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친자’가 되었읍니다.

 



오래 전 타이베이 여행에서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아마도 중정기념관 근처 공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중고생쯤 되어보이는 학생들이 단체로 모여 노래를 틀고 춤 연습을 열심히 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같은 반 학생들이 무언가 대회나 장기자랑 같은 걸 위해 연습하는 것 같았는데, 선선한 여름날 저녁 학생들이 모여 서툴게 춤 연습을 하는 그 모습이 마치 청춘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사실 이런 장면은 기억을 왜곡시키기 쉽다. 실제 내 중고등학생 시절을 돌이켜보면 수업이 끝나고 반친구들이 다 모이는 것 자체가 판타지일 뿐더러 만약 모인다고 했어도 춤연습이라니, 이 악물고 어떻게든 내뺐을 것이다. 아니다, 애초에 나 같은 찐따를 춤 연습에 불렀을 리 없다.(ㅠㅠ) 이처럼 딱히 아름답지 못한 청소년기를 보낸 탓에 청춘물을 보면 설레면서도 한켠으로는 삐딱한 마음이 들어 즐겨 보지는 않았었는데, 세월은 흐르고 뾰족한 마음 또한 조금은 뭉툭해진 덕인지 최근에는 굳이 내 과거와 비교하며 날을 세우기 보다는 ‘그래 저런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지’하며 대충 기억을 추억으로 미화시키는 편이다.

이번에도 서론이 길었다. 타이베이에서 학생들이 춤추는 모습을 그저 지나치지 못하고 청춘영의 한 장면처럼 느꼈던 것은 어쩌면 ‘청설’, ‘그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와 같은 대만의 청춘물이 국내에서 꽤 흥행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흥행의 정점(내맘대로 정점이라고 칭하겠다)에 있는 상견니, 바로 그 상견니를 드디어 보고 만 것이다. 그렇습니다. 저도 상친자가 되었읍니다.

2월28일자로 국내 모든 OTT서비스에서 상견니가 내려간다기에 ‘그동안 입소문으로만 들어왔던 상견니를 한번 보자’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켰는데 도저히 멈출 수가 없어서 아기 자는 동안 옆에서 몰래 스마트폰으로 밤새 보기까지 하면서 이틀만에 완주, 짧은 시간에 복습까지 완료했다. 무엇이 나를 상친자로 만들었는지, 그 이유로 사실 바로 떠오르는 것은 리쯔웨이의 얼굴이지만(ㅎㅎㅎ) 조금 깊이 생각하면 청춘의 싱그러움과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여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의 애달픔이나 열띤 기운과는 다른, 조심스럽게 마음을 간질이는 그 무언가에서 오는 싱그러운 설렘은 유독 동양적인 정서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이걸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를 붙여 ‘소나기 정서’라고 (내 마음대로)부르는데 서양에서 사랑이야기의 원류로 보통 ‘오만과 편견’ 또는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거론된다면 동양에서의 사랑이야기, 특히 청춘을 다룬 사랑이야기는 적든 크든 어느정도 ‘소나기’ 같은 정서와 감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헐리우드의 청춘물에서는 고등학생들이 파티에서 만나 여차하면 하룻밤 자기(!)까지도 단숨에 진행되지만 동양에서는 그렇지 않다. 교복을 입은 친구들이 서로의 얼굴을 훔쳐보며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보다가 손가락이 맞닿기라도 하면 화들짝 멀리 떨어지기까지, 잡을락 말락 그 두 손 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마음을 간질이는지 모르겠다. 상견니에서도 이렇게 마음을 간질이는 장면이 참 많다. 속도를 내는 스쿠터에서 관성의 법칙을 이기지 못하고 모쥔제의 어깨를 꽉잡는 천윈루(찐천윈루)의 두 손, 어른스러운 말을 내뱉는 천윈루(황위쉬안)를 다시 봤다는 듯이 새삼 경이롭게 바라보는 리쯔웨이의 표정, 잔디밭에 누워 잠든 천윈루(황위쉬안)를 빤히 바라보는 리쯔웨이의 얼굴, 그리고 빗속에서 활짝 웃는 천윈루(황위쉬안)를 보고 리쯔웨이가 마음을 깨닫는 장면까지, 이 모든 풋풋한 청춘의 싱그러움이 마음을 간질간질 건드리면서 뜨거운 한여름을 만들었다. 레코드점, 빙수집, 국수가게 같은 지나온 시절의 흔적들이 향수를 자극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아마 이런 청춘물로서의 매력이 상견니의 전부였다면 명작으로까지 회자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견니의 또 다른 매력은 회귀물로서의 빈 틈 없는 스토리라인에 있다. ‘방구석 1열’에서 변영주 감독은 상견니의 회귀장치를 통해 ‘내 선택은 나를 어떻게 구원하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사실 그정도로 거창하게까지 느껴지지는 않지만 ‘회귀’와 ‘빙의’를 이용한 스토리라인이 아주 탄탄하고 작품성을 높여 주는 것 만큼은 확실하다. 상견니의 주인공 황위쉬안과 리쯔웨이는 과거의 어떤 시점으로 돌아가 과거를 바꾸고 그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미래가 바뀌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이게 내가 변영주 감독의 감상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이유다.). 오히려 과거로의 회귀로 모든 사건의 전말을 깨닫고 마지막 기회를 통해 아예 ‘회귀를 하지 않는 선택’을 할 뿐이다. 그리고 이 선택이 모든 상친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이다. 왕취안성(리쯔웨이)은 2017년 비행기 사고로 죽고 2003년의 리쯔웨이 자기 자신으로 다시 돌아와 끔찍하게 힘든 재활치료를 견뎌야 할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2010년으로 회귀해 황위쉬안을 사랑하고, 황위쉬안은 회귀를 통해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 리쯔웨이를 만났지만 그와의 모든 추억이 사라질 걸 알면서도  마지막엔 결국 당초 리쯔웨이를 만날 수 있게 한 회귀장치인 카세트테이프를 없애버리고 만다. 수없이 많은 타임루프를 통해 한 사람만을 사랑하지만 결국 서로가 사랑한 소중한 시간이 모두 사라져버리는 결말은 마음에 애틋함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또 옆길로 새는 이야기이지만 이런 타임슬립 회귀물에서의 사랑이야기는 보통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끝나는 게 많은 것 같다. 영화 ‘나비효과’도 드라마 ‘나인’도 애니 ‘시간을 달리는 소녀’나 ‘너의 이름은’에서도 모두 그렇듯(이렇게 작품들을 언급하긴 했지만 기억이 정확한 것은 아니라서 틀릴 수도 있음)사랑하는 둘 사이의 관계는 가능성을 남겨놓은 채 열린 관계로 둘 지언정 전부 이루어지지 않고 끝나고 만다. 더 큰 비극을 막기 위해 나의 사랑과 나의 행복은 기꺼이 포기하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인데, 넓게 보았을 때 이것이 바로 변영주 감독이 말하는 구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더욱 사람들이 해피엔딩이 아닌 열린 결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 세계에 빠져드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렇고.

다행인 것은 나 같은 ‘상친자’가 많다는 점이다. 더구나 나는 상견니 막차에 탔기 때문에 아직 인터뷰, 쿠키영상, 그리고 깊이 있는 드라마 해석까지 즐길 거리가 많이 있다. 최근 일주일 동안 상견니를 찾아보며 잠에 들면서도 상견니 주인공들의 미래를 상상하며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모쥔제랑 천윈루랑 이루어지고 리쯔웨이랑 황위쉬안이 이루어지면 나이 차이는 나지만 같은 얼굴을 사랑하는 두 절친이 되는 건데 넷이 만나면 어떡하지 혼자서 그 고민 하고 있음) 이 오따꾸적 뻐렁치는 마음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은 빠져들 무언가가 있어 행복한 마음이다. (그리고 혹시 당신도 상친자라면 제게 연락주세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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