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멘탈 - 가장 단순한 존재인 원소로 설명하는 가장 복잡한 존재인 인간
세상의 모든 물질은 물, 불 공기, 흙의 4가지 원소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4원소설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였던 엠페도클레스에 의해 처음 주장 되었고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계승되었다. 19세기 돌턴의 원자론이 제기되기 전까지 약 2000여년간 비슷하지만 다양하게 변형되면서 서양 과학 문명을 주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시 몇 백년 후의 사람들은 이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진 세계가 있다면 어떨까 라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낸다.
[총평 : 나 자신이 사라질것만 같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엘리멘탈시티에 가장 늦게 들어온 불 원소는 입국심사부터 쉽지 않다. '그들(엘리멘탈시티의 기존 시민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원래의 이름 대신 생전 처음 본 심사장의 직원이 대충 만들어준 그들이 '발음하기 쉬운' 아무 이름을 받아 입국에 성공한다. 한 존재에게 이름은 그 존재를 설명하는 시작점 이자 모든 것이라고 여겨지는데, 그 이름이 사라진다는 것은 존재를 부정 당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멘탈시티를 최초로 일군 물 원소와 그 이후에 들어온 땅, 공기 원소에 모든 것이 맞춰져 있는 세상은 불 원소에게는 너무나 불친절한 곳이다. 주 교통 시설은 흐르는 물 위의 기차이고,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한 물과 식물을 키워내는 흙에게 불은 모든 것을 말라버리게 하고 태워버리는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 원소에게도 마찬가지다. 물에 닿으면 몸의 일부분이 사라지는 불 원소는 어떻게든 물과 멀리 떨어져 살아야만 한다. 여차저차해서 엘리멘탈시티에 들어 오게는 되었으나 철저히 분리된 공간에서 살고 있는 이유이다. '이방인'이자 '소수자'인 불 원소는 어느새 이러한 삶의 형태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다. 편의와 필요에 의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자연스레 게토를 떠올리게 되었다. 엘리멘탈시티의 불 원소에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도 노키즈존, 노펫존, 심지어는 노중년존까지 여러가지 불편의 결과로 만들어진 많은 게토들을 경험하고 있다. 이 사회는 어느 범위의 존재를 부정하고 사라지게 할 것인지 계속해서 노리고 있다.
앰버와 웨이드는 서로를 사랑하게 되지만 닿기만 해도 스스로의 존재가 사라질 것을 걱정해야 한다. 앰버는 물에 닿으면 몸의 일부를 잃게 되고, 웨이드는 불에 닿으면 수증기가 되어 사라진다. 그러나 둘의 사랑과 용기, 서로의 관계에 대한 믿음은 결국 둘을 말 그대로 손잡을 수 있게 만든다. 둘의 걱정과는 달리 맞잡은 손에선 작은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것 뿐이다. 앰버의 온도는 조금 낮아지고, 웨이드의 손에선 끓는 방울이 생겨났지만 서로를 사라지게 하지는 않는다. 관계가 깊어질 수록 두려운 것 중의 하나는 나 자신을 잃어가는 것이다. 우호적인 관계든 비우호적인 관계든 상대방과의 교류 속에서 진짜 나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는 모습을 발견할 때 너무나 절망적이고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앰버와 웨이드의 이러한 모습은 좋은 관계는 무조건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나 자신됨을 지켜갈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앰버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미래가 정해져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부모님의 희생과 열정을 잘 알고, 함께 생활하고 있다. 부모님이 일구신 파이어플레이스(불 원소마을의 대표 마켓) 에서 부모님을 도와 일하며 그곳을 물려받을 날을 고대하고 있다. 조금만 흐트러지거나 실수해도 본인을 다그치고, 그야말로 불같은 성격을 죽이며 적응하려고 한다. 마트를 운영하고 손님들을 상대하기에 순간 온도를 높이는 욱하는 성질은 반드시 고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웨이드의 가족 모임에 참여하여 깨진 유리를 금방 녹여 새로운 주전자로 만드는 것을 보고 웨이드의 엄마는 그녀의 또 다른 가능성을 알아봐 준다. 당연히 앰버가 기뻐할 줄 알았지만 앰버 인생 최대의 고민과 분노가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 동안 부모님의 가게를 물려받는 것 외에는 상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외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곳 부모님을 배신하는 이기적인 선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자신을 지탱하던 꿈과 미래가 흔들리는 경험은 그 동안의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었던 것일까, 그 동안 나를 지지하던 사람들이 뒤돌아 서지 않을까, 새로운 미래에 대한 선택이 실패하면 어쩌지 하는 여러가지 두려움을 동반하게 된다. 부모님께 솔직하게 고백했을 때 앰버의 아버지는 '내 꿈은 이 가게가 아니라 앰버 바로 너야' 라며 자신의 딸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보여준다. 앰버는 그 한 마디 덕분에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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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버의 어머니는 방문객이 나무에 불을 피우게 해 연기의 방향과 냄새로 궁합점을 봐준다. 불 원소의 동네에서 당연하게 통용되는 방법이기 때문에 앰버와 웨이드에게도 똑같이 적용한다. 앰버는 쉽게 불을 피우고, 앰버와 앰버의 어머니는 당연히 웨이드가 불을 절대 피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웨이드는 몸을 볼록하게 만들어 앰버의 빛을 굴절 시켜 불을 피워내고, 그 때 앰버와 어머니 뿐만 아니라 극장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헉! 하는 반응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저 눈물이 많은 바보 같은 줄만 알았던 물 원소의 대단한 재치와 매력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또한 메인 OST인 LAUV의 Steal the Show 영상은 꼭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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