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25의 게시물 표시

의심하는 우리를 봐 의심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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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포스터부터 예고편,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보며 꼭 보겠다고 다짐했는데 시간은 점점흘러 개봉한지 두 달이 지나 서야 겨우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전형적인 상업 영화가 아니기에 영화관에 오랜 시간 걸려 있을 수 없었을 테지만, 우연인지 운명인지 실제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돌아가시면서 영화는 더욱 주목 받게 되었다. 그 결과 영화관에서도 조금 더 관을 남겨두는 결정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영화는 어느 노인의 긴박한 뒷모습을 따라가며 시작된다. 긴장감 넘치는 음악과 노인의 불안하면서도 긴장된 걸음과 그와 함께 음향을 채우는 숨소리는 시작부터 영화에 몰입하기에 충분했다.  교황이 죽으면 전 세계의 추기경들은 바티칸으로 모인다. 추기경들이 생활하는 성녀 마르타의 집과 투표가 이루어지는 시스티나 성당은 철저히 외부와 차단된다. 창문의 진동으로도 정보를 알아낼 수 있기 때문에 작은 창문 하나하나 까지 모두 차단막이 설치된다. 마치 영화를 보는 나도 시스티나 성당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콘클라베의 기획과 관리를 맡은 토마스 로렌스 추기경의 시선을 따라가며 콘클라베가 진행되는 과정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볼 수 있었다. 추기경들 각각의 내밀한 감정과 사건들이 드러나고 갈등이 휘몰아쳤다가 결국은 하나의 점으로 귀결되는 과정이 아주 촘촘하게 짜여져 있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펙타클함도, 통쾌한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영화의 미술과 음악 또한 놓칠 수 없는 요소이다. 흰색과 검은색, 붉은색과 금색의 대비는 마치 누구나 가지고 있는 선과 악 사이에서의 갈등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현악기가 만들어내는 엄청난 긴장감은 이 영화의 장르가 스릴러로 구분되는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신앙인으로서 특히 마음에 와닿았던 부분은 콘클라베 투표를 시작하기 전 로렌스 추기경의 설교 말씀이었다.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게된 죄는 확신입니다. 확신은, 화합과 포용의 큰 적입니다....

토끼는 왜 죽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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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라일리의 『The Book of Bunny Suicides』는 어두운 유머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컬트적인 인기를 끌어온 그림책이다. 이 책은 말 그대로 토끼들이 ‘기발한 방식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들’만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글은 거의 없고, 흑백 만화 형식의 한 컷 또는 두 컷짜리 그림들이 전부다. 그러나 바로 그 간결함 속에서 이 책은 예상 밖의 강렬한 감정, 충격, 그리고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책 속 토끼들은 전기 토스터에 뛰어들고, 스타워즈의 라이트세이버에 몸을 던지고, 물고기와 함께 드라이어에 들어가기도 하며, 온갖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그 장면들 하나하나가 매우 창의적이고 때로는 블랙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하다. 폭력이나 피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잔혹하진 않지만, 주제가 주제인 만큼 보는 이의 윤리적 감수성에 따라 해석은 갈릴 수 있다. 특히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자살이라는 주제를 너무도 유쾌하게, 그리고 거의 터무니없이 다룬다는 점이다. 토끼는 원래 귀엽고 연약한 생명체의 상징이다. 그런데 그런 토끼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벌인다는 설정 자체가, 이미 현실의 감각을 무너뜨리고 기이한 반전의 유머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 책을 단지 웃긴 만화로 소비하기엔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있다. 죽음을 ‘가볍게’ 다루는 것에 대한 불편함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특히 자살을 주제로 한 유머가 모두에게 통용될 수는 없다는 점, 그리고 일부 독자에겐 이 책이 불쾌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 Book of Bunny Suicides』는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부가 팔렸고, 이후 여러 권의 후속편(Return of the Bunny Suicides, Dawn of the Bunny Suicides 등)을 낳으며 블랙 유머 장르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풍자, 패러디, 자학적 유머, 팝 컬처와의 교차 등이 잘 버무려진 이 책은, 단순한 우스개가 아닌 현대 사회의 허무감과 피로, ...

what's in my c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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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at's in my bag 콘텐츠는 인기가 사그라들 것 같다가도 꾸준히 붐업되는 걸 보면 스테디가 된 듯 하다. 개인적으로도 꽤 흥미롭게 보는 주제인데, 지금 난 가진 게 없어서 (무소유 정신 이런 게 아니고 정말 돈이 없어서) 왓츠인마이백을 할 수는 없고 갖고 싶어서 고민만 오천만번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소개해봅니다. 대체로 나의 소비는 38,000원 미만이면 충동구매로 지르고(+후회하고), 그 이상이면 한참을 고민하며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다 결국 안 사는 엔딩이 많기 때문에 아마 소개할 모든 아이템이 내 기준의 고가인데 그렇다고 해서 또 못 살 만큼 터무니 없지는 않은 그런... 가격대임을 미리 고백해봅니다. 1. NUMBERING #1901 워치 브레이슬릿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사실은 그냥 시계모양이고 다만 시계판 대신 얇고 납작한 판떼기가 있는 팔찌이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정말 별 거 아닌데 왜 그렇게 예뻐보이는걸까. 가끔 무신사 행사할 때 인기상품 리스트를 보다보면 항상 껴있던 제품이라 알게 되었는데, 우연히 지인의 실착한 모습을 보고 반해버렸다. 공홈 기준 정가 22만원인데 사실 그 가격을 주고 살 건 아니고, 나에게 300만원쯤 소비하도록 쿠폰같은 걸 발급해준다면 고민해볼지도... 2. 카시오 시계 넘버링이 예뻐보이는 사람이라면 까르띠에 탱크를 사랑하리라 확신한다. 그러나 까르띠에의 시계는 내돈내산이 쉽지 않으니 카시오로 대충 합의를 볼 수 있다. 카시오 시계 중에 의외로 명품과 유사한 느낌적 느낌을 가진 디자인이 많이 있더라. 그러나 당연히 이런 생각은 나만 하는 것이 아니어서 유명 모델들은 품절이거나 국내에서 구하기 어렵거나 프리미엄이 붙었거나 그렇다. 아니 그치만 그돈씨...(...) 3. 일광전구 snowman 오늘의집, 29cm 등의 쇼핑몰을 구경해본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 없는 브랜드 일광전구. 어쩐지 올드한 느낌의 브랜드 네임과는 반대로 굉장히 트렌디한 디자인을 뽑아내고 있다. 특히 snowman...

친절함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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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의 일이다. 스타벅스에서 돌체라떼를 주문하면 추가로 별 적립을 해 줬던가, 음료 쿠폰을 줬던가, 여하튼 그런 종류의 이벤트를 하고 있어서 행사기간이 끝나기 전에 혜택을 받아보겠다고 사이렌 오더로 주문을 하고 나니 그제야 ‘오후 2시 이후’ 주문 건만 이벤트 대상이 된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사이렌 오더는 취소가 되지 않는다는 걸 익히 알고 있지만 아직 음료가 나오지 않은 참이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음료가 나오기 전에 부랴부랴 매장으로 달려갔다. 오! 다행히 내 돌체라떼는 아직 제조 전이었고 밑져야 본전이니 파트너에게 혹시 취소가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파트너가 무슨 이유인지를 물었고 안 된다고 하면 굳이 취소하겠다고 우길 마음까진 없었던 나는 솔직하게 그냥 이벤트 대상이 아니어서 취소하고 싶다고 답했었다. 스스로도 그 답이 우습다고 생각하면서.    내 대답을 들은 파트너는 꽤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그런 이유로는 안 될 거 같다고 했다. 그럼 어떤 이유라면 사이렌 오더 취소가 가능한지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더니, 취소가 가능한 사유에 대해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고 얼버무리는 게 아닌가. 애초에 사이렌 오더는 취소가 안 된다는 걸 알았으니 단칼에 거절했더라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을텐데 해 줄 것처럼 물어보고 해 주지 않아서, 또 명확히 답을 주지 않고 얼버무리는 태도가 마치 자의적으로 사유를 판단해서 취소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만 같아서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었다. 불쾌한 티를 숨기지 못하고 쌀쌀맞게 돌체라떼를 받아서 나오는데 사실 그 직원으로서는 최대한 나를 도와주고 싶어서(지금도 딱히 취소 사유가 될 만한 사연이 떠오르지 않긴 하는데 당시 그 파트너의 태도로 짐작건대 누가 보아도 너무 안타까운 사연이었더라면 취소해 주지 않았을까 싶다) 친절을 베푼 건데 왜 이걸로 기분이 나빠졌을까 싶었다.    어차피 들어 주지 못할 거면 가타부타 길게 말을 붙이지 말자고 평소 일할 때 자주 되새기곤 하...

읽어봤자 내가 아는 그 맛? 근데 이제 그 아는 맛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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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떠돌던 다이어트 자극 문구 , 짤 중의 하나 , ‘ 먹어봤자 어차피 니가 아는 그 맛이다 ’ 라는 말이 있었다 . 그렇지만 아는 맛이니까 맛있는 걸 알아서 먹고 싶은 건데 어쩌란 말인가 ? 어디에서나 규격화된 맛과 퀄리티가 보장된 프랜차이즈를 찾는 것도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 창작물도 아는 맛이 친숙하고 편하고 무엇보다도 최소한의 퀄리티를 기대할 수 있기에 ‘ 믿고 보는 ’ ㅇㅇㅇ라는 말이 있을 것이다 . 그러나 창작자는 무생물이 아니기에 프랜차이즈 음식처럼 항상 똑같을 수 없다 .  잘 아는 맛이라서 오히려 항상 먹고 싶은 포테이토 피자를 먹으며,  이번 호에는  올해 접한 몇몇 유명 작가들의 '원래 알던 맛보다도 못했던' 리스트를 한번 써 보았다.    l   도진기 < 정신자살 >   집에서 가까운 대림도서관 대신 회사 근처 출퇴근 동선에 있는 강남구 작은도서관인 논현도서관을 주로 가기 시작하면서 논현도서관에 있던 도진기 소설을 다 빌려다 보았다 . 그 중 변호사 고진 시리즈 중 한 권인 < 정신자살 > 은 잘 나가다가 어이가 없는 정도를 넘어서서 기괴하고 기분이 나빠질 정도의 엔딩이었다 . 역시나 사람 생각하는 건 다 비슷해서 그런지 알라딘 독자 서평도 도진기 저서 중 눈에 띄게 낮은 편이다 . 한국 추리소설 작가 중에 가장 좋아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도진기 아저씨인데 … 나의 (?) 도진기는 이렇지 않다능 … 이런 약간의 흑역사 작품도 있었구나 싶어서 좀 인간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 그래도  비슷한 시기에 읽은  < 붉은 집 살인사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