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비움, 다짐
2024년 새해 첫 등산 코스는 관악산이었다. 새해 마음도 다잡고, 내 몸의 상태도 체크할겸 산에 올랐다. 산이라는 곳은 참 솔직한 장소인 것 같다. 산은 못난 모습과 거친 모습, 부드러운 모습, 편안한 모습 등등 자기 얼굴을 꾸밈없이 드러내 보이니까 말이다. 산이라는 장소는 세상의 리듬과 거리두기가 가능한 유일한 도심 속 휴식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서울 도심에 공원이 많지는 않지만, 그 대신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큰 축복이 아닐까. 빡빡한 도시 생활에서 스위치를 끄고 도망가 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산에 가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산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나를 객관화 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점점 위로 올라갈 수록 내가 발 딛고 살아왔던 것들은 아주 작은 점들처럼 작아지고, 그 안에서 아등바등하는 삶으로부터 나 자신을 측은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마치 신처럼. 내가 나를 그저 어여삐 바라본다.
산은 한편으로 나를 시험해보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나약해졌는지, 게으르게 살아왔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니까. 산은 늘 품어주는 엄마 같은 존재는 아니다. 거칠게 나를 대하기도 하고, 무심하게 대한다. 너는 너, 나는 나.
언제나 그렇듯 모든 산행은 처음이 힘들고, 내려올 때가 힘들다. 처음은 산에 나를 맞추느라 이전 것을 비우는데 힘이 많이 들고, 하산할 때는 정상에 올라오기까지 버텨낸 내 노력들을 내려놓느라 힘들다. 그래서 비움과 포기는 다른가 보다. 포기는 쉽지만, 비우는 것은 쉽지 않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것은 끊임없는 비움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우고 오면, 다시 삶에서 채울 자리가 생긴다. 그리고 채움이 넘치면 비우기 위해 산을 오른다.
올해도 삶에서 넘어야 할 여러 고비들이 예고되어 있다. 인지하고 있는 고비도 있고, 내가 인지하지 못한 것들도 있을 것이다. 최소한 지금 내가 인지하고 있는 것에 한해서는 준비에 게으름이 없어야 할 것이다. 안으로나 밖으로나, 공부하는 사람으로서나, 엄마로서나, 배우자로서나, 딸로서나, 며느리로서나 기타 등등 수많은 나의 자리에서 묵묵히 잘 해나가길 바랄뿐이다. 그리고 올해는 작은 일과 큰 일을 분간할 수 있는 지혜가 더 생겨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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