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 연휴에 쓰는 파묘 후기, 한국인이지만 조금만 아쉬워해도 되나요?
OTT에 밀리며 범죄도시나 서울의 봄 정도 외에는 마땅한 흥행도 화제도 말라붙어가던 한국 영확계에 나타난 춤판. 한국적인 무속신앙와 오컬트 그리고 한민족의DNA에 가장 강하게 남아 있을 일제 강점기를 테마로 하는 <파묘>이야기다. 지금 제일 핫한 영화를 이번 뉴스레터에 쓴다니 어쩐지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마침 삼일절 연휴와 이번 호 마감이 겹쳤으니 딱 맞는 소재라 생각하여 간단한 감상을 싣기로 했다, 는건 포장질이고 그냥 제일 최근에 접한 문화생활이 파묘였을 뿐이다.
일단 전반부의 긴장감은 엄청나다. 이도현은 솔직히 모르는 남배우고 전반부엔 김고은 옆에서 그냥 서 있는 역할이라 병풍처럼 묻혀 가면서 주연에 껴 있나 싶어서 거슬렸지만 워낙 연기 잘하기로는 믿고 보는 나머지 3인방 주연 덕분에 연기 구멍이 없었고, 이도현도 후반부 꽤나 중요한 포지션으로 바뀐 후에는 인상적이었다. 그만큼 전반부는 탄탄한 연기력과 흡입력이 돋보여서 무속신앙, 무당, 저주 등의 소재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한번쯤 봐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 특히 지금 문 밖에서 문을 열라며 나를 부르는 사람과 전화로 나를 말리는 사람 중 진짜는 누구인가? 이런 식의 인터넷에서 흔히 접해 보았을 짧지만 소름 돋는 괴담을 눈 앞에 그대로 재현한 듯한 호텔방 장면 그리고 그 이후 귀신이 들린 상주가 냉장고에서 물을 미친 듯이 마시며 기괴한 일본어를 내뱉고 목이 180도 꺾이는 장면이 이 영화에서 제일 돋보이는 부분으로 꼽고 싶다. 시각적인 자극을 위해 끔찍한 고어나 귀신을 등장시키지 않아도 공포와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연출이다.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영화가 이 장면 이전과 이후로 다른 영화처럼 분위기가 바뀐다고 지적한다.
한 집안에서 대대손손 내려오는 저주의 비밀 그리고 한풀이로 흘러가지 않을까 했던 도입부와 정반대로 후반부는 노골적으로 반일로 주제를 옮겨간다. 이곳이 ‘우리 그리고 내 손주가 밟고 있는 땅’이라며 일본 다이묘의 유령인 거대한 도깨비를 찾아가서 퇴마하자고 지관 최민식의 입을 빌려 말할 때, <명량> 1편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던 작위적인 대사 “후손들은 우리가 고생한 걸 알랑가”와 겹쳐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중간쯤 이미 모습이 공개되어 버리는 거대한 일본 오니(도깨비)가 그들이 맞서 싸울 빌런임을 알게 되는 순간, 영화는 기괴하고 음산한 오컬트가 아닌 일종의 괴수영화로 탈바꿈한다. 다만 그 빌런의 정체와 그를 무찌르는 방식 등에서 한국의 전통 신앙과 한일 양국의 역사적 관계 등이 얽히며 흔한 괴수영화와는 차별화되지만.
비록 후반부는 아쉬울지언정, 가장 첫 장면에서 김고은이 일본인으로 오해당하는 기내 장면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크고 작은 복선과 장치가 잘 짜여 있다. 또한 장의사 유해진 캐릭터는 얼핏 보면 혼령이나 무속신앙과 관계없어 보이지만 알고보면 잘 배치한 캐릭터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예를 들어 일제가 한국의 기를 봉인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 박고 다녔다는 쇠말뚝에 대해 장의사가 그거 루머라고 밝혀진 지가 언제냐며 반박하는 장면 등을 통해 관객 대신 관객이 가질 만한 의문과 반박을 제기하며 영화가 과하게 신파나 촌스러운 국뽕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아 준다.
그리고 실은 개인적으로 이 영화 자체에 대한 감상보다는 영화에 대한 감상을 두고 일어나는 갑론을박이 더 시사점이 많았다. 영화 감상에 대한 감상이랄까? 대중문화 컨텐츠에 대해 각자가 느끼는 감상과 해석은 그야말로 본인의 몫이다. 똑 같은 내용을 보고 각자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것도 대중문화 감상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재미일 것이다. 연출자의 의도는 어차피 본인이 아닌 이상 아무도 모르기에, 하나의 뿌리(본작)에서 대중들의 감상과 해석이 파생되면서 수없이 많은 줄기가 뻗고 자라며 창작물의 세계가 생명력을 가지고 성장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야기의 재생산에 있어 특정한 반응과 방향성이 암묵적으로 통일되어야 하는 경우도 존재하는 것일까. 영화적인 연출, 스토리 등의 허술함과 아쉬움을 지적해도 그건 해석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원래 아는 만큼 보여서, 혹은 매국노이자 일빠여서(!) 그렇다며 타인을 몰아붙이는 장면을 대형 커뮤니티 등지에서 목격하는 중이다. 영화에 대한 주관적인 감상평마저 ‘네가 애국하지 않는 자여서 그렇다, 일빠여서 불편한 것이다’라고 온라인에서 죽창을 휘두를 수 있게 누가 그 죽창을 쥐어 준 것인가. 논리적으로 따지면 텅 비어 빈약하기 짝이 없지만 너무나 쉽게 내 편 니 편을 가르며 한 쪽이 다른 쪽에 일방적으로 악플과 조롱을 쏟아내도 암묵적으로 눈감아 줄 수 있는 도구. 한국인으로 태어났다는 공통점밖에는 없는 사람들끼리 애국이 자신들이 도덕적, 그리고 지적 우위를 멋대로 확보하며 타인을 조롱하기 위한 죽창으로 애국을 이용해도 되는 것인지는 정말 잘 모르겠다. 애국을 한낱 영화에 대한 감상을 핑계삼아 타인을 향한 악플과 조롱으로 사용하라고 조상들이 나라를 지킨 것은 아닐 텐데. 온라인에서 그 어떤 깊은 사유도 토론도 없이 흑백논리로 타인에게 ‘무지성’ 악플을 다는 것이 애국이라기엔 오히려 악플을 다는 행위가 더 국가의 품격을 해치고 있지 않을지? 악플을 써 놓고 애국을 방패로 내세울 시간에 현실에서 묵묵히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어떨까 싶지만 이미 어떤 사람들에게는 고작해야 영화 감상평조차 조롱하고 짓밟아야 할 ‘우리 아닌 남’이다. 최근 몇몇 대형 커뮤니티나 SNS등에서 파묘를 둘러싼 말다툼을 보면서, 그렇다면 나는 그 ‘우리’에 속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나의 사회적 평판과 인간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은 알량한 자존심은 적당히 타협하여 이렇게 말할 것이다. 후반부의 연출과 소재가 아쉬웠지만 충분히 재미있었고 특히 이도현의 병실에 찾아온 무당 중 한 명이 입은 패딩의 M로고를 나는 매의 눈으로 놓치지 않았다고 농담을 섞어 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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