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24의 게시물 표시

콩국수의 진정한 맛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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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부터 여름의 기억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뽀얀 콩국물에 더 하얀 면을 말아먹는 콩국수이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음식인데 나는 완전 호호호! 였다.  콩 : 맛있는거 + 국수 : 맛있는거 + 오이 : 맛있는거  이렇게 맛있는거 세 가지를 모은 음식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보니 콩국수는 생각보다 인기 음식이 아니었고 흔한 음식도 아니었다. 대학 생활 때는 먹었던 기억이 거의 없고, 취업을 하고 나서도 그리워만 할 뿐 콩국수를 굳이 찾아 먹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2018년 여름, 두 번째로 취업한 직장은 충무로였는데 어느 여름날 같이 일하던 동료가 칼국수나 먹으러 가자고 해서 따라나선 날이 운명의 그 날 이었다. 진양상가를 지나 허름한 입구로 들어가니 작은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칼국수를 먹고 있었는데, 그 사이로 보이는 하얀 국물! 바로 콩국수 였다. 10년 만에 만난 콩국수가 너무 반가워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콩국수를 골랐다.  넓은 스테인리스 그릇에 가득 담긴 콩국물을 숟가락으로 한 입 떠먹었는데 내가 그리워했던 바로 그 모든 추억과 기억을 소환하는 맛이었다. 아무 고명도 없이 국수만 말아져있는 콩국물에 소금으로 간을 하고 (나는 무시무시한 소금파이다. 설탕 절대 사절!) 갓 담근 김치를 얹어 먹으면 국물의 고소함과 면의 고소함이 양쪽에서 나를 휘감는 어마어마한 풍족감이 느껴진다. 그 뒤로 다시 나의 콩국수 DNA가 깨어나 한 달에 두 세번 씩은 직장 동료들을 졸라 콩국수를 먹으러 갔다. 직장 동료들도 콩국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다행히 칼국수도 맛있는 집이라서 큰 반발은 없었다. 콩국수는 6월~9월까지만 판매를 하기에 가을, 겨울, 봄 다시 여름이 올 때 까지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너무 아쉬울 따름이었다. 3년 후 충무로를 떠나서도 그 콩국수를 먹으러 다시 갈 만큼 내 인생 콩국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2024년 올...

여권에 그려진 옛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상상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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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 전자여권에 그려진 한반도 유물을 유심히 살펴본 적은 없을 것이다. 이번 글은 여권 속 유물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먼저, 여권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2021년도에 전면 발급이 시작되었던 그 여권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전자여권이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권고에 따라 여권내에 전자칩과 안테나를 추가하고, 내장된 전자칩에 개인정보 및 바이오 인식 정보(얼굴사진)를 저장한 여권으로 전자여권에는 여권번호, 성명, 생년월일 등 개인정보가 개인정보면, 기계판독영역 및 전자칩에 총 3중으로 저장되어 여권의 위·변조가 어려우며, 특히 전자칩 판독을 통하여 개인정보면과 기계판독영역의 조작 여부를 손쉽게 식별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출처: 외교부 ) 이번 글의 주 관심은 전자여권 '속지'에 그려진 유물이니, 이제 여권의 안으로 들어가보도록 하겠다. (전자여권의 속지는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열람해 볼 수 있으며 사증(비자)면에 그림들이 새겨져있다. 온라인체험관 ) 먼저 필자의 이목을 가장 먼저 끈 것은 신라 시대의 유물인 천마도(7면)와 기마인물형토기(11면)였다. 여권에 등장하는 신라의 유물은 무덤에서 출토된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천마도와 기마인물형토기는 신라의 사후세계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기에 내 눈을 사로잡았다. 사람이 죽으면 말이 하늘로 그 사람을 인도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고구려나 백제, 고려, 조선에서는 보이지 않는 신라만의 특징이다. 그래서 신라에 관한 역사 설명 가운데 초원의 기마 문화와 신라를 연결하여 설명하는 영상은 늘 흥미롭다. ( 신라금관의 비밀코드 ) 천마도는 많은 한국인이 수학여행으로 경주를 방문할 때 꼭 한 번 들르는 천마총의 그 천마도이다. 말다래라고 하는 말 안장에 그려진 그림인데 신라 유물 중 유일한 회화 작품으로 그 사료 가치가 높다. 이 그림에는 죽은 자를 하늘로 인도하는 '하늘의 말'이라는 이름이 주어졌고 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이 되었다. 당...

친애하는 박완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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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모 회사(관악머시기,,,)에 다닐 때의 일이다. 같이 일하던 사람 중 내심 못마땅하게 여기던 이가 어느 날은 평소와 다르게 유독 조용히 일을 하던 날이었다. 퇴근시간이 되자 부랴부랴 갈 채비를 하던 그에게 누군가 어딜 그렇게 가느냐고 묻자 “박완서 선생님 장례식에 간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만큼 가볍고 얄팍한 인간일 거란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터라 대문호의 장례식엘 간다는 것이 몹시 의외였다. ‘대문호의 장례식에 직접 참석한다니, 실은 굉장히 학식있고 진중한 성품일지도 몰라’하며 그 이에 대한 못된 선입견이 한꺼풀 벗겨지는 스토리면 좋았으련만 나는 아주 일천한 상상력과 그에 걸맞게 미천한 성품을 가진 인간이었다. 이번에는 그 선입견의 화살을 반대로 대문호 박완서 선생님께 돌려 ‘실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한 작가가 아닐지도 몰라’ 하며 그 이가 보인 의외의 좋은 모습을 애써 부정했던 것 같다.   부끄럽지만 사실 그랬다. 그러니까 굳이 앞선 기억이 아니더라도 내가 품고 있는 박완서 선생님의 이미지는 좀 그런 것이었다. 이미 한 세대가 지나버린 작가, 교과서로나 보는 작가, 문학사적인 가치는 있겠지만 별 읽는 재미는 없는 작가였다. 특히 입시 때 봤던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이란 게 전쟁의 상흔을 감싸안거나(<그여자네 집>) 물질주의에 대항하는 인간성의 회복(<옥상에 핀 민들레 꽃>)을 논하는 휴머니즘적 작품이 전부였던 까닭에 무의식 중에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을 죄다 재미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렸었다.   다만 박완서 선생님에 대해 강렬하게 남은 기억 한 가지, 그건 바로 선생님이 마흔에 처음 집필을 시작해 소설가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마흔은 남의 얘기만 같던 대학 시절, 이상은 높지만 능력은 한참 부족하고 그걸 메꿀 만한 용기나 끈기도 없던 때, 마흔에도 새로운 걸 시작해 크게 이뤄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달콤하게 들렸던지. 만학도의 꿈 같은 패...

'Have been to'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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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시간 다녀왔던 공간들에 대한 기록. #그랜드센트럴 그라운드시소 한때 디뮤지엄이 차지했던 20대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위엄은 그라운드시소로 옮겨간듯 하다. 서촌, 성수 등 최근 핫한 위치 선정뿐만 아니라, 진행했던 전시들이 대체로 선명하고 흥미로운 주제의식을 내세우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마침 꼭 보고 싶었던 '이경준 사진전 : 원 스텝 어웨이'가 서울역 근처 그랜드센트럴의 그라운드시소에서 진행하고 있어 다녀왔다. 별도 독립 공간으로서의 미술관에 많이 익숙해서인지, 큰 빌딩에서 전시장을 찾아가는 게 어색했는데, 과연 신축건물답게 (준공년도 2020년) 굉장히 쾌적한 환경이었다. 살짝 어두운 분위기가 고급스런 호텔같기도 한데, 사무실도 꽤 많이 입주한 듯 하고 (지금 찾아보니 무려 BCG가 꼭대기층을 차지하고 있다. 재밌는 건 서민금융진흥원도 입주해있네. 네? 서민?) 팀홀튼이나 심퍼티쿠시,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콘피에르 같은 F&B도 입점해있다. 큰 공간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전시가 한정적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일단 내 생각보다는 훨씬 넓었고, 공간 속 공간이나 기둥 등을 알뜰살뜰하게 잘 활영하여 작품을 배치한 것 같아 보는 재미가 있었다. 20대도 힙스터도 아니다보니 그라운드 시소라는 공간 자체를 처음 방문해보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짜임새나 구성력을 갖추고 있어서 기회가 된다면 다른 공간에도 또 가보고 싶어졌다. 이경준은 뉴욕 기반의 사진 작가로, 우리가 '뉴욕'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를 담백하게 보여준다. 과장하지도 감상에 젖지도 않는다. 마천루는 일자반듯하고, 센트럴파크는 더없이 푸릇푸릇하다. 딱 기대만큼의 그림이 눈 앞에 있어 참 좋았다. 일생에 단 한 번 방문해본 뉴욕이지만, 왜 이토록 늘 그리워하는지. 일종의 사대주의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방문했을 때 일본인들처럼 파리 증후군이라도 겪으면 어쩌나... #신세계 강남 스위트파크 그 유명한 스위트파크! 드디어 방문해보았습니다! 어쩐지 유투브 썸네일에 써야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