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ve been to'의 미학
- 지난 시간 다녀왔던 공간들에 대한 기록.
#그랜드센트럴 그라운드시소
한때 디뮤지엄이 차지했던 20대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위엄은 그라운드시소로 옮겨간듯 하다. 서촌, 성수 등 최근 핫한 위치 선정뿐만 아니라, 진행했던 전시들이 대체로 선명하고 흥미로운 주제의식을 내세우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마침 꼭 보고 싶었던 '이경준 사진전 : 원 스텝 어웨이'가 서울역 근처 그랜드센트럴의 그라운드시소에서 진행하고 있어 다녀왔다.
별도 독립 공간으로서의 미술관에 많이 익숙해서인지, 큰 빌딩에서 전시장을 찾아가는 게 어색했는데, 과연 신축건물답게 (준공년도 2020년) 굉장히 쾌적한 환경이었다. 살짝 어두운 분위기가 고급스런 호텔같기도 한데, 사무실도 꽤 많이 입주한 듯 하고 (지금 찾아보니 무려 BCG가 꼭대기층을 차지하고 있다. 재밌는 건 서민금융진흥원도 입주해있네. 네? 서민?) 팀홀튼이나 심퍼티쿠시,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콘피에르 같은 F&B도 입점해있다.
큰 공간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전시가 한정적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일단 내 생각보다는 훨씬 넓었고, 공간 속 공간이나 기둥 등을 알뜰살뜰하게 잘 활영하여 작품을 배치한 것 같아 보는 재미가 있었다. 20대도 힙스터도 아니다보니 그라운드 시소라는 공간 자체를 처음 방문해보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짜임새나 구성력을 갖추고 있어서 기회가 된다면 다른 공간에도 또 가보고 싶어졌다.
이경준은 뉴욕 기반의 사진 작가로, 우리가 '뉴욕'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를 담백하게 보여준다. 과장하지도 감상에 젖지도 않는다. 마천루는 일자반듯하고, 센트럴파크는 더없이 푸릇푸릇하다. 딱 기대만큼의 그림이 눈 앞에 있어 참 좋았다. 일생에 단 한 번 방문해본 뉴욕이지만, 왜 이토록 늘 그리워하는지. 일종의 사대주의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방문했을 때 일본인들처럼 파리 증후군이라도 겪으면 어쩌나...
#신세계 강남 스위트파크
그 유명한 스위트파크! 드디어 방문해보았습니다! 어쩐지 유투브 썸네일에 써야할듯한 문구... 그러나 그런 뻔한 유투브 영상들답게 별 내용은 없다. 기대가 너무 커서 그랬는지 생각보다는 심심했다. 최근 더현대가 주목받긴 했으나, 사실 '백화점 지하1층'의 열풍 원조는 신세계 (&압구정 갤러리아) 였다. 무려 10년 전만 해도 신강에 가서 팝업이 뭐가 들어왔나 구경하는 게 일이었을 정도. 신세계에서 자존심이 상했는지, 그 아성을 되찾아오기 위한 것인지, 지난 2월 스위트파크를 새롭게 오픈했다고 한다. 한 번은 가보고 싶었는데 오픈런에 웨이팅에 엄두도 못 내다가, 며칠 전 드디어 용기를 내어 방문했다! 토요일 오후였음에도 지하철역과 연결된 입구쪽이 한산해서 놀랐는데, 과연 좀 더 안으로 들어가보니 특정 가게들에는 대기 줄이 꿀렁꿀렁 이어져있었다.
스위트파크라는 별도의 명명이 있다보니 특별한 공간을 꾸민 것 같지만, 사실은 기존 공간과 크게 다를 바는 없다. 특히 아일랜드 매장은, 롯데나 현대에 가도 볼 수 있는 익숙한 백화점 지하1층의 모습이다. 물론 디테일은 다를 수 있지만. 다만 애써 유치해왔을 법한 해외 브랜드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벽장 매장을 제공함으로써 차별화를 추구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핵심은 콘텐츠, 즉 MD다. 전통의 강자라고 할 수 있는 쇼토, 메종엠오, 깰끄쇼즈, 쟝블랑제리는 물론 빵덕후, 디저트덕후들 사이에서는 이미 검증된 키친205, 코운코운, 수르기, 미니마이즈, 르솔레이, 해피해피케이크, 삐아프, 그뿐만 아니라 최근 크게 주목받은 베통, 브라우터, 버터앤쉘터, 치플레 등... 끝없이 이어지는 입점 브랜드의 향연에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각 매장의 본점들을 방문한 적이 있다면 완전히 새롭지는 않다는 것이 함정.
다만, 무려 본점 매장을 포기하고라도 스위트파크에 전념한다는 수르기 같은 매장이 있기에, 여전히 스위트파크에 한 번쯤 방문해볼 가치가 있다. 피에르 마르콜리니 같은 국내 단독 매장이나 가리게트처럼 국내 1호점 매장 역시 존재하기에, 뭇 디저트덕후들은 설레지 않을 수가 없다.
#신당동 메일룸
지난해 알쓸별잡에서 힙당동을 언급했을 때 이미 트렌드가 건너간 줄 알았는데 (원래 TV에 나오면 그건 이미 단물 빠진 죽은 트렌드라고 하니까), 역시나 힙은 쉽게 죽지 않는다. '메일룸'은 신당역에서 멀지 않은 카페로,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면 우편함을 통해 해당 메뉴를 찾아갈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해있다. 이런 새로운 시도로 가득찬 공간에 방문했을 때 어리숙하게 보이는 것이 싫어서 한 백개쯤 블로그 포스팅을 읽어보고 갔더니, 정작 실제로는 감흥이 덜한 것이 아쉬웠다. 일단 가게에 들어가면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처럼 카운터가 보이는데, 직원들이 그 옆에 또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가라고 안내해준다. 다시 한 번 문을 넘어서면 앞서 보았던 카운터 공간의 뒷면(혹은 앞면?)에서 주문을 할 수 있고, 2, 3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도 있다. 핫플답게 주말 오후에 모든 층의 자리가 꽉꽉 채워져 있어서 테이크아웃을 해야 했는데, 이 공간의 차별화 포인트는 '우편함 수령(!)'이기 때문에 크게 아쉽진 않았다. 사실 그 외의 인테리어 디테일은 독특하고 예쁘지만 머물러야만 하는 이유가 될 정돈 아닌 것 같다.
요 몇 년간 유명하다는 온갖 카페들을 다니면서 느낀 건데, 사실 '한끗 차이'인 것 같다. 카페라는 업을 본질적으로 뒤흔들 만한 아이디어는 아직 만나지 못한 것 같다. 애초에 그런 레인지가 불가능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메일룸처럼 약간의 포인트만으로도 사랑받는 공간이 될 수 있다. 꽤 많은 사례들이 있다. 귀여운 고양이 모양 치즈케크 샌드가 있는 문래 쪽의 '토요'라든가, 무려 커피젤리와 아이스크림을 백조 모양의 유리 그릇에 담아주는 양재 쪽의 '잔상', 혹은 테이크아웃 믹스커피를 전적으로 내세운 성수 쪽의 '뉴믹스' 등이 그렇다.
한편, 기왕 신당동에 간 김에 그 주변 핫플들을 둘러보았는데 과연 주신당은 그 일대 가장 주목받는 곳 같았다. 특히 언뜻 허물어져가는 듯한 입구는 '척' 수준을 넘어서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입모아 '여기가 거긴가봐', '진짜인가봐' 하는 소근거림을 자아내게 했다. 세실앤세드릭은 김나영 유투브에 나올 법한(이 아닌, 찐으로 나온) 소품 편집샵인데, 선뜻 무언가를 구매하기에 가격대가 무거운 편이고, 일상적으로 사용할 만한 카테고리라고 하기 어려우나 선물용으로는 안성맞춤이다. 핍스마트는 나이스웨더같은 곳인가 했는데, 그거랑 비슷한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티셔츠를 마트 냉장식품 파는 냉장고에 넣어 파는 뻔뻔할 정도의 컨셉추얼함이 재미있었다. 요새는 고리타분한 시선으로는 구분짓기 어려운 성격의 매장들이 점점 많아지는 듯하다. 더 유연하게, 더 뾰족하게 생각해야만 남들과 다를 수 있고 mz에게 먹힐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던 신당 마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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