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가장 재미있었던 추리소설 <유다의 별>

 유다의 별 1권 후기 인터뷰에서 작가는 ‘내가 범인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하는 생각을 출발점으로 트릭을 설정한다고 밝히면서, 걷다가도 ‘언젠가 내가 쓸모없게 되었을 때 아내가 나를 완전범죄로 죽이려면 어떤 방법을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길을 걷다가도 이런 생각을 할 정도니 완벽한 살인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작가의 취미 중 하나라고 해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을까. 

아주 재미있게 읽은 책이지만 우습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이런 악취미에 가까운 작가의 습관(?)이다. 이유는 나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종종 완벽한 살인 방법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당연히 실제로 저지를 것은 아니니(!) 정교하진 않다. 그저 추리소설과 범죄유튜브로 주워들은 잡다한 지식들로 밀실살인이니 시신없는 살인이니 하는 것들 혹은 직접증거 없는 살인 등등을 얼기설기 꿰어 완성하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이 아이디어로 나도 추리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과감한 망상(말 그대로 망상)을 하며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어서 작가의 저 인터뷰가 유독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서론이 무척 길었는데 요지는 ‘유다의 별’이 바로 이런 작가의 평소 습관으로부터 다져진 추리내공, 예컨대 길을 걷다가도 완전범죄를 생각하곤 하는 그런 작가의 상상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소설 같다는 것이다. 스포일러가 될까 싶어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겠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유례없던 사이비 종교 사건 ‘백백교 사건’을 토대로 뻗어나가는 여러가지 소설의 가정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백백교가 와해된 뒤 약 한 세기가 흐른 현재, 백백교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살인사건이 잇달아 일어나고 그 살인사건의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는 물론 기발한 트릭들이 여러번 나타난다. 심지어 제시되는 몇몇 트릭은 틀린 추리의 결과로 사실상 소설에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님에도 그것이 지루하게 느껴지기보다는 미스터리를 증폭시키며 호기심을 유발한다. 다만 제시되는 트릭들이 모두 기가 막히게 기발하거나 뛰어난 것은 아니고 다소 허술하기도 하나 재미라는 면을 생각했을 때 그쯤은 충분히 감안할 수 있다. 더구나 정통추리물이 약한 국내 추리소설계 전반을 떠올린다면 더더욱.

누가 봐도 사기꾼 같은 교주와 얼토당토 않는 교리에 매몰되어 전재산은 물론 자신의 몸과 마음까지 다 바쳐가며 헌신하는 신도들의 괴이한 모습은 아무래도 흥미롭다. 사이비종교에 관한 다큐멘터리나 실체고발류의 영상이 인기나 화제를 끄는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일 터. 그런데 그런 재미있는(?) 사이비종교 사건이 일제강점기 때에도 있었다니 흥미를 끌 수밖에. 이처럼 다른 사족을 덧붙이지 않아도 사건 그 자체로 흥미로운 ‘백백교 사건’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졌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게 말이다. 실화가 흥미롭다고 그 실화를 기반으로 한 소설까지 재미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은 이 사건을 주제로 한 다른 소설(작품을 비하하는 것 같아 굳이 제목을 적진 않겠지만 검색하면 금방 나올 것이다)에서 이미 한차례 느낀 바 있다. 그래서 더욱 이 소설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모든 이야기가 마무리 되어갈 때쯤 또 한번의 강력한 한방이 있으니 책을 덮을 때까지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는 점 만큼은 보장한다.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가 도진기의 다른 소설에서도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캐릭터 구축이 항상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진구 시리즈’에서의 푼수 같은 여자친구 혜미 캐릭터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고진 시리즈’에 나오는 형사 한유현과 마담 류경아 캐릭터도 너무 올드하고 식상하다. 허술하고 의욕만 앞선 형사 한유현은 그 캐릭터를 강조하기 위해 억지스럽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부분이 있고 괴짜 변호사를 흠모하는 미녀 마담이라는 류경아의 설정 역시 너무 안이하게 느껴진다. 류경아의 경우 술집 마담이라는 설정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소설, 특히 장르소설 만큼은 재미있으면 어떤 불편한 설정도 웬만하면 용서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렇게 관대한 시선으로 보아도 캐릭터의 설정과 주고 받는 대화들이 너무 식상하면서도 촌스럽다. 그래도 소설이 재미있으니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나름대로 쉴드(?)를 쳐보자면 재미있는 장르소설을 지향하는 작가의 입장에서 가능한 시그니처가 될 만한 돋보이는 캐릭터를 구축하고 싶고 이를 위해서 다소 클리셰 같은 판에 박힌 캐릭터 요소를 차용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 그래도 요즘 세대의 눈에는 너무 올드하니 차기작에서는 개선이 있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은 있다.(ㅎㅎ)

아무튼 이러니 저러니 해도 도진기는 내가 꽤 좋아하는 작가이다. ‘추리소설은 어찌됐든 재미있어야 한다’는 작가의 지론이 일단 마음에 꼭 들고 판사라는 직업에서 도움이 되었을 걸로 추측되는 수사과정, 재판과정, 그리고 판결의 디테일을 보는 재미도 있다. 이제껏 작가의 다른 소설을 보면서는 재미는 있지만 트릭이나 추리의 요소가 재미에 한끝 못미쳐 아쉽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은데 유다의 별 만큼은 트릭과 추리의 면에서도 꽉꽉 채운 재미를 선사해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디에선가 작가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글을 보았는데 부디 작품활동에 영향을 끼칠 만큼은 아니기를, 그래서 앞으로도 작가의 많은 글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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