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다정하게 함냐함냐 찰칵찰칵
회사에 적응하느라 별로 한 것도 없이 시간이 다 갔네...하고 핸드폰 갤러리를 보는데 기분 좋은 사진이 한가득 이었다.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라는 책의 제목이 떠올랐다. 처음 봤을 땐 진부하다고 생각했는데 갤러리 속에는 소소한 행복들이 가득해서 뉴스레터를 기분 좋게 쓸 수 있었다. 더위는 한 풀 꺾이고 시원한 비까지 내리는 주말, 핸드폰 속 갤러리를 소개해 본다. 멋진 공식 사진과 갤러리 속 현실 사진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신기한 경험을 했구만 - 9월의 휘둥그레
SELECTED WORKS 스톤 아일랜드 아카이브 전시회 성수
고객은 소비자를 넘어 열렬한 지지자이고, 팬이자 친구이며, 브랜드의 특별한 매력을 알아보는 이들입니다.
- 스톤 아일랜드의 수장 카를로 리베티 (Carlo Rivetti)
H의 추천으로 가보게된 스톤 아일랜드의 아카이브 전시회. 의류 브랜드 전시회는 처음 가보는 거라 기대반 걱정반이었다. 장소도 성수의 어느 한 창고같은 곳에서 진행하고, 방문한 다른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태도가 엄청 힙해 보였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전시회를 즐기기 위해 설명들도 열심히 읽어보고 전시물 하나하나 눈에 천천히 담았다. 1층에는 스톤아일랜드 의상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연도별로 대표 컬렉션들이 줄지어 전시되어 있었다. 2층은 스톤아일랜드에서 시도한 새로운 소재의 의상들, 3층은 스틸 및 브론즈 파카 35벌로 구성된 전시물과 프로토타입 리서치 시리즈가 전시되어 있었다. 스톤아일랜드의 실험실 한 켠을 옮겨 놓은 것처럼 아직 산업화 되지는 않은 실험에서 탄생한 패브릭과 처리과정을 통해 완성된 옷들을 순서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패션이라는 소재와 익숙하지 않은 브랜드의 조합이라 처음엔 어색했지만 전시회를 모두 둘러보고 나니 새로운 미술작품을 만난 것과 같은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잘 먹고 다녔구만 - 9월의 얌얌굿
○바질크림빠네파스타
○갓덴스시 롯데월드몰점
한달에 두 세 번은 초밥을 먹는 내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아마 이제는 더 이상 초밥을 먹지 못할 것이라는 슬픈 현실을 앞에두고 마지막 초밥이 될 지 모르는 초밥을 먹고 왔다. 생일턱과 취업턱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약간의 가격이 있는 곳을 선택하였고, 동생도 만만치 않은 초밥킬러로서 충분한 양을 먹기위해 회전초밥집을 선택했다. 12시쯤 도착했을 때 대기팀이 34팀정도 있었고, 한시간 반 정도 기다려 먹을 수 있었다. 묵은지광어, 연어3종세트가 특히 맛있었고 대왕계란말이가 일품이었다. 구운파를 토핑으로 올린 초밥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폴바셋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
초밥을 먹고 후식으로 바로 옆에 있던 폴바셋으로 가서 신메뉴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약간 톤다운된 파스텔톤의 연두색을 띄고 있는 아이스크림은 맛 또한 색깔과 딱 어울리는 맛이 났다. 고소한 피스타치오의 맛과 향이 은은하고 고소하게 올라왔고 폴바셋의 아이스크림 질감이야 어디에도 뒤지지않는 쫄깃하고 부드러운 식감이다. 폴바셋의 콘 아이스크림을 처음 먹어봤는데 콘 자체도 굉장히 바삭하고 쉽게 물러지지않고 아주 고소한 전병같은 맛이었다. 아이스크림과 콘의 조화가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프레시지 탐나는 밥상 감바스
바질크림빠네파스타보다 더 쉬운, 밀키트라기에는 너무 간단한, 그냥 내용물을 프라이팬에 끓여 먹기만 하면 되도록 내용물이 포장되어 있다. 후기를 찾아보니 파스타면을 넣어 먹으면 그대로 감바스파스타가 된다는 쩝쩝박사님들의 추천을 그대로 따라 파스타면을 넣어 먹었다. 6분정도 삶은 파스타면을 끓고 있는 감바스에 넣어 몇 번 휘휘 저어주면 완성이다. 감바스 자체가 새우,브로콜리 등 재료가 풍부하게 들어가있어 파스타로 먹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소스의 간도 딱 좋아서 딱히 무엇을 더 추가하지 않아도 완벽한 맛이었다.○키친205 딸기밭케이크 1호
함평에서 시작된 생크림딸기케이크 전문점 키친205가 잠실에 생긴지는 오래됐지만 케이크 구매 예약이 치열하여 몇 년 동안 시도도 못해보고 있었다가 생일을 맞아 매장에서 직접 구매에 도전했다. 딸기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수월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딸기가 맛이 없을까봐 걱정했는데 단맛은 좀 적고 새콤한 맛이 있어 달콤한 크림과 새롭게 잘 어울렸다. 딸기철이 아닐 때는 고랭지에서 재배되는 여름딸기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절반을 해치우고 다음 날 절반을 해치울 정도로 취향 저격이었다.○콩나물밥
사먹은 음식들 끝에 유일하게 해먹은 음식 바로 콩나물밥이다. 침착맨의 최근영상 최고의 탄수화물 월드컵을 보다가 콩나물밥이 등장했는데 너무 먹고 싶어서 퇴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콩나물을 사다가 전기밥솥으로 새 밥까지 지어 콩나물밥을 해먹었다. 양념에 고춧가루가 들어가야 하는데 집에 고춧가루가 똑 떨어져 200g에 15,000원짜리 국산 고춧가루도 구매했다. 평소에는 잡곡밥을 먹지만 역시 콩나물밥은 하얀 쌀밥으로 해먹는게 제 맛 아니겠는가. 백미를 씻어 넣고 그 위에 콩나물 한 봉지를 전부 씻어 올린 후 밥을 짓는다. 밥이 익어갈 수록 콩나물의 고소하고 시원한 냄새가 더해져 입맛을 돋군다. 진간장, 맛술, 다진파, 고춧가루, 참기름을 넣어 직접 만든 양념장을 준비해놓는다. 밥이 다 되자마자 전기밥솥을 활짝 열고 주걱으로 솔솔 밥을 뒤집어 주고 한 그릇 예쁘게 담아 양념장과 비벼먹으면 저녁 준비의 피곤함이 싹 사라진다. 살짝 신김치를 올려 먹어주면 숟가락질 몇 번에 모두 사라져 아쉬움을 더한다.
●좋은 책을 읽었구만 - 9월의 출퇴근길
9월의 독서라고 하지만 출퇴근 길에 조금씩 읽어 겨우 한 권을 마무리 했다. 너무 피곤한 날은 졸면서 출근하기도 하고 아무 생각없이 음악을 들으며 퇴근하기도 했지만 이 책을 읽어가는 시간들이 정말 따뜻하고 행복했다. 바로 김혼비의 '다정소감'이다. 작가가 경험한 귀엽고 소소한 다정의 소감들을 모은 책으로,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글들을 모두 읽을 수 있어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곧 추석이 다가와서 그런지 책 속의 추석에 대한 소회가 인상깊었다.
'조상 혐오를 멈춰 주세요'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저 사람은 기념일 챙겨주지 않으면 앙심을 품고 우리를 두고두고 괴롭힐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어때요? 당장 '나를 대체 뭐로 보고!' 하는 말이 나오지 않나요? 기분 나쁘지 않겠어요? 자신은 그런 취급받으면 기분 나쁠 거면서 조상들에겐 대체 왜 그래요? - 85쪽
이제라도 제사를 지내지 않음으로써 조상에게 깊은 신뢰를 표현해보면 어떨까. 우리의 조상님들이 제사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언제나 넓은 마음으로 후손의 번영을 바란다는 것을. 먹고사느라 지친 후손들이 침대에 몸을 누인 채 명절 내내 푹 쉬거나 훌쩍 여행을 떠나 재충전하기 바라 마지않는다고 믿는 것이다. - 86쪽
가부장제에서 '제사' '인륜' '전통' 이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온갖 불공평한 노동과 착취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이렇게 유머스럽고 콕콕 찌르는 문장으로 대변할 수 있다니.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들을 눈에 보이는 글로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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