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는 왜 죽고 싶었을까
앤디 라일리의 『The Book of Bunny Suicides』는 어두운 유머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컬트적인 인기를 끌어온 그림책이다. 이 책은 말 그대로 토끼들이 ‘기발한 방식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들’만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글은 거의 없고, 흑백 만화 형식의 한 컷 또는 두 컷짜리 그림들이 전부다. 그러나 바로 그 간결함 속에서 이 책은 예상 밖의 강렬한 감정, 충격, 그리고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책 속 토끼들은 전기 토스터에 뛰어들고, 스타워즈의 라이트세이버에 몸을 던지고, 물고기와 함께 드라이어에 들어가기도 하며, 온갖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그 장면들 하나하나가 매우 창의적이고 때로는 블랙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하다. 폭력이나 피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잔혹하진 않지만, 주제가 주제인 만큼 보는 이의 윤리적 감수성에 따라 해석은 갈릴 수 있다.
특히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자살이라는 주제를 너무도 유쾌하게, 그리고 거의 터무니없이 다룬다는 점이다. 토끼는 원래 귀엽고 연약한 생명체의 상징이다. 그런데 그런 토끼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벌인다는 설정 자체가, 이미 현실의 감각을 무너뜨리고 기이한 반전의 유머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 책을 단지 웃긴 만화로 소비하기엔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있다. 죽음을 ‘가볍게’ 다루는 것에 대한 불편함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특히 자살을 주제로 한 유머가 모두에게 통용될 수는 없다는 점, 그리고 일부 독자에겐 이 책이 불쾌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 Book of Bunny Suicides』는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부가 팔렸고, 이후 여러 권의 후속편(Return of the Bunny Suicides, Dawn of the Bunny Suicides 등)을 낳으며 블랙 유머 장르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풍자, 패러디, 자학적 유머, 팝 컬처와의 교차 등이 잘 버무려진 이 책은, 단순한 우스개가 아닌 현대 사회의 허무감과 피로, 권태에 대한 또 다른 표현 방식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왜 토끼는 그렇게 죽고 싶어 했을까?” 물론 작가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는 웃음 속에서 불편함을 마주하고, 그 불편함 속에서 다시 웃게 된다. Bunny Suicides는 그런 식의 유쾌한 역설이다.
Bunny Suicides 그림컷 보기:
https://www.theguardian.com/books/gallery/2007/oct/18/bunny.suici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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