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스웨덴을 통해 한국의 현재를 보다

 


오늘 같이 볼 책은 <인구위기>라는 책이다. 무려 이 책은 1934년도에 쓰여진 책이고, 스웨덴의 뮈르달 부부가 쓴 책이다. 이 때 한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16년이 되는 해이고,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해이자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이다. 이렇게 시대를 가늠해보면 정말 오래 전 출간된 책이고 지금으로부터 무려 90년 (약 100년) 전 책이니, 과연 이 책이 어느 정도 한국 사회를 설명해 줄 수 있을지 궁금증 반 호기심 반으로 책을 펼쳤다. 이 책의 한국어판은 1934년으로부터 90년이 지난 2023년 출간되었다. 7월에 나왔으니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스웨덴은 복지국가 가운데 가장 선두에 서 있는 국가이다. 많은 국가들의 복지 사회 정책들이 스웨덴의 것들을 참고한다. 그러나 스웨덴의 정책들을 형식 그대로 다른 국가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정책에 배태되어 있는 그 나라 고유의 정신, 믿음, 가치들까지 흡수하지 않고서는 정책이 제대로 작동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스웨덴이 오늘날의 복지국가를 만들어 나간 배경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의 '무엇'이 지금의 복지를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 물론 스웨덴의 복지국가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변화하고 있다. 1930년대의 세계 상황과 2023년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약 100년의 시간 차이로 스웨덴이 겪었던 인구 문제는 오늘날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을 우리 뉴스레터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이 책을 읽기 전, 우리의 자세는 이 책이 출간된 해가 1934년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꽤 거침없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소개나 해석은 2023년 독자로 하여금 멈칫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지만 그럼에도 주옥같은 문장들은 쉼 없이 읽혀진다. 먼저 저자가 서문에서 말하는 이데올로기의 역사적 고찰은 공감가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몇 가지 문장을 나눠보자면...


"수많은 문제가 모두 '학교 문제'로 귀결된다. 스웨덴에서 학교 문제에 대한 논의를 할 때, 늘 사회문화적 관점은 제외된다. 개개인이 행복하게 사회발전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고, 새로운 사회에서 완전히 공생할 수 있는 기회를 증대하는 것이 학교의 사회교육적 목적이라는 것을 논의에 포함시키지 못한다. 간단히 말해서 학교의 수단이 아니라 학교의 목적에 대해 논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학교의 목적에 대해서 질문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현대사회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필요하며 학교에 이를 어떻게 요구할 수 있을까? 그들은 제너럴리스트여야 하는가, 스페셜리스트여야 하는가? 이론적으로 훈련되어야 하는가, 실용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한느가? 권위를 따르는 자여야 하는가, 문제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역사주의에 물든 보수주의자여야 하는가, 아니면 미래지향적이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개인주의자여야 하는가, 집단주의자여야 하는가? 억압받아야 하는가, 자유로워야 하는가? 혼자 전전긍긍해야 하는가, 협조적이고 부지런해야 하는가? 복종적이고 지도자들에게 순종적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용감하고 책임감 있고 독립적인 시민이어야 하는가? [...] 어느 하나 절대적인 인간상은 없으며, 무엇이 더 나을 것도 더 못할 것도 없다. 어떤 세상에서 그가 살아갈 것인지 그리고 어떤 세상을 그들에게 준비해줄 것인지에 달렸다. 따라서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사회생활의 요건이 무엇인지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학교에서 어떤 인재를 길러내고 있는지 학교 내에서 하고 있는 일들을 살펴보면, 주로 순종적이며 반항하지 않는 봉건적이고 이기적인 자본주의자, 즉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사회에 적합한 인재를 길러내고 있다. 학교교육의 이상은 무의식적인 경우가 많은데 주로 이 둘의 불행한 조합인 경우가 많다."

"오늘날 스웨덴 학교의 전체적인 교육 방법은 협소한 개인적인 동기에서 인재들을 길러내기 위한 것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개인의 욕구가 이에 해당한다. 개인적인 성과 외에는 평가에서 중요한 것이 없다. [...] 이런 학교교육은 과장되고 잘못된 개인주의로 자연스러운 사회적인 태도를 억누르게 함으로써 학교가 미래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게 한다. 경쟁을 이상화하는 자유주의적 접근은 신중히 해야 한다. [...] 학교는 1800년대의 철학, 즉 잘못된 개인주의를 연장시키고 있다."

"개인의 고립과 내부의 경쟁은 우리 스웨덴의 문화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질투', '지루함', '딱딱함', '부끄러움' 등 관계에서 개인적인 온기가 부족하고, 고집스럽게 권리를 주장하고, 형식주의적인 심리적 이해와 실질적인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등은 우리 스웨덴인에 대해 널리 알려진 세간의 평가다. [...] 비사회적이고 질투가 많고 기쁨에 인색하고 효율성을 저해하는 개인의 고립은 우리 문화에 존재하며 이는 장기적인 교육으로 바꿀 수 있다."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더 많은 문장들이 있지만, 다음 주제로 넘어가보려고 한다. 다음은 '여성과 일'에 관한 문장들이다. (다시 한 번 상시한다면, 이 글은 1934년에 쓰여진 책이라는 점이다!)

"기혼 여성의 근무 조건 [...] 광범위한 사회정책 개혁을 정당화하는 논의에서 우리는 자녀 양육에 대한 사회의 부분적 인수가 사업화로 혁명을 일으킨 또 다른 영역, 즉 여성의 일이 변화한 결과로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이 중요하고 특히 시급한 문제를 다룰 때,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여성의 일과 그 조직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연구하는 것은 유익하다."

"출산과 육아에 관한 한,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일은 집이나 집 근처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여성의 생산적인 삶에 큰 지장을 초래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미 어린 나이에 스스로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때까지는 여성의 출산이 가족생활에서 거의 생산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오늘날 출산은 분명 순전히 소모적인 일이다. 육아는 이제 여성의 일의 중심이 아니다. 그 당시 아이들은 자신을 스스로 더 잘 돌보았고, 어머니 외에도 친척, 형제자매, 특히 아버지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자녀 양육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산업화가 도래하고 집 밖에서도 유능한 일을 하도록 강요받았을 때, 여성이 순전히 생리학적 기능인 어머니의 역할을 통해 가정에 더 묶이게 되고 주된 경제적인 책임이 남자에게 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가족이 더 작아지고 아이의 수가 훨씬 적기 때문에 돌봄의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영아 사망률이 과거에는 아동 수를 줄여왔지만, 이제 일반적으로 살아남은 어린이의 수는 훨씬 더 적다. [...] 여성을 도덕적으로 규정하고 여성의 본질과 타고난 기능에 대해 아이를 갖는 것을 '인생 과제'로 간주하지만, 막내 아이가 취학 연령이 될 때까지는 엄마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렇다면 육아 이후에 주어지는 '인생 과제'는 없을까? 여성들이 자기의 삶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불합리한 부적응으로 보이지 않을까? 결론은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 출산과 양육에 집중하는 기간은 이제 여성의 길어진 수명 중 짧은 기간에 불과하다. 따라서 여성이 이 기간을 전후로 직업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더 쉬워져야 한다."

"많은 여성이 직업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결혼을 자제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족제도가, 여전히 결혼과 자녀가 가정 밖에서 유능한 고용에 상당한 장애가 될 때 그러한 결과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자녀를 양육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경제적, 사회적 기반이 이미 훼손되었다. 특히 여성의 기능은 완전히 다른 경제적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이제 전통적인 방법은 합리적이지 않다. [...] 무자녀는 가족, 특히 여성의 변화된 사회생활 조건에 대한 특정 형태의 '적응'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방식의 적응을 원한다면 오늘날 가족이 처한 어려운 갈등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충분히 깊숙이 파고드는 사회적, 정치적 개혁 작업을 통해 동기에 영향을 미치도록 노력해서 가족의 사회학적 재조직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 심리적 이유, 교육적 이유, 가족 조직적 이유, 특히 인구의 정치적, 사회경제적 이유 등으로 우리 사회는 자녀 양육 비용의 더 많은 사회적 재분배에 도달해야 한다."


이 책이 제안하는 다양한 정책적 제안들, 사회운동 차원의 핵심 슬로건 등은 이 책을 직접 읽어야만 그 맛을 볼 수 있기에 인용은 여기까지 줄여야 할 것 같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 글이 약 100년 전에 쓰여진 책이라는 점에서 나는 감탄한다. 그리고 우리가 '스웨덴은 원래 복지국가'라고 생각해왔던 나의 편견을 깰 수 있었다. 그들 또한 우리와 같이 인구 감소의 문제, 여성 문제, 교육 문제 등 다양한 사회 문제 앞에서 뼈 아픈 토론과 논쟁이 있었고, 더 나아가서 '개인주의', '사회주의', '보수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 토론이 활발하였다라는 것은 매우 부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념이 죽음과 생명을 가로 질렀던 시대를 불과 몇 십 년 전까지 경험하였다. 지금도 분단 상황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념 논쟁은 여전히 현실 정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래된 미래'를 읽은 것과 같았던 <인구 위기> 책을 읽으며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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