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은 찐이라고 말 안 해!

 지난 주 대한민국을 뒤덮었던 한 마디는 뭐니뭐니해도 남현희-전청조 스캔들 아니 사기극일 것이다. 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가 이혼과 동시에 재혼을 발표하는데 그 상대가 15살 연하남에 재벌 3세라고 했다. 그러나 재벌이라기엔 아무도 들어본 적 없고 소문조차 없었고 또 찐남자라기엔 너무나 왜소했던 수상쩍은 인물. 20대의 나이에 승마, IT기업 임원, 각종 사업가의 경력을 주장하는 그 아니 그녀(?)의 허술한 거짓말은 며칠 만에 금세 바닥까지 탈탈 털리고 말았다. 시그니엘, 명품, 성전환 수술을 했네 마네, 임신테스트기 등등 도파민 과다 공급으로 가득찬 와중 남현희가 운영하는 펜싱 아카데미의 성범죄 사건까지 불거지면서 이번 사건에서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과연 어디까지 대중에게 기억될까.

뉴욕 출생은 커녕 인천 강화도의 뉴욕뉴욕이라는 작은 경양식집 단골이었다는 전청조의 마음 속에서, 시그니엘에 사는 재벌 3세라는 자신의 모습은 그녀 스스로에게만큼은 찐이었을까. 혹은 그녀도 찐이 아니라 거짓임을 인지는 하고 있었을까. 남현희와 전창조도 서로 속고 속이면서 상대방에 대해 어디까지가 찐이고 거짓인지 모르지 않았을까 싶다. 

찐은 무엇으로 판단해야 할까? '찐'이라는 말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마구 남용되는 것 같다. 찐부자는 티 안 내고 검소하고 찐비혼은 본인이 비혼인거 말 안 하고 다니고 찐사랑은 어쩌고 저쩌고 특정 MBTI가 찐이면 이렇고 저렇고. 찐인지 아닌지는 누가 판단해 준다는 건지도 모르겠고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닌데(과학적으로나 객관적으로 증명 가능한 부분들 말고) '찐XX'의 정체성을 자기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찐이면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고 잣대를 제시하는 건 그냥 본인이 하고 싶은 말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덧붙이는 미사여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찐부자들은  고급 아파트와 명품VIP들은 그럼 찐부자 아닌 가짜부자들이 그 큰 돈을 쓰고 다닌다는 것일까. 또 요즘 온라인 상에 플로우를 보면 찐비혼은 비혼이라고 말 안 하고 다닌다는데 그럼 비혼이라고 스스로 말  안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 비혼 아닌척 하는 찐비혼이구나 생각하면 되는 건지? 

더군다나 바이럴마케팅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무슨무슨 아이템 찐추천, 현지인 찐맛집 등은 이미 SNS와 블로그 등에서 오염된 단어가 되어 버렸다. 나는 찐으로 맛있어서, 써보고 좋아서 추천했는데 바이럴마케팅에서 현지인 찐맛집이라고 추천하는 맛집이나 추천템 등에 포함되어 있으면 나는 찐이 아니게 되는 것일까.

허언증과 망상증도 정신병이기에 전창조 스스로는 재벌 3세의 혼외자라는 망상을 진심으로 믿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허무맹랑하고 어설픈 거짓말조차 그녀의 세계에서만큼은 '찐'이었다고 해서 그게 찐이 되지는 않는다. 찐사랑 찐비혼 찐부자 등등 온갖 찐 타령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찐을 부르짖든 아니든 그건 전부 내 마음에 달렸다. 진품 가품의 구별은 물건에나 가능한 것이다. '찐'이라는 접미사가 붙는게 이제는 역으로 더 바이럴처럼 느껴지는 요즘 몇 자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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