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나’를 ‘나’로 만드는가
유명한 철학적 난제 중 하나로 ‘테세우스의 배’에 관한 담론이 있다. 테세우스*의 배가 너무 낡아 모든 부품을 새로 교체하게 된다면 그 배는 원래의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배가 되는 것인가. 한발 더 나아가 교체된 낡은 부품을 다시 조립해 새로 배를 만든다면 두 배중 과연 진짜 테세우스의 배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말이다. 질문을 좀더 확장하여 내가 다른사람의 과거를 송두리째 가져와 그 사람으로서 살게 된다면 ‘나’는 여전히 ‘나’라고 할 수 있을까.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한 남자>의 주인공이자 화자, 변호사 기도 아키라는 과거 의뢰인이었던 리에라는 여자로부터 이상한 의뢰를 받게 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남편이었던 다니구치 다이스케의 정체를 조사해 달라는 것. 그녀의 남편 다니구치 다이스케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해 남편의 장례를 치르려는데 가족과 연을 끊고 살아 이제껏 만나지 못했던 남편의 형으로부터 지금 장례를 치르는 죽은 이는 그의 동생인 ‘다니구치 다이스케’가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털어놓았던 과거, 가족과의 불화와 그로 인해 연을 끊고 나왔던 모든 사연은 분명 ‘다니구치 다이스케’가 ‘맞으나’ 정작 죽은 남편은 ‘다니구치 다이스케’가 ‘아니’라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리에는 과연 내 남편은 누구인가, 왜 다니구치 다이스케라는 다른 사람의 과거를 훔쳐 그인 양 살아간 것인가, 그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변호사 기도에게 찾아온 것이다.
기도는 금세 이 기묘한 사연에 빠져들게 된다. 다니구치 다이스케였으나 다니구치 다이스케가 아니었던 한 남자의 과거를 조사하며 일본에서 나고 자라 ‘일본인’으로 자랐지만 뿌리는 조선인 ‘재일 조선인’인 자신의 불편한 정체성에 대해서도 생각이 깊어진다. 소설은 이처럼 두 갈래의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나는 다른 사람의 과거를 송두리째 가져와 그 사람으로 살아간 한 남자(다니구치 다이스케)의 진짜 정체를 찾아가는 과정, 또 하나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한 남자(기도)의 이야기.
‘다른 사람의 인생을 훔쳐 산다’는 소재만큼 구미가 당기고 뒷내용이 궁금한 소재가 또 있을까. 아마 그래서 여러 소설이나 영화에서 종종 활용되는 것이리라. 당장은 소설 (드라마 <안나>의 원작이기도 한)<친밀한 이방인>과 <화차>가 떠오르고 영화 <태양은 가득히>와 <리플리>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각잡고 찾는다면 훨씬 더 많은 소설과 드라마 또는 영화가 있을 것이다. 왜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 흥미가 있을까. 단순하게는 위태로운 거짓말이 주는 긴장감과 정체를 숨긴 이의 진실을 찾아가는 미스터리로서의 재미가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리셋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나 아닌 다른사람(혹은 완전히 새로운 나)으로 살아 보고 싶은 욕구가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기 때문 아닐까 싶다. 그런 심리를 반영한 듯 소설 <한 남자>에서도 ‘기도’가 ‘다니구치 다이스케’ 행세를 하며 묘한 해방감을 느끼는 장면도 나온다.
소설이 좋았던 것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훔쳐 산다’는 소재가 주는 여러가지 흥미 요소를 모두 만족시킨 데 에 있다. 사실 기도가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할 때마다 다니구치 다이스케의 정체를 찾는 것을 적당히 뭉개고(예를 들어 다니구치 다이스케의 정체를 찾아 열심히 헤매었지만 그는 결국 신기루 같은 존재였고 우리의 정체성 역시 우리가 정의 내리기 나름이지 정해진 것은 없다는 식의 열린 결말) 넘어가겠거니 예상했는데 그런 예상과는 달리 소설은 꽤 충실하게 다니구치 다이스케의 정체를 추적하고 밝혀낸다. 그 과정이 흥미로울 뿐 아니라 모든 의문들에 납득 가능한 동기를 가지고 있고 거기에 기도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던지는 질문들이 묵직하여 여러가지로 아주 짜임이 좋은 소설을 읽은 기분이었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모든 부품을 교체한 배와 원래의 낡은 부품을 재조립해 만든 배 중 과연 진짜 ‘테세우스의 배’는 무엇일까. 다니구치 다이스케의 과거를 모두 가져와 그로 살아간 한 남자는 다니구치 다이스케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인물일까. 다른 사람의 과거를 송두리째 훔쳐온다고 현재 나의 감정과 생각, 앞으로 겪을 경험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점이 아닌 선이므로 과거를 가져온다면 현재와 미래 역시 과거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는 반박이 동시에 떠오른다. 무엇이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일까. 명쾌한 답을 내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정체성은 정의 내리기 나름이지 정해진 것은 없다는 식의 열린 결말로 적당히 뭉개며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테세우스: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며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의 배: 테세우스의 전설에 따르면, 테세우스는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후 미노스 왕으로부터 아테네의 아이들을 구출하여 델로스로 가는 배를 타고 탈출하였다. 매년 아테네인들은 이 전설 아폴로를 기리기 위해 델로스로 순례하는 배를 타고 이 테세우스의 전설을 기념했다. 그런데 고대의 철학자들은 "수 세기가 지나 테세우스의 배의 모든 부분이 교체된다면 그 시점의 배는 원래 배와 여전히 같은 배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출처: https://ko.m.wikipedia.org/wiki/테세우스의_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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