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갓’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제 갓을 떠올리면 조선의 선비나 사극의 한 장면보다도 먼저, KPop Demon Hunters의 저승사자 아이돌, 사자보이즈가 먼저 떠오를지도 모른다. 애니메이션의 첫 등장부터 강렬했던 이들은 전 세계 팬들을 단숨에 사로잡았고, Your Idol은 각종 글로벌 음원 차트를 휩쓸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악령 캐릭터들의 실루엣이다. 날렵한 검은 복장에 갓을 쓰고 등장하는 그들의 모습은, 전통과 현대, 저승과 무대를 가로지르는 이미지다. 갓은 이제 K-콘텐츠가 재구성한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어령은 오래전부터 갓을 하나의 문화적 기호로 분석해왔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붕은 건축의 모자이고, 모자는 인체의 지붕”이다. 실용성도, 장식성도 아닌 이 얇고 투명한 말총 모자는, 무엇보다도 도덕성과 점잖음의 상징이다. 검은색 일변도의 절제된 형태, 그리고 쓰고도 쓰지 않은 듯 투과되는 재질은 “가장 가볍고 가장 엄숙한” 기호로 기능한다. 갓을 쓴다는 것은 단지 무언가를 ‘착용’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의 정신적 태도를 몸 위에 드러내는 일이다.


(지금은 이 책의 표지가 부채로 바뀌었지만 나는 초판의 표지-갓-가 더 좋다.)


이 ‘머리의 언어’는 서울 서초동의 한 건축물 위에서도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지하철 2호선 서초역 사거리에서 남쪽으로 걷다 보면, 우면산을 배경으로 웅장하게 자리한 예술의전당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오페라하우스의 납작한 원반형 지붕은 조선 양반의 갓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도 이 지붕은 건축가 김석철이 1980년대 초 제안한 것으로, 수차례의 설계안 반려 끝에 ‘전통’이라는 기호를 앞세워 채택된 형태였다. 당시 관료는 “이제 아무도 간섭하지 못하게 하겠다”며 그의 구상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갓은 5공화국 시대의 대표 건축물 위에 상징으로 얹히게 된다. 얇고 둥근 그 곡선은, ‘한국적인 것’을 국가가 요구하던 시대의 욕망을 형상화한 결과였다.



시대와 장르를 달리하지만, 머리 위에 얹힌 그 얇고 가벼운 곡선은 여전히 어떤 이상을 표현하고 있다. 전통의 도덕성에서 현대 대중문화의 상징성까지, 갓은 늘 의미를 품은 기호로서 존재해왔다. 무대 위의 아이돌이든, 건축물의 지붕이든, 혹은 고전소설 속 선비든, 갓은 단순한 모자 그 이상이다. 그것은 한 사회가 머리 위에 얹고자 했던 이상, 혹은 질서의 형상이며, 시간과 공간을 넘어 문화의 상징이 어떻게 끈질기게 살아남는지를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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