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지 않을 유토피아를 꿈꾸다

   매년 반복되는 일상과 인생이지만 1월은 왠지 모르게 특별하게 느껴지는 달이다. 로마력의 새해가 시작되는 첫 달, 나에게는 내 생일이 있지만 초중고대 시절에는 늘 방학이다 보니 제대로 생일파티라거나 누군가의 서프라이즈 같은 건 단 한 번도 없었던 달(물론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그런 건 없지만), 그리고 지금 하는 직무를 시작하고 나서는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 그렇지만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첫 번째 달이라는 상징성만큼은 이 세상 누구에게나 예외 없다. 그러니 이 뜻깊은 2024년 첫 뉴스레터에 무슨 글을 쓰면 좋을까, 혹은 나는 무슨 글을 쓰고 싶은 것일까 꽤나 고민했는데, 1년, 5년, 10년 전의 나에게 없다가 혹은 몰랐다가 2024년인 지금 생긴 것에 대해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단 하나만 뽑으라면 부동산, 자가(自家)에 대한 관심이 아닐까 싶다. 이젠 내 나이 또래들이 자가를 소유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잇대에 도달했으니 말이다. 또한 나 역시 현실적으로 검토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니 이만큼 나 스스로 시간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은 또 없을 듯싶다. 때마침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감상했기에 더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맞물려 짧은 글을 남겨볼까 한다. 영화적인 재미나 메시지에 대한 리뷰보다는 아파트를 욕망하는 한국인 1로써의 감회가 더 진하게 섞였지만.

 한국인들의 욕망과 심리를 아파트만큼 잘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또 있을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세상이 지진으로 무너진 상황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서울의 한 낡은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지극히 디스토피아적인 상황을 유토피아라고 묘사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재난영화, 디스토피아 영화의 볼거리보다는 극한 상황에 몰린 사람들의 생존 투쟁과 갈등을 통하여 아파트를 둘러싼 현대 한국인들의 욕망, 그리고 아이러니에 대한 해석에 좀 더 무게감이 있다. 박찬욱 감독의 연출부 출신이라는 젊은 81년생 감독 엄태화의 꼼꼼한 복선과 상징 등에 대한 연출,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과장하지 않는 연기 및 대사 스타일도 돋보인다. 한국영화의 고질병으로 지적되어 온 뻔한 신파나 오글거리는 개그 대사 없이 인물 간의 관계도 깔끔하여 대종상 최우수작품상 수상이 납득이 간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제목부터 이병헌이 분한 주인공 김영탁의 비밀에 대한 반전까지, 크고 작은 아이러니한 설정을 통해 씁쓸한 사유를 불러온다. 세상이 무너졌는데 우리 아파트만 무사한 극한 상황 속에서 누가 살아남아야 할 것이냐에 대한 투쟁을 두고 대립하는 사람들. 영화 속 황궁아파트는 이름은 황궁이지만 정작 고급 아파트는커녕 요즘 서울 시내에서는 사라져가는 낡은 복도식 아파트라는 배경부터 아이러니의 시작이다.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자가인지 전세인지까지 따져가며 우리 편과 우리 편 아닌 타인을 색출해내려 하지만 한편으로는 본래 황궁아파트보다 잘 살던 다른 아파트 주민들이 살려달라며 굽신거리는 모습에 통쾌함을 느끼며 우리 아닌 공동의 적의 존재를 의식하게 된다. 집단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외부에 공동의 적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던가. 비록 무너진 콘크리트일지언정 황궁아파트에서는 내부인들끼리 그 안에 유토피아를 건설한다. 각자의 재능을 살려 협업하되 대신 경쟁이나 승자독식이 아니라 일한 만큼 차등하여 배분하고, 그리하여 소외받는 자가 없도록.

 그러나 가짜 유토피아는 콘크리트처럼 단단할 수 없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했던 공산주의의 실패를 쏙 빼닮은 가짜 유토피아는 결국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몰락하게 된다.외부인을 바퀴벌레라 부르며 마치 벌레를 죽이듯이 아파트의 원주민이 아닌 사람들을 때려잡던 아파트 대표 김영탁이야말로 실은 원래 집주인을 죽이고 주인인 척 눌러앉은 외부인 중의 외부인이었다는 반전이 밝혀지며 콘크리트는 무너지고 아이러니가 쉴 틈 없이 이어진다.  가짜 김영탁은 진짜 김영탁에게 부동산 사기를 당한 피해자였으나 진짜 김영탁은 가해자 주제에 뻔뻔하게 “내 집에서 나가”라며 다분히 ‘집’을 의식해서 연출된 대사를 던지고(개인적으로는 너무 의식한 게 보여서 살짝 민망했던), 돈도 날리고 가족에게도 버림받고 살인까지 저지른 가짜 김영탁은 마침 온 세상에 지진이 난 덕분에 낯선 아파트에서 대표까지 하며 벼랑 끝에서 그야말로 인생역전을 이룬다. 가장 디스토피아적인 때가 역으로 누군가에게는 유토피아가 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함은 현실에서도 대입할 수 있는 상황이 많지 않은가.

하지만 타인과 사는 세상에서야 완벽한 유토피아가 없다 한들, 그래도 내 인생에서 서울에 작게나마 내 한 몸 편히 쉴 수 있는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할 수 있다면 혼자서만큼은 그곳이 유토피아가 아닐까. 언젠가 작아도 온전히 나만의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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