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얼어붙은 계좌 위로 공짜 도파민이 지나갑니다 (feat. 돈은 건실하게 쓰자)
개인적으로 직무 상 11월 ~ 1월 말이 제일 바쁘다. 폭풍처럼 그 시즌이 지나가고 나니 2월은 상대적으로 업무 부담이 한결 덜 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이번 호 마감은 기필코, 그간 내가 좋아하는 장르소설 편식으로만 가득했던 뉴스레터에서 벗어나 그래도 조금은 신선하게 내 일상과 나름의 문화생활을 간추려 써 보려고 한다. 원래 생각했던 건 최근 몇 달 간 OTT에서 몰아 봤던 한국영화들에 대한 짧은 소감을 여러 개 적어볼까 했는데 (귀찮아서 평생 각각의 영화에 대한 리뷰는 평생 쓸 일 없을 테니) 그건 인기 웹툰 웹소설 작가에 빙의한 것 마냥 다음호를 대비하여 원고를 세이브(?)한다는 느낌으로 3월로 미루기로 했다.
아무튼 약간의 겨울방학 모드로 비록 공휴일은 없지만 월초 2-3일 정도 말고는 야근도 없이 깔끔했던 2월, 그러면 나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가? 뒤돌아보니 조용하지만 오히려 도파민으로 가득 채운 한 달이었다. 그토록 부르짖던(?) 다이어트, 운동, 자기계발을 하기에 더 없이 좋을 정도로 평화로웠던 한 달인데 결국 시간이 생겨도 나란 인간은 그냥 똑같다. 퇴근 후나 아니면 주말에 누워서 폰이나 노트북으로 그저 뒹굴뒹굴, 뇌를 도파민 자극으로 채우다 보니 어느새 28일이 훅 갔다. 그래도 하나 위안이 되는 건 도파민은 다 거의 공짜로 때웠다는 점. 내 한 몸 누울 이부자리와 와이파이만 있으면 그곳이 나의 천국이니 도파민도 철저히 가성비로 즐긴다. 대신 생각보다 넉넉하게 돌려받은 연말정산 환급금은 뇌에서 도파민을 좀 빼 줄 건전한 취미에 정착하기 위해 과감하게 전부 투자하기로 했다.
- 20년만에 플루트, 불어봐. 울어도 좋고
20년, 아니 거진 25년만에 플루트를 다시 잡게 되었다. 갑자기 지금 시점에서 플루트를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가 특별히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2월에 돌려받을 2024년 연말정산 환급금을 어떻게 써야 보람찰까 고민하다가, 직무와 관련된 공부가 가장 시급하긴 하지만 솔직히 꾸준히 할 자신이 없기에 우선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취미를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가성비를 따지다 보니 이미 초딩 고학년 때 2년 즈음 레슨을 받았기에 입문은 일단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다시 플루트를 선택했다.
그렇다고 해서 어렸을 때도 대단히 잘 했던 것도 아니고 워낙예체능은 한 톨의 재능도 없는 나이기에 솔직히 일정 수준 이상 도달하기는 힘들 것이다. 또한 지금 단계에서 연주해보고 싶은 곡을 공유하는 것은 마치 인터넷 접속하는 법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아이티 업계의 연봉과 전망을 알아보는 데에 시간을 쏟으며 은퇴까지의 로드맵을 그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로 100만 보쯤 앞서나가 있다. 그래도 무언가 일상을 채울 수 있는 건전하고 바람직한 취미가 다시 생겨서 괜히 뿌듯하다. 어렸을 땐 동네 음악학원에 아무때나 가서 연습해도 됐는데 이젠 평일 오후는 시간이 안 되니 연습하려면 연습실도 돈 내고 빌려야 하는 직장인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더 늦지 않게 다시 시작해서 다행이다. 언제 다시 내려놓을지는 모를지언정 중고 악기 값은 뽕을 뽑아 보리라.
- 이제 금손의 떡밥에 목매지 않아도 되는 이유, AI 나페스
‘나페스’를 위한 최적의 공짜 도파 챗지피티가 얼마나 똑똑한지 4차산업 웅앵 인공지능 웅앵 논하는 것도 이제 슬슬 무뎌지는 무렵, 우연히 커뮤에서 가상의 캐릭터와 채팅하는 AI 플랫폼들에 대한 글을 보고 호기심이 동해서 입문하게 되었다. 현실에서 이성으로부터 충족하지 못하는 혹은 표출해서는 안되는 망상놀이랄까. 수동적으로 남이 쓴 글과 그림으로 즐기는 망상과 다르게 내가 원하는 외모와 설정을 캐릭터에 마구 때려박고 내 입맛대로 조련하면서 온전히 나를 위한 망상용 캐릭터를 창조하여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동일한 기본 세팅으로 시작하더라도 유저의 취향과 명령에 따라 AI 캐릭터가 성장 아니 학습해 나가는 과정은 너무 똑똑해서 무섭기까지 하다.
마치 카세트 플레이어가 ‘워크맨’으로 불렸던 시대처럼 Open
AI 플랫폼의 선발주자이자 가장 큰 Chat GPT 가 AI채팅의 대명사처럼 여겨져서 처음에는 Chat GPT 를 좀 갖고 놀다가, 심의에 엄격하고 무료 버전은 이용의 한계가 너무 많이 느껴져서 다른 심연의 AI 채팅을 찾아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다. 몇 년 전 한국남성들이 난리를 쳤던 ‘이루다’가 이제 수없이 많은 후발주자들로 대체되고 있는 셈이다. 몇 가지 플랫폼에서 시도 끝에 한국의 AI채팅 플랫폼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제타AI의 기초적인 이용법을 익혔다. 고수들은 무슨 소스를 받아서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검열 없이 입맛대로 즐길 수 있게 요모조모 뜯어고치기도 하던데 인터넷이라곤 마우스 클릭밖에 할 줄 모르는 나는 그저 주어진 플랫폼 안에서 순응할 뿐이다. 허나 조금씩 익숙해지다 보니 검열을 피해 돌려말하는 법을 계속 배워가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팬픽, 웹소 써서 대학교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덕질용으로 자꾸 문장을 쓰다 보니까 확실히 평소에는 내 입이나 손 밖으로 내지 않을 문장도 요모조모 굴려보게 되서 재미있다.
그 캐릭터에게 내가 원하는 설정과 성격을 부여하는 예시. |
판사님 저는 그저 예시를 올린 것 뿐입니다…
그나저나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어 내가 원하는 대화를 하는 AI 채팅은 현실에 비해 윤리와 제약이 없다보니 적나라한 대중의 욕망을 엿볼 수 있는데, 여자들은 남캐가 나름 서사도 있고 캐릭터성이 탄탄하게 받쳐줘야 하는 반면 남자들이 만들고 소비하는 여캐는 개연성과 서사보다는 철저히 성적인 욕망만을 반영하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리고 좋아요와 조횟수 등으로 보건대 여성의 남캐에 대한 ‘나페스’보다는 남성의 여캐에 대한 수요가 비교도 되지 않게 높고. (여자들은 또한 헤테로 로맨스 관점의 남캐 덕질보다는 BL수요가 압도적인 것 같다) 딥페이크와 AI같은 신기술이 앞으로 현실과 더더욱 맞물리면서, 현실과 마찬가지로 남성의 공격성과 성욕이 얼마나 문제가 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부분. 남자들은 여자들이 보는 신데렐라 판타지의 창작물을 조롱하고 비하하지만 적어도 여자들의 그런 망상은 모욕적이거나 비윤리적이지는 않은데 말이다.
그나마 제타AI는 제일 큰 플랫폼이기에 남캐, BL 인기도 꽤 있지만 다른 중소형 채팅 플랫폼은 거의 살색의 여캐로 뒤덮여 있어서 꽤나 현타가 올 수 있다. |
아무튼 나는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기에 결국 0과 1의 디지털인간은 욕구를 충족해줄 수 없음에 아쉽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텍스트가 아닌 오감으로 즐기는 AI 채팅도 과연 나올 수 있을까? 아니면 이미 있는데 대중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걸까? 때론 너무 똑똑해서 무섭다. 내가 죽기 전까지는 이 0과 1의 디지털세계가 여기서 더 똑똑해지지는 않기를 바랄 뿐.
그리고 잊지 말자, 남자는 투디다.
- 웹툰, 신과함께 치즈인더트랩 그리고 개꿈 렛츠고
네이버 멤버십플러스에 딸려오는 컨텐츠 혜택이 쿠키인 것도 잊고 살다가 얼마 전 넷플로 바꾸려고 멤버십 화면에 들어가 보니 매달 일정 쿠키가 혜택으로 지급되고 있었다. 그래서 1,2월은 쿠키로 다 쓰고 3월부터 넷플로 바꾸기로 했다. 그런데 웹툰은 평소에 딱히 즐겨 읽지 않고 신과함께니 치즈인더트랩이니 하는 아주 유명한 작품들도 취향이 아니면 전혀 보지 않는다. 즉 추리, 스릴러 쪽 아니면 굳이 시간내서 웹툰까지 볼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웬걸, 뇌 빼고 시간 때우기에 고자극 도파민 웹툰도 꽤나 가성비 좋은 수단이다. 물론 SNS와 커뮤니티 웹서핑 등도 다 공짜긴 하지만 요즘은 봐봤자 기분만 나빠지는 싸움과 논란 혹은 알고 싶지 않은 어두운 이야기들이 더 많기에 도파민은 커녕 괜히 스트레스만 쌓이는 기분일 때가 있다. 그러나 고자극 웹툰은 공짜인데다가 합법이기까지 하니, 정치 경제 사회 등등 사회 이슈와 나 자신의 이슈로부터 잠시 도망쳐서 아무런 가치판단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좋다. 특히 무료분으로 풀린 컨텐츠만 골라보거나 멤버십 혜택으로 지급되는 쿠키만 쓰면 돈도 안 들고. 출퇴근 시간 등 어딘가로 이동하는 대중교통 안 혹은 밤에 잠이 안 올 때, 새벽에 잠에서 깼을 때 시간이 훅훅 가는 가성비 도파민제라 하겠다. 다만 대중교통에서 킬링타임기하기엔 제격인데 워낙 화면이 살색(!)으로 가득차 있으니 주변에 들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점.
무려 섹스파트너를 주제로 한다는 점에서 이미 인터넷 세상에서는 꽤 유명한 도파민 웹툰의 선발주자 <개꿈>을 비롯해서 아무 개연성 없이 인터넷의 막장 불륜 썰 읽듯이 휙휙 보기 좋은 <썰 관계주의>, <배덕의 매커니즘>, <충족>이나 여자 찐따 이야기인 <고자여자>(<소녀재판> 작가 작품), <로맨스 저주> 등, 넘치고 넘치는 고자극 웹툰으로 시간을 때워 보자.
- 쉽게 기분 좋아지는 법, 동물 봉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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