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운전면허 취득기


  때로 솔직할 수 있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큰 권력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혹은 내가 이루어낸 것들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채라면 그걸 꾸밈없이 그대로 털어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비슷한 의미에서 겸손할 수 있다는 것도 상당히 큰 권력이라고 생각한다. 구태여 자신을 드높이지 않아도 다른 이에게 무시를 당하지 않을 만한 여유가 있다는 점에서) 또 무슨 실없는 이야기 때문에 이렇게 변죽을 울리느냐 하면... 이제껏 창피해서 숨겨왔던 십몇년 전 면허 취득 실패 후 오랜 기간의 무면허를 극복하고 드디어! 이제야! 비로소!!! 운전면허를 취득했기 때문이다.

  흔히들 장롱면허라고 하지만 거의 마흔살이 다 되도록 그 장롱면허조차 없는 이의 초라함을 알는지. 그저 무면허이기만 했던 게 아니라 예전에 면허를 따겠다고 학원까지 등록해 놓고 도로주행에서 탈락해 학원비는 학원비대로 고스란히 날리고 면허도 취득하지 못했던 과거도 있다. 그때 이후 운전은 일종의 콤플렉스가 되어 다시는 운전을 하지도 않고 할 일도 없을 거라고 결심하고 지낸 지가 한참인데 이상하게 면허조차 취득하지 못했다는 그 사실이 계속해서 열등감으로 남아 있어 떨치기가 힘들었다. 좀 우스운 말이지만 마흔이 되어가면서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하고 싶어진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일순위가 과거에 따지 못했던 운전면허 취득이었다.

  면허취득을 위해 먼저 한 일은 실내운전면허학원 등록. 실내면허학원은 일반면허학원에 비해 학원비가 절반정도라 경비를 절감하려고 가는 것이 보통인데 나는 그보다는 예전에 학원에서 떨어진 기억의 불길함 때문에 실내면허학원에 등록한 게 더 컸다. 게다가 실제 차를 모는 건 여전히 너무나 두려운 일이어서 화면을 보고 시뮬레이션으로 운전 감각을 익히는 것이 오히려 내게는 더 잘 맞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여기서 잠시 실내 면허학원과 일반 면허학원의 차이를 말하자면(이 글에서 유일하게 정보가 들어있는 부분;;) 자체시험 여부를 꼽을 수 있겠는데, 실내 면허학원은 자체시험을 실시하지 않고 도로교통공단 관할 전국 각지의 운전면허시험장에서 기능 및 도로주행 시험을 접수하고 보게 된다. 반면 일반 면허학원은 자체시험을 실시하기 때문에 학원 내에 기능주행장이 갖추어져 있고 도로주행 코스 역시 학원 자체적으로 마련되어 있다. 비용은 세세하게는 수강과정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일반 면허학원이 실내에 비해 두배 이상 높고 시험접수 비용 역시 일반 면허학원의 자체시험에 접수하는 것이 도로교통공단에 접수하는 것보다 더 높다.**

  시험 후기를 요약하자면 기능은 2수, 도로주행은 5수였다. 기능시험은 실내 면허학원에서의 연습만으로 충분했고 첫 번째 떨어진 것도 신호를 확인하지 못해 실수로 떨어진 거라 아주 기본적인 운전 감각을 익히는 데는 실내 면허학원이 확실히 도움이 되었지만 실제 도로를 달리는 도로주행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게다가 도로교통공단의 도로주행 채점기준은 너무나 엄격해서 도무지 이렇게는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도로주행 첫 번째에는 입구에서 실격, 두 번째에는 1/3 지점도 가지 못하고 실격을 당하니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개인 도로주행 연수를 하는 강사를 찾기 시작했다. 장롱면허는 그래도 정식면허니까 저렴한 연수도 많은데 기능시험까지만 합격한 연습면허 소지자는 운전 연수 비용도 더 높아 비싼 비용을 치르고 연수를 받아야했다. 그러나 연수는 대실패. 강사를 잘못 만나 도로주행 시험 코스는 돌지도 못하고 주야장천 직진만 하는 시외운전을 하다 연수시간만 다 써버렸다. 그렇게 도로주행에서 세 번째 탈락을 하고 결국 일반 면허학원까지 등록하기에 이르렀다.

  일반 면허학원에 등록한 것은 그쯤 되자 서서히 불안하고 조급해졌기 때문이다. 분명 당초에는 ‘면허도 면허지만 진짜 운전을 하자’가 목표였는데 어느덧 ‘운전은 못해도 좋으니 제발 면허 취득만이라도 해다오’ 이런 마음으로 변해서 비교적 채점에 융통성이 있는 것 같은 일반 면허학원을 찾기 시작했다. 일반 면허학원도 학원마다 조금씩 달라서 아예 처음부터(필기-기능-도로주행) 전부 학원에서 진행해야 한다는 곳도 있었고 도로주행만 학원에서 진행하는 곳도 있었다. 다행히 도로주행만 진행할 수 있는 학원을 찾아 수강료를 또(!!!!!) 치르고 6시간의 학원 연수 끝에 이제는 드디어 시험에 합격하나 했더니 터널 위를 돌다가 과감히 차 뒤 범퍼를 긁어 실격, 어느덧 네 번째 탈락이었다. 

  운전면허라는 것이 그렇다. 개나소나 하는 것, 마음만 먹으면 금세 딸 수 있는 것, 설령 장롱면허일지라도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 심지어 학원에서는 ‘당신도 일주일만에 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며 별 어렵지 않은 일인 양 마음을 부추기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것조차 해내지 못하는 사람의 자존감은 누가 챙겨준단 말인가. 심지어 실내 면허학원, 개인 도로주행 연수, 일반 면허학원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말이다. 어찌되었든 여기까지 왔으니 더는 창피한 마음도 없었다. 계속해서 도전을 하는 수밖에. 그리고 그후 학원에서 두 시간의 추가 연수를 더 받고 다섯 번째 시험에서는 드디어 합격, 운전면허를 취득하게 되었다.

  고작 운전면허 하나를 위해 실내 면허학원, 개인 도로주행 연수, 일반 면허학원(에 심지어 추가연수 받음;;)다 경험하게 되었으니 비용으로 치면 거의 남들의 두 배 가량 들었다. 그러나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미화가 되는 법인지라 그런 지난한(그리고 매우 비싼ㅠㅠ) 과정이 있었기에 면허를 취득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돈만 날리고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느꼈던 개인 도로주행 연수 역시 지금 돌이켜 보면 그렇게 시외로 쭉쭉 달려나간 경험이 있어 운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심지어는 십몇년 전 도로주행시험 탈락 후 면허 취득을 포기해버린 쪽팔린 과거마저 이번 합격을 위한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고시합격도 아닌데 너무 과장해서 드라마틱하게 쓴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 이게 고시합격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스트레스 받고 자존감이 깎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만약 십몇년 전 내가 처음 도로주행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누군가 자기는 다섯 번만에 붙었다고, 아니 열 번만에 붙었다고 돈이 얼마가 들든 하면 늘고 또 하면 된다고 말해 주었다면 지레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학원에서 네 번째, 다섯 번째 도로주행 시험을 볼 때 동승했던 사람들도 다 여러 번의 낙방을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다섯 번째 동승했던 사람이 입구에서 실격을 당하고 막막한 표정으로 자기는 떨어지려고 온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에게 고작 저도 시험 다섯번이나 봤어요, 라고밖에 말하지 못한 게 아쉽다. 그저 그만큼 떨어진 것뿐 아니라 돈도 왕창 쓰고 자존감은 깎일 대로 깎여 얼마나 자학을 했는지, 나보다는 훨씬 나은 거라고 말해 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앞서 솔직함 어쩌구 운운했던 것은 이렇게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들이고 운전면허 하나 따지 못한게 말 그대로 정말 쪽팔려서 그간의 과정을 감추었기 때문이다. 도로주행에 떨어져서 낙심한 나를 위로하려고 친구들이 실내 연습장에서 연습해서 그렇다고, 시뮬레이션과 실제는 다르다고 말해줄 때 차마 개인 도로주행 연수도 받았다고 말할 수가 없어 ‘그러게’ 하며 얼버무렸고, 나중에 결국 학원까지 등록해 학원 강사가 몇 번이나 떨어졌느냐고 물어볼 때는 ‘세 번 떨어졌는데 독학해서 그런 것 같다’ 하면서 실내 면허학원을 다니고 개인 연수를 받은 사실은 숨겼다. 독학으로 기능까지 합격한 걸 보면 운전에 영 감이 없는 건 아니라는 말을 들어도 그냥 그런 척하고 넘어갔는데 이제 와 그런 은근한 거짓말이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이번 운전면허 취득이 유난히 더 기쁘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를 주어서. 아주 약소하고 보잘 것 없는 성취지만 이 성취가 나를 더 솔직하게, 그리하여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제 운전까지 잘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내일은 운전면허 취득 기념으로 장류진 작가의 <연수>를 읽을 것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나 남이 연애하는 거 좋아하네

소녀의 로망

곁다리 라이프의 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