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 4탄, 약속된 카타르시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지불한 돈만큼의 기대값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확신은 굉장히 중요하다. 돈과 시간이라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한정된 자원으로 매번 도박을 할 수는 없기에, 어딜 가도 똑같은 맛과 퀄리티를 보장해 주는 유명한 프랜차이즈 식당과 카페 등의 가치가 그만큼 높은 것이다. 프차 식당을 두근두근대면서 기대하고 일부러 찾아가서 먹는 사람은 없겠지만 언제 어디서 눈에 띄어서 들어가도 최소한의 만족도를 보장해 준다. 우리는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일상에서 무수한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선택의 기회비용을 최소화하기에 딱 좋은 적당한 선택, 어느덧 4탄을 맞은 범죄도시 프랜차이즈에 대한 나의 기대값이 딱 그 정도라고 할까. 나의 두 시간과 영화 티켓 값에 대하여 통쾌한 액션과 그야말로 단순명쾌하기 그지없는 플롯으로 화답하여 약속된 도파민과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프렌차이즈 음식점이라도 지점 바이 지점이라는 말도 있듯이, 특정 지점이 더 맛있다거나 없다거나 특정 지점에 어떤 알바생이 실력이 좋다거나 불친절하다거나 하는 차이점도 결국 존재하기 마련이다. 날씨가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는 이맘때쯤 한국인들에게 찾아오는 영화로 자리를 잡은 범죄도시 시리즈 또한 프랜차이즈일지언정 시리즈마다 각각의 장단점이 없을 수 없다. 먼저 4탄에서 확연히 돋보이는 문제점은 영화 중간 즈음에 느껴지는연출 상의 지루함이다. 나는 4탄에서 감독이 바뀌었다는 것을 모르고 보러 갔음에도(사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그냥 보러 갔다) 영화 중간에 지루해지는 연출을 느꼈는데 이미 많은 영화팬들이 지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사람 생각하는 건 다 비슷하구나 느꼈고 이는 감독이 다음 번 시리즈를 연출할 때 심각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부분인 듯 싶다.
가장 중요한 클라이막스, 마석두 형사와 빌런들의 대결은 이번에는 이륙 직전 비행기라는 굉장히 제한된 상황에서 벌어진다. 비행기는 탑승 시 신체와 소지품을 모두 검사받아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칼 등 도구 없이 싸우게 되는 극한상황이 자연스럽게 연출되고 여기에서 마두석 형사와 빌런들이 기내 산소호흡용 마스크 그리고 승객들에게 서빙하기 위한 커트러리 등을 이용하여 싸우는 장면은 스케일이 크지는 않지만 재미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평생 가도 겪어보기 어려운 칼, 쇠붙이, 손도끼로 살벌하게 싸우는 것보다야 우리도 익히 아는 공간과 소품을 최대한 활용하여 싸우는 것이 일상 공간에서 벌어지는 비일상성이 한껏 강조되어 더욱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러나 앞서 말한 아쉬운 전개들 때문에 이 하나의 클라이막스를 위한 빌드업이 상당히 부실하고 아쉽게 느껴진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공항에도 상주하는 보안요원과 경찰이 있을 텐데 마석두 형사 혼자만 비행기에 달려간다고? 아무튼 전반적으로 3탄보다는 재미있었지만 1,2탄보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범죄도시 4편을 보고 이번 주말에 쉬면서 tving에 올라와 있는 범죄도시 시리즈의 기념비적인 첫 영화인 범죄도시 1탄을 복습했다. 물론 소위 말하는 알탕영화인데다가 대놓고 마석두가 룸싸롱에 가는 장면도 있는 등 내 개인적인 가치관으로는 전혀 내 취향은 아니지만, 가벼운 형사 코미디가 아니라 훨씬 무거운 18세 관람가와 그에 걸맞는 범죄 느와르 장르라는 정체성이 오히려 범죄도시에 더 어울리지 않나 싶기도 하다.
즉 영화적 가치는 집어치우고 엔터테인먼트로써 2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영화 티켓값을 지불하고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선택인지 도박을 한다면 분명히 승산이 높은 선택이고 사실 이 정도로 승률이 높은 일상의 선택은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스포츠 팀의 경기를 보기 위해 내가 사야 하는 티켓 가격은 항상 일정하지만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길지 질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약속된 만큼의 카타르시스를 위하여 범죄도시 시리즈를 보는지도 모른다. 이길 가능성이 높은 패라면 기꺼이 그곳에 걸기 마련이니까. 범죄도시 2,3이 천만영화가 되고 4도 어김없이 천만영화가 될 테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대신에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을 선택하는 패, 한국인들에게 범죄도시 영화 시리즈는 바로 그런 패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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