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의 첫걸음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질문은 거창하지만 이번에도 사실 아기 첫걸음마 이야기(…)
흔히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을 지금의 인간으로 만들어 준 것이 무엇인가. 다른 수많은 동물들에게선 나타나지 않은 복잡하고도 정교한 사회 시스템과 이토록 찬란한 문명(이토록 구태의연한 수식)의 시초, 인류가 수세기에 걸쳐 이 만큼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근원, 그것은 역시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양손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유롭게 양손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건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는 그 지점 바로 직립보행, 아기가 그 직립보행을 하기까지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그리고 18개월에 들어선 2024년 1월에야 드디어 아기가 두 다리로, 두 발로 스스로 걷게 되었다.
대개의 아기들이 대략 돌 무렵 걷는다고 하니 무려 6개월이 늦은 것이다. 아기의 성장에서 6개월이란 얼마나 긴 시간인지. 걸음마를 해야 하는 마지노선이라고 하는 시기에 다다를 때까지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르겠다. 불과 1년전 올해의 결심으로 ‘아기의 성장을 의심하지 말고 아기를 믿고 기다려 주자(1년 전 뉴스레터 참고)’고 했던 다짐이 무색하게 매일매일 포털사이트에 ‘아기 걸음마 언제까지’, ‘아기 대근육 늦으면’ 따위를 검색하며 아기의 성장에 대해 불안해했었다. 지혜로운 양육자가 되기란 쉽지 않다. 아기의 성장을 섣불리 의심하고 조바심을 내어서도 안되겠지만 각 시기별로 그때에 알맞은 발달과정이라는 것이 있는데 마냥 손놓고 기다리는 것 역시 양육자의 의무를 져버리는 느낌이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무척 버거웠다. 결국 균형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불안해하기 일쑤였지만.
어쩌면 ‘아기를 믿고 기다려주자’는 전언 같은 다짐은 너무 추상적이고 고차원적이라 지키기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하여 올해는 좀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침을 세웠다. 막상 글로 옮기자니 너무 시시하고 당연한 말이지만 적어보자면 이렇다.
1. 아기에게 화내지 않기: 갑자기 드러누워 떼를 쓰고 고집을 부리는 아기에게 화가 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화가 난다고 그 화를 다 내버리면 한순간의 후련함은 있을지언정 찜찜함은 며칠을 간다. 심지어 내가 화를 낸다고 울음을 그치거나 떼를 안 쓰는것도 아니다. 즉 하나를 취하고 여럿을 내어놓는 셈이니 계산적으로 따저봐도 아기에게 화내는 게 이로울 건 없다. 너무 화가 날 때는 꾹 참고 소파에서 팔짱을 낀 채 아기와 거리를 둘 것.
2. 불안감과 걱정을 전이시키지 않기: 믿음이라는 건 충분한 경험에서 우러나온다는 생각이 든다. 첫 아이를 키우는 나로서는 불안함과 걱정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불안감과 걱정이 아기에게까지 느껴진다면 그건 악순환의 시작인 것 같다. 아기를 볼 때 만큼은 그 감정을 모두 접어두고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대할 것.
3. 아기가 약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보통은 내 일상과 생활패턴을 전적으로 아기에게 맞추니 아기가 약자라는 사실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오히려 내가 약자 같다는 생각만 든다.) 그렇지만 아기는 아직 스스로를 충분히 대변할 수 없는 약자이다. 이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아기에게 화를 내거나 무섭게 대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4. 스스로를 잘 챙기기: 스스로를 잘 챙기는 일이야말로 육아뿐 아니라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제까지 힘든 상황에 처할 때마다 그걸 핑계로 스스로를 내버려 둔 적이 많았다. 그러고 나면 꼭 시간이 흘러 그때 그러지 말 걸 하고 후회하곤 했다.
이 네 가지 규칙만 잘 지켜도 올해는 만족스러운 육아를 했다고, 꽤 괜찮은 엄마었다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힘들고 괴로울 때 자신을 놓아버리고 방치하기가 쉬운데 올해는 부디 아무리 힘들고 귀찮더라도 스스로를 잘 챙기고 가꾸어 보겠다고, 거창한 게 아니라 밥을 잘 챙겨먹고 옷을 잘 꾸려입고 중간중간 웃을 수 있는 순간도 많이 만들어 보겠다고 작은 결심을 해 본다.
올해가 시작된 지 아직 채 한달도 지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아기의 첫 걸음마는 아마 연말에 이르러서도 올 한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자리매김할 것만 같다. 이처럼 기적적이고 뭉클한 순간을 연초에 맞았으니 이 또한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2024년의 첫걸음과 함께 아기가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 걸맞게 훌쩍 성장해 가는 모습을 잘 지켜보고 응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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