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그리고 멀리 보기

  여러가지 좌절감을 맛 보는 한 해의 끝이다. 어차피 지키지 못할 것을 알고 당초에 별다른 목표를 세우지 않았건만도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든다. 아주 사적인 영역인 가사와 육아에서부터 사회적인 성취도를 가늠하게 하는 업무적인 영역까지, 한해를 곱씹어 보았을 때 스스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만한 부분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슬프다. 사실 꽤 오래 전부터 이런 종류의 우울감을 겪어왔다. 때로는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추켜세우기도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는 누군가로부터의 인정, 납득 가능하고 객관적인 지표로 나타낼 수 있는 성취를 토대로 한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빠른 승진이라거나 글쓰기 대회 입상이라거나 하는. 유치하지만 수 년간 이런 인정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던 것 같다. 사적인 영역도 마찬가지, 올해도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다. 올해 단 하나의 목표는 ‘아기에게 화내지 않기’였음에도 그마저 지키지를 못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어떻게든 고집을 꺾으려고 압박을 한 적도 많다. 아직 만 두 살이 조금 지난 아기에게 말이다. 이렇다 보니 우울감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곤 한다. 알고 있는 답은 그저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뿐. 그리고 지키지 못하더라도 또 한번 결심하고 또 한번 의지를 다져야한다는 것. 이런 좌절감은 결국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이 점이 긍정적이라면 긍정적이겠다. 내가 원했던 모습의 37살은 아니지만 아주 오래 전의 나와 비교하면 분명 더 괜찮아진 부분이 있으므로 길게 그리고 멀리 보기로 한다. 내년 이맘때의 나는 지금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겠지만 10년 후의 나는 또 한 발자국 성장한 사람이 되어있길 바라며 올해 보고, 듣고, 읽고, 느꼈던 것들을 정리해 본다.


#본 것

  올해는 아기가 어린이집에 다닌 어린이집 특수를 맛 본 고로 예년보다 훨씬 많은 영화를 보았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이거다!’ 싶을 만큼 마음에 드는 영화는 없었다는 것이다. 대부분 재미는 있지만 영화적인 완성도(편집, 음향, 미장센 등 영화라는 매체가 줄 수 있는 효용을 달성했는가)가 떨어지거나 영화적인 완성도는 있지만 흡인력이 떨어지는 혹은 메시지에 완벽히 공감할 수 없는 영화들이었다. 하여 올해의 영화로 꼽을 만한 것은 없지만 세간에 묻혀버려 아쉬운 영화로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를 꼽고 싶긴 하다. 나름대로 호평을 받긴 했지만 영화의 태생부터 B급과 비주류 느낌이 있다 보니 영화의 작품성에 비해 너무 묻혀버린 듯싶다. 상상력을 저 끝까지 밀어붙이는 통통튀는 영화이기 때문에 호불호는 갈릴 수 있겠으나 적어도 이 영화가 너무 귀엽다는 점 만큼은 이견이 갈리지 않을 것이다.(동춘이 너무 귀여워서 쟈바머겅ㅠㅠㅠㅠ) 영화적 취향으로 말하자면 사실 비주류 독립영화보다는 상업영화가 보다 취향인 쪽이지만(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구분하는 기준이 참 어렵긴하다. 음악도 그렇고. 편의상 거대 자본이 투입되지 않은 그래서 품을 들여 찾아 보아야만 하는 영화를 독립영화로 통칭한다.) 그래도 기회가 되면 독립영화를 더 보려고 한다. 어렵고 난해할지라도 보고 나면 무언가 남는 게 있고 그만의 미학에 익숙해지면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독립영화를 보았다’는 사실 자체가 만족감을 주기도 하고. 긴 시간 공을 들여야만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을 과연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겠냐 하는 의문에 대해서도 ‘감히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다. 그런 즐거움들이 알게 모르게 모여 취향을 만들고 취향이 생긴다는 건 나 스스로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일이기에. 마지막으로 올해 개봉했지만 보지 못해 후에 보고 싶은 영화(그런데 적지 않으면 까먹고 안 볼 것 같은)로는 <메이 디셈버>, <룸 넥스트 도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 한국 영화로는 <딸에 대하여>, <장손>을 메모하여 잊지 않고 언젠가는 꼭 보기로 하겠다. 


#들은 것

  상반기에는 우즈, 하반기에는 검정치마의 음악들이 플레이리스트를 채웠다. 역시 나는 록음악이 좋다. 기타와 베이스, 키보드, 드럼이 절정을 향해 치달아가는 부분, 그리고 절정 뒤에 연주가 엇박을 타며 음악을 장악하는 듯한 부분을 듣다보면 막 뱃속이 간질간질, 꿀렁꿀렁하고 너무 좋아 미치겠는 기분이 든다. 이런 기분은 록음악이 아니면 잘 느낄 수 없기에 더 그렇다. 검정치마는 과거에 무척 좋아했었는데(그의 가사에 대한 병크는 잠시 묻어두자ㅠ) 어느 순간 음악이 너무 무겁고 멜랑콜리해져서 별로 안듣게 됐었다. 그 멜랑콜리함도 할리우드와 에브리띵까지는 좋았는데 3집부터는 나쁘지는 않지만 어딘가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은 음악이었다. 이전에 글렌체크 글에서 말한 바 있듯 천재 밴드의 침잠하는 순간, 뭐 그런 것 같이 내 귀에는 더 이상 그리 끌리지 않는 음악들. 그러다가 요즘 검정치마 뭐하지 하고 최근(이라봐야 2년도 더 전에 발매됨) 5집을 들었는데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정말 너무너무너무 좋아서 완전히 빠져 들었다. 굳이 굳이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Ling Ling>을 꼽겠지만 이 앨범은 정말이지 통으로 들어야 한다. 첫 번째 트랙 <Flying Bobs>의 내레이션(‘이 모든 게 다 내가 원했던 거라구요’라는 부분은 정말 정말 최고다)에서 두 번째 트랙 <불세례>로 유려하게 흘러가는데 여기서 이미 이 앨범은 개쩌는 명반이라고 자기소개를 하는 것 같았다. 그 외에 <Friends in Bed>, <매미들>, <Electra>가 유독 더 취향이긴 한데 나머지 음악도 빠짐없이 좋다. 검정치마의 인스타를 보니 5집 앨범이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앨범이라고 했던가 그랬다. 충분히 동의한다. 여기까지 적으려다 글렌체크 이야기가 나온 김에 글렌체크의 <Candy Pink>도 올해 아주 자주 들었고, 요즘 관심있게 보는 밴드 터치드의 <야경>도 곁다리로 추천한다.


#읽은 것

  올해의 책으로는 고민의 여지 없이 그레이스 M. 조의 <전쟁 같은 맛>이 바로 떠올랐다. 픽션으로 읽어도 논픽션으로 읽어도 모로 보나 좋은 책이다. 어머니와 얽힌 본인의 생생한 경험이라는 토대에 방대한 사회학적 지식을 녹여냈고, 당시 여성에게 가해졌던 한국 사회의 폭력을 냉철한 메시지로 담아내면서도 따스함을 잃지 않았다. ‘요리’와 ‘여성’, 그리고 ‘시대’라는 키워드로 <전쟁 같은 맛>, <밝은 밤>, <눈부신 안부> 책을 엮어서 짧게나마 정리하고 싶었는데 후에 뉴스레터에 실을 수 있기를. 그리고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도 아주 좋았다. 춥고 쌀쌀한 날씨에 어울리는 쓸쓸하면서도 여운이 계속 남는 책이다. 이 책도 리뷰를 길게 쓰고 싶은데 내년의 목표는 <전쟁 같은 맛>과 <축복받은 집>의 리뷰를 짧게라도 써보는 것으로 해야겠다.


#느낀 것

  올해는 아기가 어린이집에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해 소중한 자유시간을 누리기도 했고 복직을 하게 되어 한톨의 자유시간도 없이 바쁘기도 했다. 밸런스가 잘 맞는 날들에는 짧게나마 책 읽는 여유를 가지기도 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누리는 행복도 맛볼 수 있지만, 대개는 밸런스가 잘 맞지 않는 날들이라 허겁지겁 일상을 감당하기에 바쁘다. 앞서 적은 우울감에는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뭐 하나 ‘잘’도 아니고 ‘온전히’ 해내는 게 없는 듯한 기분. 어떻게 하면 스스로 만족할 만한 나의 모습을 가꿀 수 있을까. 노력을 해야 한다는 간단한 답이 있지만 그 노력에 대한 대가가 바로 눈에 보이지 않고(원래 세상이 그런 법이지만) 지쳐갈 때는 어떤 방법으로 힘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노력을 한다는 것 자체도 아주 힘든 일인데 말이다. 사는 건 원래 의미가 없는 거라는 현자의 말이 떠오르기도 하지만(물론 그 말이 대충 살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아마 마음을 비우란 말이겠지) 그래도 그런 삶이나마 잘 살아보고 싶다는 희망이 있다. 어떤 괴로움인들 산 자의 특권일 것이다. 이달 초에는 계엄령으로 마음이 어수선하더니 이틀 전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마음을 계속 짓누른다. 왜 있어서는 안되는 일들이 일어나는지. 진심으로 돌아가신 이들의 명복을 빈다. 


#추신

  해은은 아마 모를 것이다. 과거에 내가 그녀를 부러워했다는 사실을. 공부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고(뭔가 동어반복 같지만) 글도 잘쓰고 나와 친한 친구지만 내가 가지지 못한 좋은 점들이 많아 닮고 싶었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원래부터 책 읽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학창시절만 해도 책에는 관심도 없었다. 대학생이 되고서야 해은의 블로그를 훔쳐보며 해은이 추천한 책들을 읽기 시작한 게 내 독서 인생의 시작이다. 그리고 해은은 아마 또 모를 것이다. 요즘도 내가 그녀가 추천하는 책들을 다 읽어보고 있다는 사실을. 뉴스레터에서 종종 하는 일이라곤 추리소설을 읽은 것밖에 없다고 하지만 직장인의 짧은 여가시간에 그 많은 책들을 읽고 본인의 주관을 담아내 리뷰를 쓰는 일은 결코 간단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해은의 추리소설에 대한 깊이와 역량은 뉴스레터 39호에 실린 ‘미스터리는 이 키워드로 통한다. 삶의 질 상승을 위한 몇몇 검색어 추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일본의 MZ세대 추리소설 추천글에서도 느꼈지만 수많은 추리소설을 읽고 그 책들을 나름의 기준으로 분류하여 취향의 가지를 만든 후 정교하게 그 가지를 솎고 쳐내는 일은 실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해은의 글 덕에 ‘블루홀식스’와 ‘북다’라는 출판사를 알게 되었고 출판사별 발간되는 책의 일관적인 느낌까지 간접적으로 알았으니 이야말로 ‘손대지 않고 코 푸는’ 것과 같은 무임승차나 다름 없다. 거기에 번역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 해은과 일본 소설 번역가는 전부 김난주랑 양억관이더라, 하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의 일본 소설 번역가에 대한 지식이 아직도 그 수준에 머물러 있는 동안 해은은 더 많은 것을 탐독했구나 싶었다. 앞으로도 해은의 추리소설 이야기에 무임승차하겠다고 당당히 선언하니 많이 많이 써 주기를.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나 남이 연애하는 거 좋아하네

소녀의 로망

곁다리 라이프의 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