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에 그려진 옛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상상계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 전자여권에 그려진 한반도 유물을 유심히 살펴본 적은 없을 것이다. 이번 글은 여권 속 유물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먼저, 여권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2021년도에 전면 발급이 시작되었던 그 여권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전자여권이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권고에 따라 여권내에 전자칩과 안테나를 추가하고, 내장된 전자칩에 개인정보 및 바이오 인식 정보(얼굴사진)를 저장한 여권으로 전자여권에는 여권번호, 성명, 생년월일 등 개인정보가 개인정보면, 기계판독영역 및 전자칩에 총 3중으로 저장되어 여권의 위·변조가 어려우며, 특히 전자칩 판독을 통하여 개인정보면과 기계판독영역의 조작 여부를 손쉽게 식별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출처: 외교부)

이번 글의 주 관심은 전자여권 '속지'에 그려진 유물이니, 이제 여권의 안으로 들어가보도록 하겠다. (전자여권의 속지는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열람해 볼 수 있으며 사증(비자)면에 그림들이 새겨져있다. 온라인체험관)

먼저 필자의 이목을 가장 먼저 끈 것은 신라 시대의 유물인 천마도(7면)와 기마인물형토기(11면)였다. 여권에 등장하는 신라의 유물은 무덤에서 출토된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천마도와 기마인물형토기는 신라의 사후세계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기에 내 눈을 사로잡았다. 사람이 죽으면 말이 하늘로 그 사람을 인도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고구려나 백제, 고려, 조선에서는 보이지 않는 신라만의 특징이다. 그래서 신라에 관한 역사 설명 가운데 초원의 기마 문화와 신라를 연결하여 설명하는 영상은 늘 흥미롭다. (신라금관의 비밀코드)


천마도는 많은 한국인이 수학여행으로 경주를 방문할 때 꼭 한 번 들르는 천마총의 그 천마도이다. 말다래라고 하는 말 안장에 그려진 그림인데 신라 유물 중 유일한 회화 작품으로 그 사료 가치가 높다. 이 그림에는 죽은 자를 하늘로 인도하는 '하늘의 말'이라는 이름이 주어졌고 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이 되었다. 당시 신라의 왕족이나 높은 계급의 사람들이 말을 신성시 여기는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천마도 관련 영상)


11면에 그려진 기마인물형 토기는 신라 '금령총'에서 발굴된 토기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한 문화재이다. 금령총에는 말 탄 '주인'과 '시종(하인)'을 빚은 토기 두 점이 발굴되었는데, 여권에 새겨진 것은 그 중 하나인 주인상의 말 탄 사람 토기이다. 이 토기는 사실 '주전자'이다. 토기 안은 텅 비어져 있고, 실제로 액체를 넣고 따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제사에 쓰인 술을 넣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며, 금령총의 무덤 주인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어린 왕자의 무덤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마인물형토기 영상)


다음은 12면, 13면에 그려진 사신도이다. 여권에는 사신(주작, 현무, 백호, 청룡) 모두가 그려지진 않았고, 12면에는 사신도 가운데 주작(고구려 강서중묘)과 현무(고구려 강서대묘)가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런데, 외교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그림에는 고려 강서중묘로 잘못 쓰여져 있는 것 같다. 오타로 보인다. 실물을 찾아보니 '고구려' 강서중묘로 잘 인쇄되어 있어 다행이다. 외교부 홈페이지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사신도 역시 무덤에 그려진 그림들이다. 고구려 무덤이 다른 고대국가들과 가장 비교되는 지점은 '벽화무덤(고분벽화)'이 많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벽화에 그려진 웅장하고 비범하며 신비로운 그림들은 무덤 안에 안장된 시신이 새로운 천상세계에서 극락왕생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고구려 고분벽화는 전기, 중기, 후기로 그 시대 구분을 할 수 있는데 사신도가 가장 중요한 위치에 크게 새겨진 시기는 벽화무덤 가운데에서도 후기로 분류되는 때이다. 즉 고구려의 사후세계가 사신도를 중심으로 재편되어 갔음을 엿볼 수 있다. 고구려 벽화무덤에 등장하는 각종 문양들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친숙한 것들이 많이 있을뿐만 아니라 고구려 사람들이 꿈꿨던 죽음 이후의 상상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매혹적인 문양들이라 할 수 있다. (강서대묘의 사신도, 고구려 고분벽화 문양들)



마지막으로 소개 할 유물은 백제의 금동대향로이다(9면). 백제금동대향로는 국립박물관문화재단에서 인기 있는 굿즈로도 재탄생한 보물이기도 하다.



"국보(옛 지정번호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는 불전에 향을 피울 때 쓰는 향로로 부여 능산리 백제시대 절터에서 출토되었다. 이 향로는 크게 보면 앞발을 치켜든 용 한 마리가 막 피어날 듯한 연꽃 봉오리를 물고 있는 듯한 형상인데 연꽃 봉오리의 중앙이 아래위로 분리되어 향로의 몸체와 뚜껑을 이루고 있다."(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백제금동대향로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백제인들이 사후세계에 대해 가져왔던 상상계를 만날 수 있다. 백제 역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불교의 영향이 강하였지만, 죽음에서만큼은 도교의 영향 또한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들은 신선사상을 바탕으로 삶과 죽음을 이해해왔다. 백제의 신선사상 또는 도가사상은 백제금동대향로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으며, 가장 꼭대기에 서 있는 봉황은 천계를 상징하고, 중앙 본체는 인간세계, 받침의 용은 지하세계를 상징한다. (백제금동대향로의 구조와 그 의미)

이번 글은 전자여권에 새겨진 삼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의 주요 문화재와 그 안에 담겨진 당시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세계관(상상계)를 알아보았다. 유물들 중 흥미를 유발한 문화재가 있다면, 본문에 삽입한 영상 링크들을 함께 보는 것을 추천한다. 지면에 담지 못한 당대 사람들의 종교, 문화, 역사 등 다 풀지 못한 이야기들을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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