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의 HL
2025년, 어느덧 삼십대 중반이라기도 민망한 나이가 되었다. 되는대로 그때그때 눈앞에 놓인 것들을 해치우느라 급급했던 지난 몇 해를 보내고 나니 이제는 무언가 하나라도 손에 쥔 것이 있으면 좋겠다 싶다. 비록 1월 1일은 어영부영 넘어갔지만, 한국인에게는 한 번의 기회가 추가 제공되니 바로 구정! 그럴듯한 계획을 세워볼까 싶어 연휴동안 가만 앉아 빈 공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와중에 별별 잡념이 끼어든다. 다른 사람들이 적은 것들을 곁눈질하다가 영 눈돌아갈 것 같아 그냥 내맘대로 혹은 하던대로 한다. 2025년의 기대이자 하이라이트!
영화
올해는 한국영화계 대표감독(?) 두 명의 영화가 개봉한다. 봉준호의 미키17은 2월 말, 박찬욱의 어쩔 수가 없다는 하반기 예정이라고 한다. 두 감독의 모든 영화가 취향이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영화관객으로서 매너로 한 번은 봐줘야 할 것 같으니까 일단 기대작으로 꼽아본다. 추가로 나홍진 감독의 호프도 25년 개봉 예정이라고 하는데, 알리시아 비칸데르와 마이클 패스벤더가 나오는 황정민 주연의 SF 스릴러 영화라니 마카롱김치찌개같은 느낌으로 궁금하다. 해외의 영화라면 역시 캡틴 아메리카. 비록 내가 좋아했던 스티브 로저스는 떠나갔지만, 그 캡틴의 방패를 가져갔다면 '브레이브뉴월드' 이름값을 해주지 않을까. 그리고 이름값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일 것이다. 대단한 철학을 기대하진 않더라도 엔터테인먼트 측면에서는 늘 평균 이상의 만족감을 주었기 때문에 역시나 기대중. 존윅의 스핀오프라는 발레리나는 24년에도 기대작이었는데 25년에도 기대작이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는데, 부디 영화가 잘 뽑히길...! 제임스 건 감독의 슈퍼맨과 아바타 또한 궁금하고 기다려지는 작품 중 하나. 하나 더 추가해본다면, PTA가 연출하고 디카프리오가 주연한다는 소문의 그 작품... 스콜세지, 놀란, 스필버그, 타란티노 등과 함께했던 디카프리오가 PTA와 만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그러나 그 영화를 과연 내가 돈 주고 볼지...는 모르겠다)
최근 성수 어드메를 걷다가 우연히 무비랜드와 마주했다. 니가 말로만 듣던 걔가 바로 나야, 하듯 새침하게 서 있는 건물 앞에서 어쩐지 설렜다. 올해는 영화도 보고 힙플 겸 핫플도 방문하고 일석이조의 경험이 될 수 있게 다양한 독립영화관에 가보고 싶다. 라이카 시네마, 필름포럼, 에무시네마, 인디스페이스 등등!
전시
25년에 가장 기대되는 전시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계획중인 메트로폴리탄의 <인상주의> 소장품전이다!! 르누아르, 고갱 뿐만 아니라 반 고흐의 작품까지 온다고 하니 잔뜩 설레지 않을 수가 없는데, 또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벌써부터 걱정도 된다. 걱정과 기대가 동시에 되는 전시 또 하나, 리움미술관의 현대미술 소장품전이다. 사실 소장품전은 이벤트성이 부족한 것 같고 심심한가 싶은데 리움이라면, 게다가 로댕의 '칼레의 시민'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열일 제쳐놓고 갈 수밖에 없다. 거미 조각으로 유명한 루이즈 부르주아와 호박으로 유명한 쿠사마 야요이 개인전도 사뭇 기대중이다. 사실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아 한국 작가라고 하면 김환기, 이우환 정도만 떠올리는 수준인데, RM을 통해 대중에게 더 널리 알려진 듯한 물방울의 김창열 화백 또한 국현미에서 개인전이 열린다고 하니 놓칠 수 없다. 더하여, 작년 인왕제색도를 보며 반했던 기억이 있어 호암미술관에서 열린다는 겸재 정선의 전시도 잔뜩 기대 중이다.
24년에서 슬그머니 25년으로 미뤄진 서울시립사진미술관의 개관 역시 고대중이다. 스톡홀름에서 방문했던 포토그라피스카 사진 박물관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크게 기대했던 곳이 아닌데, 정말 힙 그자체여서 인상적이었고, '사진'이라는 매체이자 장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던 기회였다. 과연 서울은 어떤 가능성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게다가 앞으로 서서울관도 개관한다고 한다! 본관 외에도 북서울, 남서울에 무려 평창동에 있는 아카이브까지 시립미술관의 공간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고 고즈넉하여 마이페이보릿 중 하나인데, 하나씩 더해지는 공간들에 기대도 얹어본다.
...까지 써놓고 보니 또 역시나 서울 위주. 물론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타데우스 로팍 같이 여전히 서울에도 가지 못한 좋은 공간들이 많지만, 25년에는 좀 더 확장적으로 나아가볼까 싶다. 예를 들면 인천의 세계국립문자박물관, 청주의 국립현대미술관, 대전의 이응노 미술관 등등 여전히 가볼 곳이 너무나 많으니 좀 더 부지런해져야겠다.
책
책이란 건 영원히 뒤꽁무니만 쫓아다니게 되는 것 같다. 올해에 어떤 책을 읽을 것이라고 내세우기가 어렵다. 거창한 다짐을 해도 막상 손이 뻗어가고 시간을 내어 읽는 건 늘 읽던 그 분류인 경우가 많다. 늘상 읽어오던 분야의 책은 익숙하기에 쉽고 빨리 읽혀 책 한권을 완독했다는 성취감을 가질 수 있어서 더 끌리는 것 같다. 같은 시간이 주어질 때 얕더라도 더 많은 책을 읽을 것인지, 적더라도 더 깊은 책을 읽어낼 것인지 여전히 고민이다. 나에게 책이란 흥미나 즐거움에 가까워서 결국 전자를 택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 롱폼보다 숏폼을 더 찾게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인가 싶어 반성하게 된다.
그렇다면, 공개적으로 방향에 대해 다짐해두어 깊고 새로운 책을 한 권, 한 줄이라도 더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다. 25년 나의 독서 다짐은! 과학/기술 분야의 책을 피하지 말기, 시집 읽어보기, 사두었던 벽돌책들 해치우기(?) 그리고 영어 원서를 시도해보는 것이다. 세계를 넓히는 데 있어 주저하지 않는 한 해를 만들어 봐야지.
음악
몇 달 전부터 유투브의 온갖 플레이리스트 채널을 찾아다니는 재미에 빠졌다. 떼껄룩과 에센셜이 불러일으킨 열풍이 이젠 좀 잠잠한가 싶었는데, 감각적인 썸네일 이미지와 눈길을 끄는 카피 같은 제목으로 다양한 채널들이 우후죽순 생긴 덕분에 끝없는 알고리즘의 세계에 빠질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계 또한 AI가 침투해있었다는 것. 가장 중요한 음악부터 썸네일 생성까지 AI로 만들어내 하루에 하나씩 미친 속도로 업로드되고 있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감각적이네 하면서 즐기고 있었다. 구독을 취소하면서 생각하게 됐다. 이 미친 AI 세상에 계란을 던져보고 싶다. 이 무슨 다윗같은 거룩한 헛소리인가 싶긴 한데, 올해는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가며 음악을 들어보고 싶다는 뜻입니다. K-POP과 POP은 물론, 앰비언트 뮤직까지 섞어섞어 오롯이 나만의 취향으로 이루어진 정수의 플레이리스트를 쌓아나가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듣던 음악만 들으면 재미가 없으니까 디깅도 열심히 해볼 작정이다!!
그 외
시간이나 돈의 제한이 없다면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테니스 같은 새로운 운동 종목 배워보는 것, 더 많은 여행을 다니는 것, 모수 같은 파인다이닝을 경험해보는 것, 비싼 침대를 사는 것 정도만이 떠올랐다. 이토록 상상력이 빈곤해서야. 생각한대로 이루어진다는 게 시크릿같은 사짜가 아니더라도, 일종의 에너지가 있는 것 같긴 하다. 그러니 올해 나는 상상력을 넓힐 수 있도록 세계관을 넓히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살아봐야겠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