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친구를 위한 '한국적' 선물 고르기

 최근에 외국에서 온 손님을 위한 선물을 준비한 일이 있었다. 한 사람은 20대의 중국 여성이었고, 다른 사람은 70세가 훌쩍 넘은 서양인 노신사 1명과 동양인 노신사 1명이었다. 먼저 20대 중국 여성을 위한 선물을 준비할 때, 고민이 들었던 것은 '한국적'인 것이 생각보다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도자기를 선물하든, 무엇이되든 그 모양과 느낌은 중국에서도 충분히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국립중앙박물관의 굿즈들이 떠올랐다.




어떤 선물이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 친구가 마지막으로 경주 여행을 다녀왔다는 소식을 듣고, 뮤지엄 숍에 석굴암 조명 제품이 있어 이것을 구매하려 했는데, 안타깝게도 구매하려던 당시 판매가 멈춰 구매를 할 수가 없었다. (10월 10일부터 다시 판매가 시작된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고민했던 선물은 백제금동대향로를 표현한 작품이었다. 사실 이 상품은 내가 너무 갖고 싶었던 것이어서, 내가 갖고 싶은만큼 선물하면 정말 기쁘겠다는 마음으로 구매를 고려한 제품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슈가 있었다. 바로 아래 안내문 때문이었다.

"국보, 보물등의 복제품 해외반출시 문화재로 오인될 수 있는 소지가 있으므로 출국 3시간 전까지 해당 공항 또는 항만에 있는 문화재감정관실에 확인(감정) 신청 필수 입니다. (상품 감정 15분 소요예상)"

출국 당일 이 친구에게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던 터라, 출국 3시간 전까지 문화재감정관실에서 감정이 필수라는 내용을 보고, 아 이건 선물하기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이것을 선택하지 못했다.




계속된 고민(출국 시 문제가 없어야 하고, 한국을 떠올려야 하고, 부담없이 받을 수 있고, 크게 짐이 되지 않아야 하는) 속에 결국 세 가지 선물을 선택하게 되었다.

첫 번째 선물은 일월오봉도가 그려진 전통 민화 부채였다. 가장 좋았던 것은 '일월오봉도'의 그림이었다. 조선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언제나 왕좌 뒤에 세워져 있던 이 그림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오직 조선에서만 기록되고, 확인되어 조선 고유의 문화와 사상을 반영한 그림"(출처: 우리문화신문, 2020.04.28.)이라는 점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더욱이 친구가 한국을 떠나는 날의 계절이 여름이었던터라, 부채라는 오브제도 마음에 들었다.




두 번째 선물은 텀블러와 텀블러백이었는데, 텀블러라는 소재가 중국에 돌아가도 일상에서 한국의 기억을 되새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선택한 선물이었다. 방 어딘가에 전시하다 잊혀지는 선물이 아니라, 일상에서 편하게 쓰이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먼저 텀블러백은 기사진표리진찬의궤를 디자인 소재로 차용한 것으로 "조선 후기 혜경궁(1735~1815)의 관례 60주년 축하 행사를 기록한 의궤로 진찬의궤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진표리'와 '진찬'을 함께 담고 있는 유일한 의궤"라는 점에서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특히 기사진표리진찬의궤는 "궁중 악대 연주 모습과 악기가 세밀히 묘사되어 궁중 음악 복원과 재현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출처: 국제문화홍보정책실, 2020.01.23.)되고 있다. 




기사진표리진찬의궤 영인본


세 번째 선물은 텀블러백에 담을 텀블러였는데 한 때 유행하기도 했었던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 새겨진 물병이었다. 이 제품이 좋았던 것은 '한글' 때문이었다. 사실 뮤지엄샵에서 한글을 소재로 한 제품들을 계속 찾아보았지만 (한글만큼 우리다운 것은 없으니) 맘에 드는 제품이 아쉽게도 없었다. 한글이 너무 추상화되어 한글인지 아닌지 구분이 잘 안되는 제품들은 선택하기 곤란하였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들어보았을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 빼곡하게 새겨진 것이 정말 좋았다. 단순하고 쉬운 제품이었지만, 일상에서 한글을 계속 떠오르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니 더 좋았던 것 같다. 또한 어렵지 않게 쉬운 표현들, 추억과 그리움을 담은 시의 내용 역시도 좋았다. 그래서 이 선물을 그 친구를 위해 선택했다.





한국에 머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2년이었지만, 2년 동안 매일 같이 공부하면서, 20대 어린 나이에 한국에 들어와 처음엔 한국 음식에 적응하지 못했던 친구가 언제부터인가 직접 요리도 하고, 한국 음식도 잘 먹는 친구로 성장하고, 스스로 편의점 아르바이트에도 도전하고, 한글로 쓰는 논문 작업을 잘 마친 그 친구가 대견하면서도 참 배울 것이 많았던 친구였다. 지금은 중국에서 또 다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는 그 친구를 떠올리며, 다음 무임승차 편에서는 두 명의 해외 석학을 위해 준비했던 한국 선물의 여정을 정리한 글을 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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