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이모저모(슬픔이여 안녕, 8월이여 안녕!)
유독 길고도 힘든 8월이었다. 1)돌쟁이 아기와 함께 두 번째로 코로나에 걸렸고 2)아기가 컨디션을 채 회복하기도 전에 미리 예약해 둔 가족여행을 떠나야 했으며 3)돌아와서는 이사준비 4)그리고 당장 오늘까지 보증금 반환 및 기타 이사 관련 자질구레 한 일들(정말 너무 자질구레하게 많은 일들이 있었다!!!!!)을 처리했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는 말답게 어느덧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겨 힘겨웠던 8월의 일들을 기록해 본다.
1. 두 번째 코로나
작년 3월에 코로나에 걸렸으니 이번이 두 번째다. 사실 코로나나 독감에 대해서는 방심하고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아무도 만나는 사람 없이 대개 아기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데 무슨 수로 코로나에 걸리겠느냔 말이다. 그런데 정말 영문도 모르게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으니 바이러스란 무서운 법. 코로나임을 알게 된 건 아기의 고열 증상 이후였다. 아기가 아프고 난 다음 날 나도 목이 아프고 가래가 나오고 열이 올라 검사를 해보니 바로 나오는 선명한 두 줄, 아기에겐 코로나 검사를 하기가 어려워 해 보지는 못했지만 짐작건대 아기도 코로나였을 거라 생각한다. 이제껏 한번도 크게 아픈 적이 없다가 갑자기 열이 39.5도까지 오르더니 이틀은 아무것도 먹지도 않고 처져 있는데 그런 아기를 돌보아야 할 나도 아파서 죽겠으니 이게 웬 고역인가. 아기의 고열은 약 사흘 후 잦아들었지만 아프고 난 뒤의 후유증인지 투정인지 한참은 밥을 입에 대지도 않고 내가 조금만 떨어지면 큰일이 날 것처럼 우는 등 전방위적으로 나를 힘들게 했고 나는 그게 너무 괴로워 울기도 했다. 그리고 이게 부산으로 가족여행을 떠나기 고작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2. 부산으로 가족여행
웬만하면 취소를 했겠으나 그러지 못한 것은 숙소때문이었다. 부산에서 머물 곳은 바로 아난티 코브 펜트하우스. (억대를 주고 구입해야 하는)회원권을 소지한 사람들만 예약해서 갈 수 있는 회원제 리조트라고 해야하나, 소위 말하는 ‘찐부자’ 느낌을 낼 수 있는 숙소인데 그마저도 여름 같은 성수기에는 예약이 어려워 회원권을 가진 지인이 온 가족을 동원해 힘겹게 예약에 성공했다고 들었다. 그렇게 잡은 숙소를 취소할 수도 없었거니와 나 역시 고오급 리조트에서 한껏 기분을 내고 싶은 것도 사실이어서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돌쟁이 아기와 가족여행을 감행했다. 귀차니즘과 낙관주의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보는 게, 치밀하게 계획하고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하는 게 귀찮아 그저 ‘다 잘되겠지’ 하며 이상한 낙관론에 기대기 때문이다. 부산여행도 그랬다. 가서 기분 내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지 아직 걷지도 못하는 돌쟁이 아기를 데리고 여행을 가는데 뭐가 필요할지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게다가 그 먼 거리를 차로 이동했으니. 올라오는 길에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서 길에 한참을 멈추어 있을 때는 그냥 여기가 전쟁통 같았다. (원래도 뭘 잘 안먹기는 하지만) 먹을 것도 없고 기저귀를 갈기도 힘들고 어디 움직일 곳도 없는 차 안에서 대략 9시간을 있어야 했으니 아기도 아마 아주 힘들었을 것이다(그러니 나를 더 힘들게 했겠지). 기대했던 숙소는 넓고 쾌적하긴 했으나 바다뷰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고 나머지 서비스도 평이했다. 뷔페러버로서 아침과 저녁은 아난티 안에 있는 힐튼 뷔페에서 먹었으나 아기가 너무 껌딱지처럼 붙어있던 관계로 무언가 평가하기에는 아무것도 즐길 수 없었던 식사와 휴가.
3. 수월한 이사준비
태어나서부터 결혼 전까지 이사만 여섯 번을 다녔음에도 정작 이사날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는데 내가 직접 이사를 해 보니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사날엔 정말 할 게 없다. 이사 전도 마찬가지, 귀중품만 따로 챙기면 더이상 아무것도 할 게 없는 게 바로 21세기의 포장이사 서비스. 이삿짐 포장이 아닌 새 집에 이삿짐을 옮기는 날은 또 어떨는지 모르지만 일단 너무 수월하게 끝이 나서 다행스러운 마음이다.
4. 보증금 돌려받고 또 보증금 돌려주기
전셋집에 사는 동안 갭투자를 해서 나 역시 전세를 주고 집을 마련했다. 그리고 집을 구입한 지 벌써 2년이 지나 살고 있던 전셋집을 떠나 구입한 집에 들어갈 시기가 되었다. 전세 보증금을 반환해 주어야 하므로 특례보금자리론, 주택자금대출 등을 알아보고 서류를 준비하느라 꽤 바빴다. 그래도 보증금 반환을 위한 대출은 내가 알아본 대로 진행이 되어 준비할 것이 많기는 해도 힘들지는 않았는데 문제는 내가 사는 전셋집의 보증금을 받는 일이었다. 처음 전셋집에 들어갈 때는 전세자금대출을 받고 들어갔으나 2년 전 집을 구입하면서 그 대출을 다 상환했는데 상환 통지가 집주인에게 되지 않은 것이었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일 수도 있지만 전세자금대출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세입자가 전세자금대출을 받으면 은행은 대출금을 채무자인 세입자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집주인에게 바로 송금한다. 그리고 (이건 나도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집주인에게 ‘채권 양도 사실’ 통지를 한다. 계약기간이 만료 되면 세입자가 받아야할 보증금의 권리를 은행이 가진다는 뜻이다. 즉, 은행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빌려주었으니 계약기간이 끝나 보증금을 돌려줄 때에도 은행에 돌려주면 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세입자가 전세자금을 상환했을 때에도 채무를 완제했다는 통지를 해야 마땅할텐데 그걸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집주인은 본인은 상환내역에 대해 은행으로부터 받은 공식적인 문서가 없으니 내게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하고 나는 그 보증금을 돌려받아 (보증금 반환을 위해 받은 대출금과 합쳐)나의 세입자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차적으로는 은행에 화가 났지만 시간이 갈수록 집주인에게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전세자금 대출 상환을 완료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예전에 다 했고 은행으로부터 받은 문서가 없다기에 상환내역도 다 첨부해서 보내주었는데 어찌 미안한 기색도 없이 보증금 반환 전날(그것도 저녁에!) 돌려주기 어렵다는 말을 하는가. 물론 떼어먹으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알고 조심하려는 차원에서 그랬다는 것은 알지만, 보통 계약종료일에 맞추어 한 날에 보증금을 받고 또 그 보증금으로 다른 집의 보증금을 내고 하는 게 일반적인데 하루 전에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렵겠다고 하니 정말이지 너무 골치가 아팠다. 이렇게 길게 적었음에도 여기에 엮인 자질구레한 일들이 더 많았다는 것을 부디 알아 주시길. 그리고 더 자질구레해서 일일이 적지는 않겠지만 집 상태 점검, 다음 세입자와의 가구 거래 등등 신경쓸 일이 무척 많았다. 이렇게 보증금을 돌려받고 또 보증금을 돌려주고 나니 어느덧 8월 30일이었다.
5. 8월이여 안녕!
그리하여 8월이 다 흘렀다. 짬나는 대로 책을 몇 권 읽었고 다행히 읽은 책 모두 괜찮았다는 게 기쁨이라면 기쁨이었다. 장강명의 <책, 이게 뭐라고>는 개인적으로는 인간 장강명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담백하고 솔직했다. 자칫 잘난척하는 것 같아 미움받을 수 있을 만한 생각을 털어 놓는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럼에도 솔직하게 자기의 생각을 적어 내려가는 점이 좋았다. ‘읽고 쓰는 세계’와 ‘말하고 듣는 세계’를 비롯 본인의 머릿속에서 체계적으로 구축한 방식으로 생각을 풀어나가는 점 역시 배우고 싶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지난 뉴스레터의 추천을 통해 읽은 황세연의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는 시작부터 결말까지 작가가 촘촘히 배치해 놓은 단서와 유머 모두 좋았다. 사실 유머러스한 추리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유머러스하다고는 하지만 실없는 농담같이 느껴질 때가 많고 그 실없는 농담에 허술한 추리와 트릭을 감추려는 것처럼 느낀 적이 많기 때문이다. 초반엔 이 역시 그런 소설 아닌가 싶었지만 본격적으로 사건이 시작되고 중후반부로 접어들 수록 작가의 역량이 돋보인다. 시대적 배경과 별개로 요즘 시선에서 보면 조금 구시대적인 발상과 대사가 있기는 하나 아주 예전에 쓴 <IMF나이트>라는 단편을 늘린 것이라고 하니 그 당시에 쓴 것임을 감안하면 넘어갈 만하다. 작가의 또 다른 단편인 <고난도 살인> 역시 짧은 글 안에 소재와 캐릭터, 트릭과 이야기의 흐름이 밀도있게 짜여 있다. 신선한 충격을 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모범적인 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겠다(대신 무지 짧다).
그리고 웹툰 <꼬리잡기>의 완결을 맞아 꼬리잡기 정주행을 두 번이나 했으며, 웹툰 <마스크걸>이 넷플릭스로 나왔다기에 <마스크걸>이 얼마나 재미있는 웹툰이자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가 쏟아지는 작품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니 언제 기회가 되면 뉴스레터를 통해 풀고자 한다. 끝으로 지금은 쯔진천의 <다만 부패에서 구하소서>를 읽고 있는데, 쯔진천은 사회파 추리소설로 유명하기도 하고 전작들이 전부 진중한 분위기라서(<나쁜 아이들>은 제외) 그런 느낌을 예상했으나 의외로 블랙코미디 같은 씁쓸한 웃음을 주어서 기대와는 다르지만 재미있게 읽는 중이니 이 역시 짧게라도 리뷰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 8월이 지나갔다. 보다 건강하고 부지런한 9월을 보내자고 스스로 작은 결심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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