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한국영화 이것저것 찍먹해본 썰 푼다.TXT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가 잘 되지 않으면 순식간에 OTT로 넘어오는 요즘, 영화의 가치를 극장에 가서 보느냐 마냐로 이야기하게 된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반대로 예전 같았으면 충분히 극장에서 개봉할 유명배우들의 영화도 OTT에서 단독개봉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영화 한 편 값의 가치만큼을 꼬박꼬박 지불하며 돈과 시간을 쓰는 올드한 방식으로는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영화들도 한번 볼까?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보게 되기도 한다. 쉽게 새로운 컨텐츠를 접할 수 있는 허들이 낮아진 만큼 이것저것 '찍먹'하기도 쉬워서 대중문화에 대한 편식이 고쳐지는 점은 실로 이 시대의 이점이라 하겠다. OTT시대의 이점을 한껏 누리며 그동안 넷플릭스에서 찍먹해본 한국영화 몇 편에 대한 감상을 공유해 본다.
- 타겟
신혜선, 김성균 등 A급 주연배우는 아니지만 그래도 B급 주연 정도는 될 배우들을 데리고 잘 못 만든 영화. 평범한 직장인인 여주인공이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사기를 일삼던 싸이코에게 잘못 걸리면서 일상이 무너지는 과정을 다룬 도시형 스릴러이다. 당근마켓의 성공 이후 스마트폰을 통한 개인 간의 중고거래가 비대면을 넘어 면대면으로도 자리잡은 요즘 시대에 딱 맞는 설정과 주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아무리 영화라지만 개연성 없고 현실성 떨어지는 전개, 예를 들어 당근에서 여자를 만날 목적으로 중고물품을 올리고 여자가 나올지 아닐지도 모르는데 그 구매자를 꼬실 생각에 신나한다던지(인터넷으로 여자를 만날거면 데이트 어플을 쓰지 않나 보통?), 동일한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같은 계정으로 사기를 반복하는데 잡히지 않는다던지 아무리 대포폰을 쓴다 해도 여기저기 배달 주문을 폭탄으로 하는데도 대한민국 경찰들이 추적을 못한다던지 등등.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영화를 직접 보면 엉성한 설정들이 눈에 띄게 많은 탓에 초반 이후 긴장감과 몰입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그저 2시간짜리 케이블이나 비디오용 영화 같은 느낌으로 전락하고 만다. 주연배우들의 좋은 연기와 설정이 빛이 바라서 아쉽다.
- 크로스
작년 넷플릭스에서 단독개봉한 형사 코미디. 왕년의 특수요원 출신이지만 지금은 유치원 버스기사 일을 하는 남편 황정민은 평소 강력계 형사 마누라 염정아를 내조하며 조용히 살고 있었으나, 어쩌다 보니 거대한 악의 음모에 휩쓸려 부부가 손잡고 함께 악에 맞서 싸우게 된다. 힘을 숨기고 있는 조신한 남편과 괄괄한 형사 부인이라는 진부한 조합에서 알 수 있듯이 크게 특색은 없는 버디물이다. 황정민, 염정아가 부부로 나오고 거기에 빌런으로 전혜진이 나올 정도이니 배우들의 연기는 보장되어 있고 또 재미가 없지는 않은데, 캐릭터 설정부터가 클래식한 버디물이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감성이 올드하여 2010년 이전 한국형 코미디 영화 느낌이다. 그래도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장면 없이 무난하게 전 연령대가 감상하기에는 좋다.
- 그녀가 죽었다
“내가 왜? 니가 죽으면 되는데.”
한국영화나 미디어에서 보기 힘들었던 독특한 싸이코 여주인공이 나온 것만으로도 이미 신선하다. 음침하고 변태같은 남주인공이 자신의 변태성 덕분에 인스타 셀럽인 여주인공의 실종을 눈치채고 그녀의 실종을 추적한다는 내용으로, 일종의 악으로써 악을 징벌하는 피카레스크 스릴러. 극장에서 봤으면 당연히 아까웠겠지만 넷플릭스에서 2시간 정도를 투자해서 보기엔 나쁘지 않다는 인상이다. 만들어 낸 가짜 자아와 가짜 현실이어도 겉모습에 속아 관심을 주는 사람들, 더 큰 도파민을 찾아 헤매며 채팅으로 자극을 부추기는 네티즌들 그리고 인간관계의 갈등이나 가엾은 동물들 등등까지 모두 거짓으로 지어내도 돈이 되는 인스타 셀럽 문화 등 SNS와 라방 문화가 키운 사회의 괴물들이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여주가 왜 그렇게 싸이코패스가 되었는지, 돈에 집착하는지 서사를 보여주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 같다. 추리소설을 많이 본 사람이라면 중반쯤에서 어떤 중요한 반전이 있을지 짐작은 가겠으나 그래도 처음 보는 듯한 신혜선의 싸이코 연기도 그렇고, 생각보다는 신선하고 괜찮았던 스릴러 영화.
- 서울괴담
이걸 내가 왜 봤더라? 그냥 누워있다가 괴담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길래 별 생각 없이 틀어놓고 맥주를 마셨는데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엉터리 영화. 이것이 바로 과거의 케이블용 혹은 비디오용 영화, 요즘의 OTT용 영화가 아닐까. 우주소녀, 몬스타엑스 등 유명 아이돌들을 대거 캐스팅한 것으로 보아 아이돌들 연기 포트폴리오 만들어 줄 목적으로 기획한 영화인 듯하다. 제발 이거 보는 사람 없게 해주세요!
작년 말 넷플릭스 개봉작 중 꽤나 화제가 되었던 영화이다. 강동원, 박정민, 차승원 등의 호화 캐스팅에다가 제작비도 300여억원이었다고 하니 처음부터 극장 개봉이 아니라 OTT에서 단독 개봉하는 영화가 요즘 들어 얼만큼의 위상을 갖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이 참여한 각본답게 영화의 흐름이 부드러우며 액션 장면들도 굉장히 웰메이드 느낌이고 "내 백성들이 나를? 왜?"하고 얼빠진 표정으로 묻는 광해군(차승원)이나 다양한 개성의 의병들 등 캐릭터도 잘 살린 편이라 역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꽤나 흥미롭게 볼 수 있을 듯 하다. 신분제가 있는 봉건사회에서 태어난 죄로 누구는 태어나자마자 노비이고 누구는 태어나기만 했을 뿐인데 평생 왕족, 기득권의 위치를 누릴 수 있었던 신분제에 대한 분노는 덤이다. 지금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돈가 권력으로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는데 하물며 옛날 조상들은 얼마나 불합리한 시대에 살았던 것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참한 삶을 살았을런지 새삼스럽게 반추하게 된다.
청소년 관람불가이기에 잘린 목 등이 심심찮게 나오고, 개인적으로는 중요한 장면들에서 한국어-일본어 통역병이 통역해주는 모습이 몰입을 방해한다 느꼈지만 이는 개인적인 호불호이리라. 결말에서 종려(박정민)이 천영(강동원)에게 평생 동안 갖고 있던 오해를 아무 증거도 없이 천영의 말 한마디로 깨닫는 급전개 또한 아쉽다.
- 탈주
공산주의 빨갱이가 어쨌네 저쨌네 하면서 촌스럽게 이념전쟁을 하지 않아도 민주주의가 세련되게 이기는 방법. 도전 그리고 실패할 자유가 있는 남한과 실패할 자유조차 없는 북한의 처절한 현실이 잘 대비된다. 극장 개봉 후 OTT로 옮겨 온 작품인데, 극장에서 봤어도 크게 아깝지는 않았을 것 같다. 중간에 아무리 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들이 몇몇 있고(이제훈과 홍사빈이 도망치던 중 자신들의 부대에 얼떨결에 합류하는데 부대 중 그 누구도 부상을 입고 뜬금없이 바깥에서 굴러들어와 중간에 껴든 그들에게 의문을 갖지 않는다) 아무리 주인공이라지만 이제훈이 그렇게 여기저기 총을 맞고도 밤새 걸어서 비무장지대를 통과하는 등 정말 징하게 안 죽는다 소리가 나올 정도로 주인공 버프가 너무하긴 하다. 또한 군사, 전쟁영화와 가장 거리가 먼 집단일 2030 여성 관중을 노골적으로 노린 듯한 미남배우들의 BL 코드들은 꼭 그래야 했나 하는 의문도 들지만.
- 화란
사실 <탈주>의 조연인 홍사빈이라는 남배우를 보고, 초면이고 굉장히 미남과는 거리가 먼 마스크인데 뜬금없이 왜 이렇게 잘나가는 배우들이랑 같이 영화를 찍나 궁금해서 필모를 찾아보다가 보게 되었다. 어려운 집안 사정과 가정 폭력, 그로 인해 돈이 필요한 10대들, 갈 곳 없고 돈 벌 곳 없는 10대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는 뒷골목 세계 등 처음부터 끝까지 암울하기 짝이 없이 어둡고 담배연기 자욱한 느와르이다. (송중기의 비주얼이나 그라는 배우 자체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송중기의 곱상한 비주얼로는 연상되지 않는 굉장히 새로운 역할이며 배우로써 다양한 시도를 하려는 모습이 느껴지며 홍사빈과 김형서(놀랍게도 작년에 '밤양갱 송'을 히트시킨 비비라는 가수이다!)같은 조연들의 연기도 훌륭하지만, 15세 이상 관람가가 맞나 싶을 만큼 과한 폭력성과 웃음기 싹 빠진 암울한 느와르가 관객에게 어필하지 못했던 것 같다. 겨우 40억원의 제작비로 만든 손익분기점 100만명짜리 영화였음에도 결국 총 26만여명으로 손익분기점을 달성하지 못했다.
- 베테랑2
한국 상업영화들 중에 굉장히 성공한 축에 드는 <베테랑>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역시나 극장가를 도배할 수 있는 대형 상업영화답게 캐스팅은 화려하지만, 1편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한 채 조용히 묻혔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판의 소위 CJ 감성이 많이 조롱당하고는 하는데, 베테랑 2편의 경우 요즘 들어 흔해진 소재이지만 사적제재라는 소재에 대해 나름대로 많이 생각하게 해 주는 등 1편보다 많이 어두워진 분위기이기에 전형적인 CJ감성 즉 신파, 국뽕, 오글거림은 굉장히 덜한 편이다. 단순한 선악 구도와 나쁜 놈 때려잡는 사이다 전개가 아닌 점은 영화적으로는 성숙한 발전이지만 주말에 시간을 때울 블록버스터 영화를 찾는 관객의 니즈에는 맞지 않았는지 천만 영화였던 전편과는 달리 750만명에 그치고 말았다. 극중 진범인 '해치'가 왜 그렇게 사적제재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풀어주었으면 좋았을 듯한데, 혹시 해치의 과거 이야기가 베테랑 3편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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