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신고가 상투 잡고 지각비 3천만원 냈는데 인생 괜찮습니까? 괜찮습니다.
5월 뉴스레터에서 아파트 매매 준비를 처음 시작하면서 느낀 감정과 소회(?) 등을 간략하게 적었었다. 겨우 5월에 공부를 시작했는데 기승전결 없이 바로 결론으로 폭주한 느낌이지만, 결국 이런저런 상황 판단과 사정 등이 겹쳐서 6월 초에 후다닥 매매 계약을 하게 되었다. 5월에는 집 매매 계약에 필요한 기초적인 상식, 과정, 정책 등을 찾아보고 또 살 만한(live) 동네를 몇 군데 임장하면서 예산과 대출 범위 내에서 살 수 있는(buy) 동네 후보를 추린 후에는 매물도 실제로 보러 다니고… 그런데 올해 상반기 수도권 부동산 분위기가 워낙 불장이다 보니 내가 보고 있던 집들도 자꾸만 호가가 슬금슬금 오르거나, 임장 후 괜찮겠다 싶어 며칠 고민 후 연락하니 이미 계약이 진행 중이라는 답변을 듣기도 했다. 정권 교체기와 겹쳐 매수심리가 더 조급한 시장인 듯한데, 그리하여 원래 생각하던 예산 한도에서 3천만원 오른 호가로 상투를 잡아버렸다. 오늘(7월 8일)기준으로도 아직 우리의 6월 11일 계약이 최고가로 박제되어 있다. (2022년 분양 시작 이후) 그래도 6월 7일에 계약한 다른 최고가도 있어서 위로가 되긴 하지만. 참고로 대단한 고가 아파트 이런 건 전혀 아니다. 그냥 두 사람 모은 돈과 LTV 70%로 대출 꽉 채워서 갈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을 뿐.
아무튼 계약 전까지는 정말 정신없이 흘러갔고, 어찌어찌 계약을 끝내고 계약금을 쏜 후에는 입주하면서 빈 집에 채워 넣어야 할 가전 / 가구 / 인테리어 등의 정보 찾기에만 거의 시간을 썼다. 핑계 같은 게 아니고 달리 뉴스레터로 공유할 문화생활 거리가 없다는 핑계가 맞긴 하다. 그러나 서로의 ‘경험’에
무임승차한다는 우리 뉴스레터의 의의를 되새겨보자면 반드시 문화적인 경험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물론
우리 뉴스레터 친구들 중에 이미 나보다 먼저 집을 산 경험이 있는 친구들도 있기에 내 경험 값어치가 그닥 비싸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아파트를 신고가로 매매한다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주’ 경험하는 일은 아닐 테니 조금은 텍스트로 남겨 놓고 싶다.
1)
집을 사는(buy) 가장 중요한 이유, 살기(live) 위해. 몇
년 전 귀국 후 계속 캥거루족으로 서울 본가에서 출퇴근하고 있었으나 내년 봄에 본가 아파트가 재건축으로 인하여 이주가 확정되면서 일단 지금 사는
집에서는 무조건 나가야 한다. 재건축 공사 기간 동안 아마도 부모님은 경기도에 있는 돌아가신 조부모님
집에서 지낼 듯한데 내가 그 동네에서 지금 회사로 출퇴근하려면 하루에 왕복 3시간 이상이 걸린다. 이런 이야기를 남자친구와 나누다가, 만난지도 꽤 됐고 각자 모은
돈을 합치고 벌이도 합칠 경우 대출을 갚을 여력이 충분하니 슬슬 집을 마련해도 되겠다는 결론이었다. 물론
실제 계약에 이르기까지는 예산, 출퇴근, 동네환경, 아파트와 집 각각의 상태 등 수많은 요소들을 두고 고민하고 싸우고 합의했지만.
아무튼 심플하다. 살아야 하기에 샀다!
2)
같이 살 거면 전월세로 살아도 되는데 왜 영끌까지 해서 매매했나? 어차피 전세, 월세를 살아도 현금이 나가는 건 마찬가지인데 전세대출
이자나 월세는 각각 은행/집주인에게 고스란히 나가는 비용(PL)이고, 내 집에 낀 부채는 자산(BS)이다. 전세대출 없이 있는 돈으로만 전세 살면서 돈을 모아도 되겠지만 내가 대출 없이 들어갈 수 있으며 강남 출퇴근이
가능한 집은 낡은 빌라, 오피스텔뿐이다. 물론 대출 원금만
부채고 대출에 따르는 이자는 비용이긴 하지만 남의 집에서 살면서 나가는 비용이 아니라 내 집에서 내 가족과 살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다. 내가 1인가구거나 2인이라도 30대 초반 이하로 젊으면 싼 전월세 살면서 돈을 더 모으는 선택이 나을 수 있겠으나, 둘 다 나이도 있는 상태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내 집에 산다는 안정감이야말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장 큰 가치라고 보았다.
3)
투자가 아니라 실거주이지만 그래도 현금가치 하락에 따른 인플레이션 헷징의 개념으로 본다. 당연히 2)와 같이 전월세가 싼 빌라 등의 대안을 찾으면 대출 없이도
당장 거주할 공간 마련은 가능하고 주담대 대출 이자보다 현금 자체는 훨씬 덜 쓸 수 있다. 그러나 현금만
쥐고 있기에는 현금의 가치란 시간 지날수록 절하되기 마련이므로 현금을 대신할 ‘실물’ 자산으로 지금 내 현금과 맞바꾸었다고 치면 된다.
앞으로 오를지 내릴지 보합할 지 그건 나 따위의
안목으로는 알 수 없지만,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한 한국에서 수도권 신축 아파트는 어느 정도 하방이
견고한 자산이라 생각한다. 물론 분명 떨어지는 시기도 있을 것이고 기분이 썩 좋지는 않겠지만 내가 산
가격보다 이 아파트의 가격이 떨어진다 한들 이 집(자산)이
내 소유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급한 사정이 생겨 울며 겨자먹기로 후려쳐서 팔아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겠지만 2)에서도 똑같이 강제로 퇴거해야 하는 일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결국 남의 집이니까. 전세가가 폭등하거나 월세를 갑자기 올리거나
집주인이 이제부터 자기가 여기서 살아야 한다고 나가라고 하면?
4) 결심한 배경은 알겠는데 그럼 왜 당장 지금인가? 사실 이 질문이 가장 어렵고 또 부동산 커뮤니티들에서 사골과도 같이 늘 싸우는 주제일 것이다. 집값이 오를 것인가, 내릴 것인가, 언젠가는 살 생각이라면 어느 정도 가격대에서 사야 하나? 인터넷에서 대충 싼 옷 샀다가 에이 사이즈 안 맞네 하고 내팽겨치고 배민에서 리뷰수 많은 거 믿고 주문했다가 맛없어서 다신 안 시켜! 하고 잊어버리는 소소한 소비와는 차원이 다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모은 돈을 들고 평생 갚아야 하는 대출을 일으켜야 하는 소비이다 보니 그만큼 모두가 절박하고 실패하고 싶지 않아 한다. 그건 평범한 직장인인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주식 등 다른 투자도 마찬가지로 어차피 일개 개인이 정확히 저점을 판단하여 매수할 수 있을 리 없고 그저 지금 판단 가능한 객관적인 정보만 추려보았을 때 1. 2027년까지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은 공급의 씨가 말랐다고 한다. 2. 과거 데이터에 비추어 보았을 때 나 혼자든 아니면 둘이 합치든 월급 오르는 속도와 저축하는 속도가 수도권 아파트 오르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고 보았다.
물론 새 정부 출범 이후 주담대를 6억까지로 제한한 6.27 대책이 나왔고 이에 따라 다양한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으나 우리가 매매한 가격대 아파트에는 적어도 악영향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고가 주택이 아니기에 LTV 70% 적용해도 6억 이상 주담대가 필요 없어서 어차피 6.27 대책의 영향 바깥에 있고, 6억 미만 대출로 수도권에서 신축을 노리는 수요층에게는 변함 없는 선택지가 되기 때문이다.
다만 지각비 2-3천만원을
낸 선택이 잘 한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지각비 3천만원이면
평범한 직장인이 1년 내내 허리띠 졸라매고 저축해도 만들기 어려운 목돈이다. 여기가 워낙 대단지라서 단지별로 특징도 가격도 다 다른 아파트인데, 조금
아껴서 하위 단지로 갈 걸 그랬나 싶은 후회는 있다. 내가 잡은 상투가 국토부에 실거래가 신고된 이후
같은 단지 내 동일 평형 기준으로 아직 이를 뛰어넘는 신고가 실거래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미 거래되었는데
신고 전일지는 모름) 그러나 간간히 현재 나와있는 매매 매물들을 보면 적어도 집주인들이 이 신고가 미만으로
호가를 내릴 생각은 아직 없어 보인다.
확증편향과 '나는 맞을 거야'라는 편향에 갇히기 않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그래도 나는 2025년 6월 나의 결심이 그때의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이미 되돌릴 수 없다. 신축 아파트고 뭐고 내가 들어가서 살기 전에는 그저 좁은 콘크리트 덩어리일 뿐. 그곳을 나와 내 가족이 발 뻗고 편히 살 둥지로 만들지, 대출금과 이자 내느라 허리가 휘어지는 애물단지로 볼 지는 내 마음에 달렸다.
*이 글은 철저하게 개인의 주관과 판단으로 쓰여진 일기이며, 절대 부동산 매매와 대출을 부추기는 권유성 글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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