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읽으면 죽는 병에 걸리진 않겠지만...
인터넷 좀 한다 하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그 제목, 일명 '데못죽'의 세계에 나도 빠져버렸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보고 빌려왔다가 순식간에 400여 페이지를 읽었고, 과몰입은 현재진행형이다.
단행본 기준 3부 구성 총 10권 분량인데, 도서관에는 1부의 1, 2권만 있어서 뒷편을 읽기 위해 '카카오페이지'에 가입까지 해보았다. 웹툰을 잘 보는 편이 아니라 콘텐츠 플랫폼에 본격 진입해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그 무궁무진한 데이터 양에 놀랐다. 웹툰, 웹소설, 그리고 서로를 원작으로 재창작한 콘텐츠가 매일매일 수없이 쏟아지고 있었고, 그에 비례해서 광고도 쉴틈없이 떴다. 게다가 한 편 한 편의 분량도 어마어마해서, 성경보다 토지의 글자수가 더 많고 토지보다 화산귀환 글자 수가 더 많다던 게 실감났다.
데못죽만 해도 각 400페이지가 10권이다. 나름 의기양양하게 단행본 2권을 클리어하고 카카페에 입문했건만, 600여편 중에 채 100편이 안 되는 정도만 읽은 셈이었다. 그리고 오늘을 기준으로, 143화까지 읽었고 앞날은 까마득하다.
여전히 이 작품의 큰 그림을 보지 못한 이 시점에, 그럼에도 이 작품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 작품은 공시생이었던 주인공이 어느 날 다른 누군가의 몸에 빙의된 채로 회귀한다. 그리고 주어진 미션, 데뷔하지 못하면 죽음! 제목 그대로다. 그리하여 데뷔를 위해 고군분투한다... 까지가 1부, 내가 읽은 단행본 1-2권의 내용이다. 그러니까 어그로성 제목은 초반부에 한정되어 있는 셈이다.
이 작품은 흔히들 말하는 웹소설의 전형적 특징을 갖고 있다. 첫 번째, 주인공이 거의 먼치킨식으로 능력이 있고 앞을 꿰뚫어보며 전략적으로 나선 행동들은 효과적으로 먹힌다. 두 번째, 서사에서의 갈등은 1-2회 내에 해결된다. 그러니까 '고구마'보다 '사이다'에 집중한다. 세 번째, 그럼에도 끊임없이 갈등은 발생하기 때문에 일명 '끊기신공', 그러니까 다음화가 궁금해서 계속 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거기에 '아이돌'이라는 핵심 소재, '상태창' 등으로 표현되는 극 전반의 세팅값이자 서사에 개입되는 '게임'이라는 배경이자 소재, 빙의나 회귀라는 판타지 장르성, 주인공의 승승장구과 사이다성 전개를 통해 충족되는 만족감 등이 버무러져 제법 넓은 수요층을 감싸안고 있다.
나 역시도 앞서 언급한 특징들에 매료된 것 같다. 내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쨌든 사건은 해결되고, 과정 또한 개연성 있게 구성하여 납득이 가능하다는 점인데, 웹소설 또한 비슷한 문법을 갖고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데못죽의 주인공 박문대(이자 류건우)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했을 때 그에 대한 여론을 예상하고, 그에 대응하기 위해 움직인다. 때로 외부로부터 갈등이 발생해도 주인공은 늘 해결방안을 도출해낸다. 이는 스스로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타인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그 갈등의 성격이나 모양새는 제각기여서 2-3회, 혹은 10-15회 단위로 패턴이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독자는 크게 지루함을 느끼진 않는다.
여기서 디테일의 힘이 발휘된다. '아이돌'이란 소재는, 일일드라마의 '재벌'처럼, 어울리지 않는 액세서리로 남아 자칫 애매하게 쓰이다 버려질 수 있고, 실제로 꽤 많은 콘텐츠에서 그런 누를 범했다고 생각한다. 빠순이이자 돌덕의 세계는 생각보다 심오하다.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하지 못하는 면면이 있고, 심지어 이는 소속에 따라 달리 나타나기도 하기에, 쉽게 다루자고 하면 공감을 전혀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못죽에서는 프듀2 이후 격변한 팬덤문화와 엔터업계에 대해 마치 당사자성을 가진 듯 생생하게 묘사하는 디테일이 있어 놀랄 수밖에 없다. 더욱 경악하게 되는 건, 일종의 완벽 버전의 if를 그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단순하게는 그때 OO이는 왜 그랬을까, 당연히 ㅁㅁ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에서부터, ☆☆이가 □□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크고 넓은 방향성까지 끌어안아 데못죽이라는 서사 안에서 실현시키고 있다는 것.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된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주인공 박문대는 '일반적으로', '상식적으로', 그리고 '이상적으로' 대중이 기대할 법한 행동을 하지만, 여론의 방향성은 A가 아닌 A'로 튄다. 그러나 여기까지 예상한 박문대는 B'로 대응하고, 그러한 갈등은 결국 C로 통합하여 해결된다. 하지만 B'로 대응했을 때 여론은 C'로 튈 수도 있다. A'로 튈만큼의 악의만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통제 가능한 서사 내에서 주인공이 늘 타개해나갈 것임을 알고 있다. 다만,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 B'의 실제 생김새를 궁금해할 수는 있다. 그렇기에 디테일이 중요한데, 가끔은 B'로 대응하기 위해 A'가 등장하는 것 같다는 부담감도 지우기는 어렵다. 주인공 혹은 극 중 지략가의 두뇌는 작가의 두뇌를 넘어설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 (당연히 데못죽 작가의 두뇌는 뛰어나다, 내가 넘어설 수 없게)
한편 서사의 동력 부분에서 아쉽다고 느꼈던 부분이 있다. 제목에서처럼 주인공에게는 ~하지 않으면 죽음이라는 미션이자 고난이 단계별로 주어진다. 그러나 박문대의 껍데기를 한 화자의 진짜 자아, 류건우가 '죽고싶지 않다'라는 것이 다소 평이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사람이면 당연히 죽고싶지 않잖아, 정도로. 도입부에서 류건우의 삶은 그다지 긍정적인 요소가 없었다. 그렇기에 박문대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을때(?) 거창한 반항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본래 성격이 덤덤한 면도 있겠지만... 그 모든 면을 종합해 보았을 때, '죽지 않기 위해', (스스로 생각했을 때) '별 걸 다 하는' 모습이 와닿지는 않았다. 삶과 죽음은 사실 어떤 서사에서건 가장 강력한 동력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간절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캐릭터의 성격이든 내부적으로 쌓아온 배경이든 설명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은데 이건 내가 극단적으로 생각했을지도... 완결까지 읽고 나면 납득이 갈지도...
사실 1부가 끝나고 대체 이후의 이야기는 뭐에 대한 것이길래 이토록 많이 남았지 싶어 서치를 해보았는데, 최대한 상세 스포를 피하려고 하다보니 잘 이해는 안 되지만 생각보다 더 크고 고약한 세계관인 것 같았다. 아직까지는 큰 스트레스나 부담 없이 기분 좋게 서사를 따라가고 있지만 (앞서 말했듯 완벽 버전의 if가 이어지기 때문에), 어느 시점엔 아쉬운 점을 해결하기에 앞서 하차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웹소설과 카카오페이지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 알게 되는 것들도 흥미롭고, 데못죽 자체도 재미있기에 2025년 2-3월의 나는 여기에 이토록 몰입했다는 것을 기록하는 차원에서 남겨본다. 여전히 덕질을 할 에너지가 남아있다는 게 기특하기도 하고. 앞으로도 이런 재미난 일들이 많이 많이 생겼으면...! 나의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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