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부제: 아기에게 화를 내지 않는 방법)

 


아기를 키우다 보면 종종 화가 난다. 처음에는 타이르는 말로 시작했다가도 어느새 목소리가 높아지고 열을 내며 흥분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쯤 되면 멈출 수가 없게 된다. 이른바 ‘물밀듯이 밀려오는 감정’이 순식간에 나를 덮치면서 주체하지 못할 지경으로 화가 나는 것이다. 그때의 나는 아무리 내 감정이라 한들 조금도 건드릴 수가 없다. 그저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감정에 끌려다닐 뿐. 여기서 말하는 이 감정은 분노이지만 다른 감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슬픔도 공포도 모두 나를 ‘덮쳐오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것들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즉 감정은 외부의 자극으로 인해 촉발되는 자연스러운 정신적, 신체적 반응이자 결과인 것처럼 느껴지곤 하는데 이 관점이 바로 감정에 대한 고전적 견해이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일이 생기면 기쁨을 슬픈 일이 생기면 슬픔을 또 저마다의 사연들로 희노애락을 느낀다. 핵심은 이러한 감정들을 내가 스스로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감정을 관할하는 뇌 영역이 있어 평상시에는 잠잠하다가 자극이 들어오면 그에 반응하는 것처럼 인식한다는 점이다. 뇌에 감정을 관할하는 영역이 있다면 당연히 감정은 인류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것이며 신체적 반응 역시 동일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실제 연구 결과를 살펴 보면 감정을 관할하는 뇌 영역은 존재하지 않고 그에 따른 신체적 반응 역시 일종의 사회적 합의일 뿐 뇌의 작용에 의한 필연적인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그로 인한 웃음, 눈물, 비명 등과 같은 신체적 반응은 전부 뇌가 과거 경험을 통해 적절한 감정개념을 부여하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예측해 신체예산을 조절하는 것이지 외부자극에 의해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감정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하면서 시작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만약 감정이 뇌의 특정 부분에서 촉발되는 것이고 그로 인한 신체적 반응이 부수적인 것이라면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에 대한 표정(책에 의하면 안면배치)은 서로 비슷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표정을 통해서도 감정을 맞힐 수 있어야 비로소 감정은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이자 인류 보편적인 것이라는 신화가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신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자극에 대한 표정은 사람마다 다르고 표정을 통한 감정의 분류 역시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실제 실험 결과였다. 그래도 ‘행복하면 웃음이 난다’는 것 정도는 보편적인 것 아니냐며 반문하고 싶어질지도 모르지만 ‘행복함’, ‘웃음’ 전부 뇌가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을 과거 경험과 가지고 있는 개념을 결부시켜 구성한 결과라는 것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이다.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만큼 받아들이기도 어렵거니와 반박해야할 기존 이론과 연구 결과 역시 매우 많지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실체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1부, 예측하는 뇌가 어떻게 신체예산을 효율적으로 조절하는지 설명하는 2부, 그리고 감정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통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3, 4부까지 책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서서히 우리가 스스로 감정을 구성하고 경험을 설계하는 주체라는 사실을 납득하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다’라는 흔한 말을 떠올릴 수도 있고 한때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열풍을 일으켰던 책 <시크릿>을 떠올리며 ‘뭐 이게 대단한 내용이라고’ 하며 심드렁하게 대꾸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 분량의 거의 3할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각종 논문, 실험결과 및 데이터, 참고 문헌을 훑어 보면 그런 회의적인 생각은 달아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매우 충실하게 잘 쓰인 설득론 혹은 자기계발서 같기도 하다. 고정관념에 대한 문제제기와 새로운 주장을 뒷받침하는 믿을 만한 수많은 자료 그리고 그 새로운 주장을 토대로 한 의미 있는 제언까지 아마도 다 읽고 나면 스스로가 세계를 해석하고 경험을 설계하는, 그리하여 앞으로의 나 자신을 만들어가는 주체라는 사실에 보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여담>

그래서 나의 경우는 어떻게 이 새로운 관점을 적용시켰느냐 하면 아기가 떼를 쓰고 짜증을 내며 슬슬 내 감정에 불쾌한 자극을 주려고 할 때 현재 아기의 행동에서 예상되는 것과 일부러 다른 예측을 내어 놓는 것으로 시도해 보았다. 이전에는 아기가 떼를 쓰고 짜증을 내면 그것이 더 심해질 거라 예측해 나의 모든 신경이 아기의 떼와 짜증에 쏠리고 신체예산 역시 거기에 맞추어 준비되었겠지만, 이제는 예측을 바꾸어 ‘지금은 떼를 쓰고 짜증을 내지만 금세 웃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나의 예측과 신체예산을 아기의 웃음에 맞추어 변화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게 책에서 제안하는 것을 제대로 적용시킨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나름대로 효과를 보고 있으니 이 책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나 남이 연애하는 거 좋아하네

소녀의 로망

곁다리 라이프의 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