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하고도 고소한 두부같은 하루
여느 때 처럼 커뮤니티를 스크롤 하다가 독립영화 한 편이 개봉을 앞두고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다는 글을 읽게 되었다. 포스터 부터 눈에 확 들어 와서 개봉하면 봐야겠다고 생각한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 서야 볼 수 있었다. 동생도 꼭 보고 싶다고 했는데 9월 내내 야근을 거듭하던 동생이 10월이 되어 겨우 시간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꽤 기대를 했던 모양인지 스포를 당할까봐 후기나 기사도 잘 읽어보지 않고 시놉시스만 읽은 채로 관람을 하게 되었다. 개봉할 때부터 개봉극장이 부족하다는 의견들이 대다수라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시간에 맞는 극장을 찾을 수 있었고 오랜만에 명동 나들이에 나섰다.
뿌연 수증기가 화면을 가득 메우고 두부 공장의 분주한 소리들이 이리저리 교차하며 시작하는 첫장면을 시작으로 마을 곳곳 집안 곳곳을 쭈욱 따라가는 화면이 인상적이었다. 영화는 2시간 내내 경상도 어느 한 마을에 있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거리조절이 기가 막히다. 어느 장면에서는 눈 속을 들여다 보듯이 가까이에서 보여주기도 하고 시골 마을의 자연과 인간의 어우러짐을 한 눈에 담을 만큼 멀리서 보여주기도 한다. 10명의 대가족이 이런저런 조합으로 에피소드를 이어가는데 대본의 대사를 외워 연기한다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받았다. 화면 가득 담기는 4계절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자연의 모습은 왜 이 영화의 영화 제목이 House of the Seasons 인지에 대한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여러가지 소재를 모두 담으려고 하다보니 너무 꽉 차서 버거운 느낌이 들 때 쯤엔 탁 트인 화면으로 전환되어 완벽한 타이밍을 보여주고, 너무 우울하거나 구질구질 해지려고 할 땐 적절한 유머와 생각지 못한 대사들이 신선하게 이어졌다. 촘촘하게 잘 만들어진 영화의 만듦새에 감탄하며 두 시간 동안 몰입해서 즐길 수 있었다.
+) 오랜만에 명동으로의 나들이라서 명동 맛집을 검색했는데 80%는 명동교자 추천글이라서 고민하던 중 미성옥 이라는 설렁탕집을 찾았다. 해리포터의 녹턴앨리로 들어가는 것처럼 좁고 긴 골목길을 통과해야 했는데 1966년에 문을 열어 60년째 운영중인 엄청난 가게였다.
약간 꼬릿한 냄새가 나는 국물은 뒤끝없이 깔끔했고 고기와 소면이 부들부들해서 술술 넘어갔다. 배추김치는 내 입맛에는 좀 달았는데 깍두기가 진짜 아삭하고 맛이 잘 들어서 따로 사가고 싶을 정도였다.
후식은 1972년에 문을 연 [가무] 라는 카페에서 비엔나커피를 먹었다. 머신 커피가 아닌 깔끔한 드립커피에 쫀쫀한 크림이 잔뜩 올라가있는데 커피와 호로록 한번에 들이키면 고소함과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졌다. 옛스러움이 느껴지는 카페 분위기와 부담스럽지 않은 커피의 맛이 잘 어울려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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