스는 발음이 분명해서 알아듣기 가장 쉽지만 아무래도 시사,경제 등 무겁고 진지한 내용이 대다수다 보니 재미를 붙이기 힘들다. 개인 유튜버들도 그야말로 정보의 바다와 같이 많지만 그 가짓수가 너무 많다 보니 어떤 방송을 봐야 하는지 기준이 잘 세워지질 않는다. 반면 다큐멘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슈와 이야깃거리들을 주제로 삼다 보니 일단 질리지가 않고 또한 다큐멘터리라는 매체 자체가 각 나라의 유력 방송국들이 만드는 경우가 압도적인지라 개인 유튜브 방송과는 비교가 안 되게 스케일이 크고 꽤나 고퀄리티이다. 또, 한국의 방송사들도 그렇듯이 다큐멘터리는 내레이션의 발음이 깨끗하고 분명하며 은어, 사투리 등을 쓰지 않고 표준적인 영어로 코멘터리를 하므로 더더욱 알아듣기 쉽다. 그리하여 이번 호에는 유튜브를 통해 무료로 접할 수 있는 양질의 다큐멘터리 중 특히 기억에 남았던 몇 편을 간단히 소개해볼까 한다. 각자의 문화생활에 무임승차한다는 취지에 나름 알맞게,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컨텐츠들을 타인에게 소개한다는 기쁨을 느끼며.
미국에서 범죄의 수도로 꼽힌다는 오클랜드 주 지역에서 미성년자 성매매 단속과의 전쟁을 벌이는 경찰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매춘 상대를 구하는 척 위장수사(undercover)하는 현장을 날 것 그대로 담았다. 그 과정에서 여성 경찰들이 겪는 위험, 뻔뻔스러운 실제 미성년자 성매수남들의 변명과 현실, 자신을 지킬 힘도 없이 돈과 성매매의 유혹에 그대로 노출되는 오클랜드의 소녀들을 가감 없이 접할 수 있다. 흔히 성범죄에 연루된 남성들은 미성년자인 걸 모르고 꽃뱀(?)에게 걸렸다며 무고죄와 남성들이 살기 힘든 세상을 주장하곤 하는데 적어도 실제 상황을 다룬 이 다큐에 등장하는 실제 성매수남들은 상대방 여성이 미성년자가 맞는지 몇 번씩이나 확인하고 콘돔을 안 써도 되는지 추가 주문을 한 후에야 매춘을 하기로 결정하는 등 미성년자 여성과의 성매매를 마치 온라인 쇼핑 하듯이 매우 꼼꼼하게(?) 따져보고 비로소 매춘을 주문한다.
다큐의 무대는 미국이지만 어디 한국이나 다른 나라라도 크게 다를 것이 있으랴. 스마트폰과 SNS의 발달 덕분인지 탓인지, 우리는 클릭 몇 번으로 생판 타인과 너무 쉽고 빠르게 만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10대는 물론이고 가끔씩 초등학생과 SNS 등으로 만나서 성적인 관계를 맺은 남성들에 대한 뉴스가 잊을 만하면 나오곤 한다. 이런 한국의 현실과도 맞물려, 남성들에게 섹스가 그렇게 큰 가치가 있는 것인지 성과 특정 성별에 대한 혐오를 넘어 증오까지 느끼게 하는 씁쓸한 다큐. 참고로 뉴스레터니까 굉장히 순화해서 쓴 문장이다. 한편으로는 너무나 쉽게 성매매의 유혹에 빠지고 자칫 강력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성매매에 내몰린 소녀들을 구하고자 하는 경찰들의 강인한 의지, 그리고 성매매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와 자립을 위해 노력하는 여성들의 모습에 가슴 한 구석에 따뜻한 인류애 한 조각만은 지켜진다.
City of the Future: Singapore
유튜브에서 다큐멘터리를 검색하다가 싱가포르를 다룬 다큐가 있길래 바로 시청했다. 서울보다도 작은 영토와 600만명이 채 되지 않는 도시국가이지만 1인당 GDP가 평균 5만 달러에 육박하며 오일머니 국가들을 제외하고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워낙 영토가 작고 지하자원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무한 나라이기에 싱가포르는 1차산업이 아닌 금융, 부동산, 조선업 등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자연이 턱없이 부족하기에 식수와 공기오염 등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자원에 대해서도 늘 경계해야 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만든이 퀄리티 좋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라이언 시티(Liony City) 싱가포르가 안고 있는 고민, 그리고 생존과 미래를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내가 8년을 살았던 나라임에도 참 모르는 게 많았구나 하는 후회와 함께, 오랜만에 듣는 싱글리쉬(Singlish,
싱가포르에서 쓰이는 영어)들이 묘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막상 싱가포르에 살 때는 싱태기가 느껴질 만큼 싱글리쉬가 듣기 싫던 시절도 있었는데 말이다. 또한 워낙 작은 나라이다 보니 인적자원에 크게 의존해야 하는지라, 유치원 때부터 아이들에게 코딩을 접하게 하거나 노인 세대 돌봄을 위해 다양한 기술을 도입하는 등 급박하게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까지, 내가 떠나 온 라이언 시티를 다시 보게 만들었던 재미있는 다큐.
Inside the hateful and lonely world of incel men
인셀(incel)이란 한국으로 말하자면 찐따남이나 ㅎㅌㅊ남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한국의 그들과 굉장히 유사하게도, 서구권 국가의 인셀남들은 부족한 자신의 외모 그리고 재미없고 매너 없는 성격 때문에 현실에서 여자를 만나지 못해서 자신들을 거절하는 여자들에게 적개심을 품는다. 그리고 현실에서 설 곳이 별로 없기에 자연스럽게 그 울분을 온라인에서 해소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방송국에서 현실 인셀남들을 캐스팅(?)하여 만든 이 다큐에서는 서양에서 인셀로 분류되는 젊은 남성들의 솔직한 마음과 그들의 실제 맨얼굴과 상탈(!) 사진까지 가감없이 공개하며 서구권 2030 인셀남들을 해부한다. 카메라 앞에서 얼굴과 신상 심지어 상의까지 당당하게 까고 나와서도 (한국과 비슷하게) 여성과 소수자 집단에 대한 혐오와 조롱으로 똘똘 뭉친 자신의 신념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오히려 자신을 거부한 여성과 사회 탓이라며 남 탓을 하는 인셀남들은, 그저 국적과 인종만 다를 뿐 우리가 한국의 온라인 상에서 흔히 보곤 하는 일베남, 펨코남, 이대남 등과 소름이 끼칠 만큼 비슷한 사고 체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닌 것이, 인터넷을 통해 망상을 키운 동서양의 인셀남들이 이제 온라인에서 키보드로 혐오를 표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그 망상을 옮기기 위한 희생자를 찾고 있음이 피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처음에 소개했던 미성년자 성매매에 집착하는 남성들과 일부 맞닿아 있는 맥락이 아닐까 싶다.
더더욱 기가 막힌 것은 해당 다큐의 유튜브 댓글은 이 남성들을 사회가 혐오와 배척만 하지 말고 따뜻하게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식의 플로우인데, 본인이 못나서 여자 못 만나고 그 울분을 타인에게 푸는 남성들에게 무려 사회가 따뜻하게 보듬어주기까지 해야 한다니 대체 사회는 어디까지 관대해져야 한다는 말인가. 외모 때문에 남자에게 거절당해서 온라인에서 악플러 짓 하고 현실에서 범죄 저지르는 젊은 여자(가 과연 존재한다면)에 대해서도 똑같이 관용을 먼저 요구할 것인지 궁금하다. 여성주의, 페미니즘의 ㅇ 만 들어가도 관용과 배려보다는 일방적인 적개심과 조롱이 압도적이지 않던다. 인셀남의 존재 자체도 기분 나쁘지만 더 기분 나쁜 것은 그 인셀남들에 대해 사회의 연대책임과 배려를 요구하는 식의 분위기이다. 심지어 동서양 어디 한 군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서양의 인셀 다큐가 이렇게도 한국과 꼭 닮아 있다는 건 많은 것을 시사한다. 단순히 아 온라인 상의 악플러 인셀남들은 역시 현실에서도 못생긴 찐따구나, 무시해도 되겠구나 하고 넘어가기 어려운 세상이 아닌 것이다. 온라인 인셀남들이 언제든 모니터를 뚫고 현실의 위협이 될 수 있는 그런 시대, 그런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저출생을 걱정하고 아이 안 낳는 여자들을 조롱하는 인셀남들은 본인들이 바로 그 저출생의 이유 그 자체임을 모르는 척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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