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함에 대한 단상

 


  오래 전의 일이다. 스타벅스에서 돌체라떼를 주문하면 추가로 별 적립을 해 줬던가, 음료 쿠폰을 줬던가, 여하튼 그런 종류의 이벤트를 하고 있어서 행사기간이 끝나기 전에 혜택을 받아보겠다고 사이렌 오더로 주문을 하고 나니 그제야 ‘오후 2시 이후’ 주문 건만 이벤트 대상이 된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사이렌 오더는 취소가 되지 않는다는 걸 익히 알고 있지만 아직 음료가 나오지 않은 참이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음료가 나오기 전에 부랴부랴 매장으로 달려갔다. 오! 다행히 내 돌체라떼는 아직 제조 전이었고 밑져야 본전이니 파트너에게 혹시 취소가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파트너가 무슨 이유인지를 물었고 안 된다고 하면 굳이 취소하겠다고 우길 마음까진 없었던 나는 솔직하게 그냥 이벤트 대상이 아니어서 취소하고 싶다고 답했었다. 스스로도 그 답이 우습다고 생각하면서. 

  내 대답을 들은 파트너는 꽤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그런 이유로는 안 될 거 같다고 했다. 그럼 어떤 이유라면 사이렌 오더 취소가 가능한지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더니, 취소가 가능한 사유에 대해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고 얼버무리는 게 아닌가. 애초에 사이렌 오더는 취소가 안 된다는 걸 알았으니 단칼에 거절했더라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을텐데 해 줄 것처럼 물어보고 해 주지 않아서, 또 명확히 답을 주지 않고 얼버무리는 태도가 마치 자의적으로 사유를 판단해서 취소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만 같아서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었다. 불쾌한 티를 숨기지 못하고 쌀쌀맞게 돌체라떼를 받아서 나오는데 사실 그 직원으로서는 최대한 나를 도와주고 싶어서(지금도 딱히 취소 사유가 될 만한 사연이 떠오르지 않긴 하는데 당시 그 파트너의 태도로 짐작건대 누가 보아도 너무 안타까운 사연이었더라면 취소해 주지 않았을까 싶다) 친절을 베푼 건데 왜 이걸로 기분이 나빠졌을까 싶었다. 

  어차피 들어 주지 못할 거면 가타부타 길게 말을 붙이지 말자고 평소 일할 때 자주 되새기곤 하는데 ‘아이고 그 파트너 왜 괜히 길게 말을 붙여가지고 안 들어도 될 욕을 먹네(물론 욕은 안했습니다)’ 불현듯 안타까워지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애매한 친절은 오히려 화를 불러일으키고 아예 단호하게 굴어버리면 화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일종의 심리학 이론 같은 것이겠지, 기대할 거리가 있으면 더 크게 좌절하고 기대를 품을 싹을 아예 잘라버리면 좌절할 일도 없는. 어쨌든 그 일로 친절함이란 뭘까, 종종 그 스벅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생각했다.

  가장 비슷한 사례로는 카드나 보험 영업 전화를 들 수 있지 않을까.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귀찮은 각종 영업 전화들. 여론조사 같은 기계음이라면 일말의 미안함 없이 단칼에 끊어버릴 수 있지만 사람이 거는 전화는 그러기가 조금 미안하다. 언제나 끊어야 하나… 타이밍을 재고 있자니 대체 말 속도가 너무 빠르고 조금도 쉬는 틈이 없어 도통 말을 끊을 수가 없다. 저래서야 듣는 사람이 진짜 관심이 있다 한들 영업이 되려나 싶지만 그들도 어차피 진짜 영업할 생각은 없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 역시 내 시간을 조금이라도 덜 뺏고자 하는 일종의 친절함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차저차 끼어들 타이밍을 잡아 지금 통화가 좀 곤란해서요, 이야기 하면 더러는 붙잡기는커녕 그쪽에서 시간낭비 했다는 듯 먼저 끊어버릴 때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반대로 내 애매한 친절이 그들을 방해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물론 전혀 미안하진 않다^^) 어차피 관심이 없다면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든 말든 말하는 도중에 확 끊어버리는 게 더 친절한 일일까, 이건 여전히 고민인 부분이다.

  그런가 하면 길거리에서 나눠 주는 전단지 같은 경우는 기왕이면 다 잘 받아 주는 편에 속하는데 그건 일단 받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고 나눠 주는 사람 입장에서도 내가 그 전단지에 영업을 당해야만 실적이 달성되는 게 아니라 그저 받아 주기만 해도 실적이 달성되는 것이므로 약간의 친절로 거둘 수 있는 효과가 확실해서 좋다. 물론 내가 받아 처리함으로써 전단지의 영업이 실질적으로 필요한 사람에게 가닿지 못한다는 사회적 손실(?)은 있겠으나 솔직히 그런 건 어쩔 수 없는 필요악 아니겠는가. 거기에 더해 때때로 내 인생에 운수가 더럽게 없다고 느껴질 때는 이렇게 전단지를 받는 친절로라도 운수를 더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일본의 국민영웅으로 불린다는 메이저리거 오타니 쇼헤이는 남이 버린 운을 줍는 마음으로 쓰레기를 줍는다던데 나 같은 소인배는 쓰레기는 못 줍고 그저 길거리 전단지 정도에 내 운수를 맡기는 것이다.

  그와 별개로 가끔 선행을 베풀기도 하는데 솔직히 베풀면서도 이게 나중에 다 내가 힘들 때 돌아오기를 혹은 나한테는 돌아오지 않아도 내 아이에게 돌아오기를 바라곤 한다. 그렇다면 이건 순수한 친절이 아닌 걸까, 그렇지만 베풀지 않은 것보다는 나은 것 아닐까, 결국 순수한 친절이란 없는 걸까, 이리저리 생각하다 보면 또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우리는 누구나 아무 이유나 대가 없이 남을 도와 주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 아이고 생각할 수록 복잡한 친절의 세계. 

  그런데 그렇게 파고 들다 보면 사실 가장 좋은 것은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그대로, 본연의 나대로 행동해도 선을 넘지 않고 친절한 것이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이른다. 지금은 훨씬 덜하지만 예전만 해도 사람들을 만나고 오는 길이면 늘 내가 했던 말을 일일이 복기하며 실수한 건 없는지 남을 불쾌하게 한 건 아닌지 신경을 쓰느라 머리가 다 아팠다. 그럴 때면 이렇게 고민하지 않고 그냥 나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해도 친절한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사람이 되려면 얼마나 인격적으로 수양을 해야하는 걸까 생각하곤 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 그런 고민을 잘 안하는 이유는 딱히 인격적으로 성숙해져서는 아니고 오히려 상대방을 믿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개떡처럼 말했어도 네가 찰떡처럼 걸러 들었겠지. 상대방의 친절함에 대한 믿음.

  이번에는 얼마 전의 일이다. 아주 오랜만에 언론고시를 같이 하던 스터디 멤버로부터 시간이 되면 다 함께 만나자는 카톡이 왔다. 더 자세히 적자면 스터디 멤버 a, b, c, 나 이렇게 넷으로 구성된 모임이었는데 예전부터 혼자만 성별이 다른 c(남)만 빼고 a, b, 나(전부 여) 이렇게 셋이는 아무래도 조금 더 친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언론고시를 포기하고 아주 다른 길로 접어들고부터 a, b 둘만 교류하는 일이 잦아지더니 나에겐 공유되지 않은 이야기들도 많아졌다. 티는 못냈지만 솔직히, 좀 서운했다. 그래도 가끔씩이나마 주기적으로 보는 모임이긴 했으니 오랜만에 온 카톡이 반갑기도 했으련마는 여전히 a, b는 자주 연락하고 있는 거 같다는 사실에 이상하게 서운한 마음이 더 먼저 들었다. 그래서 한참을 고민하다 못 갈 것 같다고 거절했다. 애매한 친절은 화를 일으키니 단칼에 단호하게. 내 용심을 걷어내고 생각하면 정말 오랜만에 내가 보고 싶어서 같이 보자고 연락한 것일텐데 왜 그 친절함이 그리 씁쓸하게 느껴졌는지. 나이가 사십이 다 돼도 친절하기가 이렇게 어렵다.


덧붙이는 단상) 스타벅스와 친절함 하니 친절함의 아이콘과도 같던 스타벅스 마포경찰서 후문점 파트너가 떠오른다. 아마도 닉네임이 SENA였었다. 스벅 파트너들은 대체로 친절하지만 그 분의 친절함은 개중에서도 돋보였다. 늘 해사한 얼굴에 의례적이지도 선을 넘지도 않는 적절한 안부인사, 심지어 애기도 엄청 귀여워해 주었다. 이사가는 날이 다가올 때 꼭 그 분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싶어 근처 맛있는 디저트 집에서 마들렌 세트를 하나 사서 아저씨 같은 농담(원래 남이 주는 거 의심 없이 막 먹으면 안되는데 제가 주는 건 믿으셔도 된다고;; 진짜 개저씨 같은 멘트를 했는데, 이게 다른 의미가 아니라 그 당시엔 진짜 세상이 흉흉하니 아무리 인상 좋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도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건 조심해서 먹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농담 섞어 일러줬던 거 같다ㅎ)과 함께 건넸는데 다른 직원들까지 같이 나와 내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해 준 것이 기억난다. 지금 생각해도 아무 사심 없이 서로에게 친절함을 주고 받은 아주 산뜻한 기억이다. 조금 더 친절해지자, 친절하면 자다가도 마들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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