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는 사람의 인생은 언제나 잔잔하게 불행하다 - [힘든 일을 먼저 하라]



 1. 어제까지만 해도 토요일인 오늘 출근해서 할 일의 목록을 만들어 두고 내일 아침에 8시 반까지 병원에 갔다가 9시 반까지 출근해서 연말정산 마무리, 고객사에서 보내준 미지급금 확인, 또 다른 고객사의 고정자산 리스트 업데이트 순으로 차례대로 일을 해나가야지. 6시간~7시간 정도 걸릴거고, 점심만 회사 근처에서 먹고 열심히 일한 후 저녁은 집에와서 먹도록 하자는 계획은 오늘 눈을 뜨면서 모두 어그러졌다. 자기 전 갑자기 덮쳐온 생각은 아 내일 회사 가기 싫은데, 토요일인데 일해야 하다니, 병원에 사람도 많을 텐데, 그래서 일찍 일어나서 가자고 생각한 거지만 토요일인데 일찍 일어나서 움직이는거 정말 싫다 였다. 7시 30분에 맞춰 놓은 알람이 울렸지만 이불 속에서 계속해서 내 자신과 타협하고 달래고 다시 꾸짖었다가 화해했다가 하는 바람에 어느덧 시간은 8시 30분이 되었고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9시반. 대기 인원 30명. .

그 때 부터였다. 감기로 기침이 심하긴 했지만 일을 못할 수준은 아니었고 병원에 갔다가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는 상태였지만, 갑자기 나 스스로 오늘은 감기가 심해 일을 할 수 없어. 대기 인원 30명이면 적어도 1시간 반은 기다려야 할 거고 그러면 진료는 11시~12시에 끝나겠지. 그 때 이른 점심을 먹고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한다? 사실 그 시간 만으로도 충분했지만 갑자기 또 찾아온 이상한 생각은 나는 분명히 9시 반에 출근해서 일하기로 마음먹었는데 벌써 1시간이나 지났잖아? 이런 기분으로는 일 못해. 그리고 오늘은 쉬고 싶다구! 아직 일요일이 남았잖아? 모든 일을 월요일까지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요일! 그 하루가 남았는데 뭐. 내일의 나에게 일을 맡기고 오늘은 쉬자. 라는 원래의 내 계획에는 전혀 맞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2. 무임승차 뉴스레터의 마감일은 매월 15일과 말일이다. 15일에는 한 달의 절반을 지내면서 경험한 것들과 앞으로 경험해 볼 것들을 자유롭게 소개하고 매월 말일은 그 중 하나를 긴 글로 풀어쓰는 형식이다. 친구들과 함께 서로를 북돋으며 뉴스레터를 써온지 벌써 1년이 넘었고 시작한 프로젝트는 많지만 끝을 본 프로젝트는 없네 라며 자조와 웃음이 섞인 대화를 나누던 우리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포기하지 않고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는 것이 대견 하고 대단하다. 1월~3월은 경험이란 단어가 무색할 만큼 직장에서 가장 바쁘고 정신 없고 다른 생각은 하려야 할 수 없는 시즌이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며 1월 뉴스레터도 벌써 미루다 겨우 써냈다. 그렇다면 덜 바쁠 때는 밀리지 않고 쓰느냐? 그것도 아니다. 누가 강제로 쓰게 한 것도 아니고 우리의 소중한 경험 들과 생각이 그저 휘발 되는 것이 아쉽고 아까워서 어떻게든 기록을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2월 15일 마감을 여전히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계속 마음에서는 아 써야 되는데.... 근데 뭐라고 쓰지..... 쓰기 싫다.... 근데 또 그냥 이번 호는 빠질게.... 하기엔 스스로에게도 부끄럽고 친구들에게도 부끄럽고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지난 1월 말 마감 후 부터 오늘까지 계속 되뇌었다. 


3. 작년 말 건강검진에서는 더 이상 무시하지 못할 결과가 나왔다. 살이 많이 쪘고 운동을 하나도 하지 않아서 몸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고 아직 고혈압이나 당뇨, 지방간으로 약을 먹거나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반드시 운동과 식단 조절을 통해 살을 빼고 뱃살을 줄여야 한다는 경고가 있었다. 이렇게 건강을 해칠 정도로 살이 찐 지는 10년 정도 된 것 같다. 대학 때는 나름 댄스 스포츠 동아리도 하고 문예단도 하고 헬스도 다니면서 여러가지로 몸을 움직일 일들이 많았다. 아주 날씬한 것은 아니더라도 지나치게 뚱뚱하거나 건강을 해칠 몸무게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취업과 백수를 반복하면서 점점 몸이 불어나기 시작하더니 이제 정말 심각할 정도까지 온 것이다. 정신과를 다니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도 매번 상담했지만 말로만 다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을 이제는 잘 안다. 넷플릭스와 핸드폰을 볼 시간에 헬스장에 내려가서 10분이라도 걷고 달리고 몸을 움직이는 것만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고 내일부터 라고 미루는 나 자신과 언젠가 부터 스스로 대화를 단절하고 있다. 


스콧 앨런 작가의 [힘든 일을 먼저 하라] 라는 책은 이런 상황에 있는 나에게 정말 필요한 책이었다. 지난 12월 2023년 올해의 베스트 짤에 선정된 이 책에서의 발췌문구는 그 동안 어영부영 유지해 오던 나의 생활과 삶에 작은 울림을 주었다. 그것이 아주 큰 울림이라서 갑자기 천지가 개벽하고 상전이 벽해하는 변화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다행히 근처 도서관에 이 책이 있었고 내 이름으로 한 번 빌려서 3주 동안 읽지 않고 있다가 누군가 대출예약을 신청하면 내가 또 못 빌릴까봐 동생이름으로 대출예약을 걸어 바로 동생 이름으로 빌려서 2주 동안 읽지 않고 2월 24일 반납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오늘 회사에 일하러 가지 않았으니 내일 일하러 가야 하고 그러면 오늘 뉴스레터를 써야하는데 2월 보름 동안 아무것도 한게 없으니 뭐에 대해 쓰지 라며 쇼파에 누워 한탄하고 있으니 동생이 당장 저 책이나 읽으라며 쏘아붙이곤 볼 일이 있어 나갔다. 아침부터 라떼 한 잔 밖에 먹지 않아서 배가 고파 뭐 좀 먹고 시작할까 싶은데 먹기 시작하면 또 유튜브를 볼 테고 그럼 오늘도 그른 하루를 보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안 좋아져서 일단 책이라도 좀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펼쳤고 한 장 한 장 읽다 보니 255페이지의 책을 한 번도 쉬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 나는 왜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가 

일을 미루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고 그것을 분류하고 다시 특성대로 나누어 보여준다. 매 챕터마다 멘토 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미루기에 대한 격언들(이라고 표현하니 너무 진부하지만) 은 챕터를 시작하는 데 제법 흥미를 끌 만하다. 

▶2부 - 힘든 일을 먼저 하는 22가지 무기 

1부에서 찾아낸 패턴과 공통점들을 하나하나 이겨낼 수 있는 방안을 때로는 순서대로 때로는 작은 것에서 부터 큰 것으로 또는 여러가지 방향에서 알려준다. 실제로 이 방법을 따라하면서 미루기를 해결해 볼 수 있는 실천책 같은 구성이다. 

▶3부 - 나를 망치는 최악의 습관에서 빠져나오기 

1부에서 찾은 문제점을 2부의 해결책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여러가지 부정적인 장애물들에 대해 설명하고, 그것을 하나하나 어떻게 제거해 나가야 하는지 설명한다. 

▶4부 - 일에서, 집에서, 인간관계에서 힘든 일을 하는 법 

각 분야에서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을 설정해 두고 힘든 일을 미루지 않는 실천법을 제시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아 뭐 좀 시켜먹을까, 저번에 보고 미뤄둔 넷플릭스 미드 슈츠를 좀 볼까, 핸드폰으로 커뮤니티나 좀 둘러볼까, 이것저것 충동적인 생각들이 침범해 와서 괴로웠지만 책을 읽는 동안 만이라도 조금만 참아보자. 1시간 반 남짓 되는 시간 동안만 참아보자는 결심으로 결국 책을 다 읽고 이렇게 뉴스레터를 쓰고 있어 다행이다. 


힘든 일을 미루는 습관은 환상에서 시작된다. 당신이 미루고 있는 바로 그 일이 나중에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환상 말이다. 미루기로 하는 순간, 당신의 상상력은 미래로 가서 자기 자신을 미래에서 그 일을 완수할 행동대장으로 우상화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껏 인생에서 배워왔듯이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 책 163쪽.


책에 나오는 수많은 당신 중에 가장 내 마음에 꽂혔던 당신이다. 내일로, 월요일로, 다음주로, 다음달로 미루는 나의모습과 미래의 나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게 하는 나의 모습을 깔끔한 문장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대학 때 부터 하나둘 쌓여온 나의 미루기 습관은 내 삶을 너무 힘들게 하고 있다. 지난 8월 새로운 회사에 입사하면서 정신없이 적응하고 일하며 조금 나아졌나 했는데 너무 바쁘고 힘든 상황에 갑자기 덜컥 나타난 나의 미루기 습관에 겁이 났다. 힘든 일은 나중의 나중까지 미뤄두고 바빠 보이고 뭔가 있어 보이는 일들이지만 사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일들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게 된다. 


책 한 권 읽었다고 해서 내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으로 인해서 일단 뉴스레터를 미루지 않고 써냈으니 최소한 오늘을 그냥 유튜브나 보며 낭비하지는 않았구나 싶은 것이다. 한 순간의 판단으로 내일로 미루기는 했지만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회사에 출근해 계획된 일을 하고 그 일들 중에서도 힘든 일을 먼저 해낼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다짐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주었다. 남은 것은 운동이다. 정신과 담당 선생님도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셨다. 방향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내가 계획하고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방향의 행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계속해서 설명해 주셨다. 과자를 먹으며 미드 한 편을 보는대신 10분짜리 홈트 영상을 따라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결심과 에너지가 들고 하기 싫은지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지금 하자, 당장 하자, 나를 어르고 달래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나 자신만이 해 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매일매일 되새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있다. 알고는 있었지만 무시하고 있었던, 덮어 두었던 사실들을 정리하여 읽어 내는 행동이 그렇게 효과가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있다고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내일 당장 이 책을 구매해서 실천책 으로 삼아 책 속에 나오는 해결 방법들을 하나하나 따라해 볼 생각이다. 잔잔하게 불행했던 내 인생을 더 이상은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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